[Review] 순수하나 고독한 삶, 고흐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 고흐, 영원의 문에서

글 입력 2020.01.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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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광기는 순수함이 마주친 냉랭한 현실이 아니었을까


 

지난 12월 23일, 시사회를 통해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며 그간 알고 있던 고흐에 대한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 시간이었다. 영화 내내 관통하는 단 한 가지의 감상을 꼽자면 고흐의 순수한 예술성이다. 그것이 광기로 표출이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낀 고흐란 사람은 그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순수한 그림쟁이 같았다. 그야말로 그림에 미쳐있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가 실제로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곳들을 촬영지로 삼으며, 그의 화가로서의 마지막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술가를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고 하면 생애나 작품에 담긴 비하인드를 흔히 담아낸다. 또한 고흐를 주제로 한 작품 역시 이미 다양하게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순수한 화가이자 인간 고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기획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감독한 줄리안 슈나벨은 미국의 유명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세계적인 거장, 고흐의 이야기를 감독으로서 맡게 된 때는 치밀한 고뇌와 과정이 필요했으리라.

  

그런 고뇌의 흔적은 영화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특이하게 느껴진 것은 화면으로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었다. 고흐라는 피사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고흐의 시선으로 흔들리는 그의 세상을 자주 보여준다. 그것은 고흐의 내면과 불안 등을 나타내는 영화적 특징이기도 했는데, 관객으로서 그가 보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함께 뛰어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러한 고흐의 시선이 계속될수록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도 동반했다.

 

어떤 효과를 위해서, 왜 이러한 영상 구현을 한 것일까. 나는 관객에게 고흐가 바라보는 세상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의 예술적 세계와 냉랭한 현실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만들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인간 고흐에 대해 처절히 느끼도록 했다. 고흐는 외롭고 그렇지만 투철한 인간이었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의존을 하며 하루하루 생존을 해나갔고, 동생만이 그와 세상과의 단단하고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정신적으로 깊은 우정을 나눈 고갱 역시 그와 끝까지 함께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사회와의 접촉 없이 그림을 향한 열정만으로 하루하루를 열병처럼 쌓아가던 그였기에 마을의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처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 그의 시선이 아닌 그의 행실로만 본다면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그가 마주친 세상과 고통, 인간 고흐로서의 모습을 함께 따라가기에 그의 순수한 예술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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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림으로 보여주는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를에 간 후, 그의 그림에 나타난 색채는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진다. 또한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은 비록 당시 사람들에게 인정을 크게는 받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찬사 받는 그림들처럼 그의 붓 터치는 아주 아름답고 과감하며 풍부하다고 느꼈다. 고갱과 자연 앞에서 그림을 그리며 희열을 느끼는 그가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시대를 이끌겠다는 그들의 포부가 현실이 된 것만 같아 짜릿했다. 어쩌면 그에게 자연과 그림만이 내면의 희열을 주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관객으로서 난 그가 보여주는 따뜻한 풍경과 거친 붓 터치가 좋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가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홀연히 떠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마지막 생애 기간은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지금 예술계를 본다면 거장이 되어있는 자신의 명성에 많은 아쉬움과 고뇌를 표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동생 테오와 깊은 우애를 나누며 의존하더라도 동생에게는 가정이 있고, 자신만의 일이 있었다. 머무른 동네에서는 그를 쫓아내기에 바빴으며, 우정을 나누었던 고갱을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2시간 가까이 보여준 고흐의 모습에는 동생과 동료들, 그를 챙겨주는 사람들과 잠시의 교류를 통해 위로를 받지만 그는 늘 자신의 한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온전하지 못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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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는 지극히 왜소한 체구와 거친 눈동자로 고흐의 마지막 생애를 연기하고 있다. 그는 고흐와 일체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리며 그를 이해했고, 그의 고흐 연기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가 보여주는 고흐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기쁨이나 안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관객으로서 나는 그저 고흐라는 사람의 마지막 생애가 안쓰럽기만 했다. 귀를 잘라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주기를 부탁하는 그를, 누가 평범한 사람으로 봐줄까? 그리고 누가 그러한 생각으로 귀를 자를 수 있을까?

 

생의 말년, 그는 오베르 쉬즈 우아즈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가게 된다. 그는 자연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순수하게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수십 점의 작품을 남긴다. 이때 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영화라는 작품은 ‘뉴스’가 아니기에 극본은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다. 지금껏 고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나, 타살 가능성을 다루며 그가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영화로 다루고 했다.

 

이것은 이 영화의 특징적 요소 중 눈에 띄는 또 하나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알려진 그의 삶에 대해 열거하듯 따라가는 것이 아닌,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아닌, 인간 고흐로서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연구하고 살펴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다. 실제로 고흐는 자살로 보기에는 어려운 증거들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고 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고흐를 다루고 있는 작품에서 타살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의 인간으로서 마지막 순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것이다.

 

나는 고흐의 평생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는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이 영화를 통해서 늙고, 지극히 광기가 서린 그의 모습밖에 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예술적 순수성을 가진 사람임에도 말이다. 그의 유년 시절은 어땠고,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는 어떠한 과정으로 화가가 되었을까? 21세기의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서 승화시킨 사람이지만 인간 고흐로서의 삶은 지독히도 냉랭했다. 누구보다 빛나는 자연을 담아내는 화가 고흐와, 지독히도 냉랭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살아간 인간 고흐에 대해 알아간 시간이자 고흐의 깊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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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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