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학과 상상력의 만남: 도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글 입력 2019.12.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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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하고, 대학교에서 사회과학을 선택한 사람이 과학에 조예가 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책을 읽어도 시선을 잡아끄는, 흥미를 느끼는 것들 위주로 읽었는데 그 중에 과학 분야를 다루는 책이 손에 들렸던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과학 관련한 책을 읽었던 건 과제와 같은 필요에 의한 상황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 흥미가 가지 않는 분야라는 게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그게 과학 분야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과학과 기술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선택을 해 보았다. 항상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를 할 때에 인문 또는 사회 분야의 도서를 선택했었는데, 신선한 SF소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이 도서를 선택한 데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큰 이유기도 했다. 정말 과학적으로 충실한 제목의 소설이었다면, 혹은 소설 제목으로 쓰여 있는 어떤 단어가 잘 모르는 단어라거나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과학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문학 소설을 통해서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기 때문에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개념이었다. SF소설다운 개념이면서 동시에 이 소재를 어떻게 소설로 풀었을지 궁금해졌다.

 

 


 

목    차

 

머리말 • 5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11
세대 차이• 37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 59
유로피언 • 87


인형들의 천국• 105
튜링 히어로 • 131
계몽의 임무 • 155
산타 신디케이트 • 177

 

꼬리말• 193

 


 

 

이 책의 초반에서부터 놀랐던 대목은, 바로 작가 원종우가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과학자가 아니고, 문과 출신이며 오히려 예체능 쪽을 공부했던 사람임을 밝혔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과학 관련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다양한 대중매체에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출연하고, 심지어 SF소설을 쓰기까지 한단 말인가. 물론 과학자만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새삼 놀라웠다. 본인의 전공과는 별개로 더욱 더 파고 든 분야가 과학이라고 하니, 내가 지금까지도 과학에 관심이 없는 건 정말 과학을 공부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인 단편소설과는 다르게 해당하는 단편소설의 전후로 앞설과 뒷설을 배치하였다는 점이다. 작가 원종우는 이 책 속에 총 8개의 단편을 실었다. 그런데 단편이다보니, 각 이야기 장면 속에는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의 머릿속에는 그 모든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읽어내려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지 바로 캐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과학적인 소재와 공상적인 이야기를 결합한 이 작품의 특징을 고려하면 더더욱 독자가 단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앞설에서 이번 단편의 주된 과학적 소재를 가볍게 설명하고, 뒷설에서 이를 정리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의문점들까지도 제공하고 있었다.

 

앞설과 뒷설을 늘어놓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작가는 이 소설로 결코 과학을 가르칠 의도가 없다고 스스로 천명하고 있다. 단편 앞뒤로 이런 장치를 배치해놓은 게 신선하게 와닿았지만 그것이 작가가 독자를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더라도 앞설에서 작가의 설명을 따라 읽어가며 이 내용이 단편에서 어떻게 쓰여있을지 기대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뒷설에서는 내가 중심으로 보았던 부분과 작가가 주되게 중점을 맞춘 부분이 달랐을 때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재미있었다. 재미있게 풀기 어려운 소재를 신선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이 이를 생각해보고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느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

 

앞설과 뒷설을 제외하고, 단편 자체에만 집중해보자면 작가 원종우는 크게 8가지의 소재로 작품을 구성했다. 첫 번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죽음과 노화, 불로불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루었다. 두 번째인 '세대 차이'에서는 제목만 가지고는 유추하기 쉽지 않았다. 세대 우주선(Generation ship)을 타고 우주를 유영하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지구가 멸망했을 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우주로 나선다는 식의 상상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단편의 진행을 슈뢰딩거의 고양이 시점에서 써내려갔다는 점이다.

 

네 번째 '유로피언'은 목성의 위성 유로파가 지구와 친선관계를 맺는 상황을 가정한 짤막한 글이었다. 외계 생명체를 궁금해하는 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순간을 상정한 이 이야기 역시, 다양한 영화 속 장면들이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다섯 번째 글인 '인형들의 천국'은 직전의 글보다는 좀 더 오싹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서 계속 뜨겁게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에서부터 시작하여,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의식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아주 무서운 질문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섯 번째 '튜링 히어로'는 튜링 테스트로 인간이 걸러지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었다. 여기서도 인공지능이 정말 현 시대의 뜨거운 감자임을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계몽의 임무'는,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바로 그 이야기다. 우리보다 문명과 기술의 수준이 월등히 우위에 있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 상의 인류를 계몽시키고자 했던 노력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가는 그 외계 생명체를 기독교의 신에 빗대어 그려내고 있었다. 마지막 '산타 신디케이트'는 실체와 실재에 대한 생각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었다.

 

*

 

각 단편의 소재들을 살펴보면, 생소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사실 가볍게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소재들임을 알 수 있다. 혹은 영화나 소설, 만화 등에서 수없이 다뤄지던 주제도 있다. 거리감이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소재지만, 깊게 파고 들어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지식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을 통해 가상의 상황을 통해 주가 되는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년간 과학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매체에 출연하여 과학을 설명했던 작가의 이력이 소설이라는 장치를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도 작가 원종우가 던지는 질문들은 어느 것 하나 무게감 없는 것이 없었다. 당장에 시작부터 강렬하다.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극복하고 싶어하는 죽음과 노화를 인류가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행복의 극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자본의 증식이 어느 시점까지는 한계효용이 체증하지만 자본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더 이상 한계효용이 체증하지 않는 것처럼, 죽음과 노화에 대한 인류의 공포심이 이를 넘어 영원한 삶에 도달하는 순간 행복이 체증되지는 않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기본적으로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죽음에 대해 스스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죽음 이후의, 그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인간에게는 지금의 모든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결단코 미리 알 수 없기에, 인간은 그 존재의 한계를 실감하고 만다. 이 큰 흐름을 먼저 겪고 책을 읽어내려가니, 더더욱 작가의 역량이 놀랍게 느껴졌다. 작가는 비단 과학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가장 근본이 되는 철학적인 질문들까지도 독자들의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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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정말 친절한 책이었다. 앞설과 뒷설을 통해 작품에 집중하고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도록 만든 장치는 작가 원종우가 얼마나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물론 각 단편의 내용들 역시 흥미로웠다. 과학적인 지식과 번뜩이는 상상력이 작가의 깊은 성찰과 만나 독자들에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의 인류가 보고 듣고 인지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듯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결단코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현존하는 생물 중에서 확실히 고도화된 문명을 일군 생명체인 것은 맞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인간 중심적인 사고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와 우주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기존에 인지하던 세계는 과연 어떻게 바뀔 것인가. 작가 원종우의 재치 있는 단편에서 조금이나마 그 새로운 세계를 엿보고 온 것 같았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 SF 단편 모음집 -

 

지은이 : 원종우
출판사 : 아토포스

 

분야 : SF소설


규격 : 128*188mm

쪽 수 : 196쪽


발행일 : 2019년 12월 06일

정가 : 13,600원


ISBN : 979-11-85585-81-9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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