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하는 나의 여린 영혼에게: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화]

그림만이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글 입력 2019.12.2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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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너무 미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순수한 영혼을 지녔던 사람, 그저 남들보다 섬세하고 예민할 뿐이었던 사람. 그림에 자신의 삶 전부를 바쳤던 사람. 그런 그의 곁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마음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을까?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먹먹한 마음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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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나하나 이름을 대볼 수도 있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 고흐의 방 등등.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정작 인간 고흐의 모습은 잘 알지 못한다. 그의 내면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는 무엇에 대해 생각했고, 마음은 어떤 빛깔을 띄고 있었을지.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오직 고흐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한다. 그가 바라본 세상을 카메라로 담는다. 미세한 얼굴 떨림과 맑은 눈동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혼란스러운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자연을 사랑했던 순수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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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또 걷는다. 네모난 캔버스를 등에 메고, 물감과 붓으로 가득한 묵직한 화구 가방을 양손에 들고 열심히 걷는다. 험난한 오르막길도 상관없다. 두손을 뻗어 커다란 바위를 잡고 한 걸음씩 발을 디디며 묵묵히 올라갈 뿐이다.


어느덧 눈앞엔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푸르른 자연이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그 풍경의 가운데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고흐가 서 있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고갱은 그에게 물었다. 왜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 그리지 않고 지루한 자연을 그리냐고. 너만의 것을 창조하지 않고 왜 있는 그대로를 모방하냐며. 하지만 고흐는 차분히 대답한다. "자연엔 모든 게 들어있어. 그 모습은 언제 보아도 늘 새롭기만 한걸."

 

자연은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복잡한 인간 세상을 벗어나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 자신의 자리에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풀과 꽃이 있었다.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번뇌와 고통은 사라지고 평온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내 곁에 좀 더 머물러줘, 그래줄 순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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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바랐다. 사람에 치이고 실망하여 결국 파리에서 아를로 떠나온 고흐였지만, 그에겐 불안하고도 위태로운 자신을 어루만져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중 한 명은 동생 테오였다. 평생을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온 고흐. 테오는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자신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했다.

 

어느 날 고흐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테오는 소식을 듣고 파리에서 아를까지 하루를 꼬박 달려온다. 자신을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온 테오의 품에 아이처럼 안기는 고흐.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인다. 그는 테오에게 여기 좀 더 머물러 줄 수 없냐며 묻지만, 테오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고흐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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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흐 앞에 고갱이 나타난다. 테오의 지원을 받는 대신 일정 수의 작품을 보내는 조건으로 고흐와 함께 머무르게 된 고갱. 고흐는 고갱과 함께할 수 있음에 너무도 기뻤고, 고갱의 방을 장식하기 위한 해바라기를 열두 점이나 그린다. 운명 같던 그들의 만남. 하지만 그 끝은 비극이었다. 아를의 그 노란 집에서, 고흐와 고갱은 자주 부딪힌다. 둘은 너무도 달랐다.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도, 생각도, 성격도, 모든 게 정반대였다.


결국 고갱은 고흐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고흐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치지만, 고갱은 고개를 저으며 아를을 떠난다. 고갱이 떠나자 고흐의 정신병과 환각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왼쪽 귀는 잘라져 있고, 그의 앞엔 정신과 의사가 앉아있다. 고흐는 더듬거리며 기억을 회상해 보지만 모든 건 흐릿하고 불분명하다. 얼마 뒤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곁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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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흐의 삶을 닮았다. 너무나 고독하고, 슬프고, 외롭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과 몽롱한 풍경은 고흐의 바라본 세상과 닮아있다. 그의 곁에는 오직 외로움이 자리할 뿐이었다.


고흐가 느끼는 무력감은 관객들 너머로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갑자기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누군가가 곁에 있었더라면. 그를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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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고흐,

그리고 가셰박사의 초상.

가셰 박사는 고흐의 우울증 회복을 돕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친구였다.

 

 

고흐의 그림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빛깔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그렸다.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림은 그의 삶 전부이자 모든 것이었으니까. 오직 그림만이 그를 구원할 수 있었으니까.

 

고흐는 정신병원을 퇴원한 이후 파리 근처의 조용한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르에서 머물렀다. 그리곤 자그마치 70여 점을 그리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보리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어느 날, 고흐는 평소 친분이 있던 두 소년이 우발적으로 발사한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만 알았었는데. 사건의 전날 고흐는 평소보다 많은 물감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세상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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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르에서 고흐가 남긴 작품들.

고흐가 바라본 세상은 마치

꿈을 꾸는 듯이 아름답다.

 

 

나는 내 그림으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리곤 그들이 내게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 빈센트 반 고흐

 

 

일상의 평범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관찰하던 사람, 보잘것없는 것에 눈길을 주었던 사람.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그리며 죽음을 떠올리다가도, 들판에 누워 흙의 촉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행복해 하던 사람. 익숙한 풍경들을 비현실적인 색감으로 그려내며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던 고흐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그림은 이렇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마음을 위로한다.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맑은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도 영화 속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더없이 미어진다. 아, 가엾고 여린 영혼이여, 이제는 그곳에서 영영 행복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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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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