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가족'의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듀랑고" [공연]

애리조나에서 듀랑고까지
글 입력 2019.12.28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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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서부 애리조나(Arizona) 주에는 어느 한국계 가족이 살고 있다. 한국계 이민자 아버지 이부승(56),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첫째 아들 아이삭 리(21), 전국 수영 챔피언인 둘째 아들 지미 리(13). 이들에게 1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부승 아내의 빈 자리는 여전히 크다.


어느 날, 아들들을 위해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부승이 은퇴를 4년 앞두고 정리 해고된다. 마치 교통 사고를 당한 것처럼 혼란스럽다. 모든 게 막막하기만 한 부승은 아들들에게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한다. 목적지는 콜로라도(Colorado)의 듀랑고(Durango). 어쩌면 이 여행이 부승의,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 줄 지 모른다. 각자의 아픔을 숨긴 채 이들은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어느새 멀어진 아버지 부승과 아들 아이삭과 지미의 사이. 이들이 쌓아온 균열과 분리의 시간들은 그들 마음에도 똑같은 균열을 만든다. ‘가족’으로 묶인 이들 앞에,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마음의 둘레에 생긴 두터운 담벼락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돌을 하나 둘 얹어간다.

 

아버지 부승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이민자이다. 그에게는 한국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삶이 있다. 그렇게 분리되었던 삶의 시간들은 그 과정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 많은 생채기를 냈을 것이다.


반면 아들은 한국보다 미국의 기억이 더 짙다. 부승이 20년 동안 회사에 몸담고 있을 때, 아이삭과 지미는 의대 진학과 수영에 몸담았다. 아이삭이 11살, 지미가 3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어머니의 죽음도 그들에게는 다르게 인식되었을 터이다.

 


듀랑고로 가는 길 위에서 부승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아이삭과 지미는 이에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공감도 잠시, 집을 떠나 온 거리만큼 이들 사이의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간다. 서로 가까워지려 하는 모든 노력은 길을 헤매게 만들 뿐이다. 사막을 넘고 주 경계선을 넘어 마침내 도착한 기차역에는, 듀랑고로 가는 표가 없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갈 수 없어 부승은 망연해지고, 화가 난 아이삭은 자신과 지미의 비밀을 폭로한다.


 

서로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각자의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스스로의 선택이 개입되지 않은 ‘가족’이라는 수식어. 그 단어와 마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의 관계 속에 쌓인 담벼락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담벼락을 허무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가진 시간을 허물고, 부수고, 무너뜨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벽을 단단하게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진정한 ‘이해’일지 모른다.


서로가 쌓은 벽을 듣고, 그 벽 위로 눈빛을 마주하고, 때로는 맛있는 음식과 따스한 말들을 주고받는 것은 어떨까. 담장의 높이와 폭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 위에 다양한 색도 칠해본다. 함민복 시인이 했던 말처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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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조는 자신의 작품 배경이 주로 사막인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나는 항상 사막이 위험하면서도 아름답고 또한 매우 고립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연극에는 메시지가 있다기보다 일종의 탐험이다. 하지만 확실히 고독이라는 주제가 있다. 사막은 그 고독을 반영한다. 애리조나에서 자란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뉴욕 중앙일보, 2005.06.03.)


 

그들이 가고자 하는 듀랑고. 그 목적지의 길목에는 사막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서는 어린 왕자가 말한 바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야.”


그것은 고독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철저히 고독한 상태에 놓임으로써, 오히려 그 속에서 전혀 다른 아름다움, 예를 들면 고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는 말과 동일시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으로 가득 찼던 이들은 이들이 사막이라는 고독 속에서 비로소 서로의 담벼락을 들여다본다. 언제까지나 아들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을 것이라 믿었던, 아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승은 그 믿음을 깨고 그 속에 쌓인 담벼락을 본다.


그들과 마주한 사막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그들에게 고독을 준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그 고독과 마주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가족의 역할이나 의무가 아닌, 개인 그 자체의 삶과 시간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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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의 작을 쓴 줄리아 조는 재미교포 2세대이며, 한인 이민 가정의 방황과 결합을 보여 주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2017년, 국립극단 디아스포라전을 통해 작품 <가지(Aubergine)>가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힘입어 2020년 1월 9일부터 19일까지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줄리아 조의 <듀랑고(Durango)>를 올릴 예정이다.

 

줄리아 조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이민자 2세대의 시선으로 다룬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동서 문화의 경계에 선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고뇌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넘어 우리에게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까지 던질 것이다.


 




듀랑고
- Durango -


일자 : 2020.01.09 ~ 2020.01.1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TEAM 돌

 

후원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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