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톡톡" 곱씹어 보기 [공연]

연극 톡톡
글 입력 2019.12.2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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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었다. 온갖 크기와 색깔로 이루어진 포스터를 보았을 때도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정신 없는 연극일 줄이야. 그런데 분명 정신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왜 이렇게 집중이 잘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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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톡톡 TOC TOC>은 초반부터 관객의 허를 찌르며 시작된다.


점잖게 등장해 점잖게 앉아있던 프레드가 뒤늦게 등장한 뱅상의 물음에 난데없이 욕설을 퍼부었고, 그것이 ‘뚜렛증후군’이라는 병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 그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의 간극 때문에 초반부터 객석에서는 작은 웃음들이 피식 피식 새어 나왔다. 그 강렬한 시작 덕분에 하나 둘 들어오는 인물들을 맞이할 때면 그들의 증상은 무엇일지 집중하게 되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뜬금없이 욕설이 튀어나오는 ‘프레드’,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뱅상’, 세균과 청결에 관해 두려움이 있어 끊임없이 소독제를 뿌리고 손을 씻어대는 ‘블랑슈’, 불은 끄고 나왔는지 가스밸브는 잠궜는지 끊임없이 확인을 하고도 불안해 하는 ‘마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두 번씩 반복해야 편안해지는 동어반복증 ‘릴리’, 그리고 바닥의 선이 두려워 밟지 못하는 선공포증과 대칭에 대한 강박이 있는 ‘밥’까지 이렇게 다섯 명의 환자들은 우연하고도 필연적으로 스텐 박사의 진료실에 모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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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강박증으로 인해 오랜 시간 기다려 드디어 진료를 받으러 온 그들이지만 스텐 박사의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처음 보는 새로운 증상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강박에 끊임없이 사로잡힌다.


알 수 없는 어느 날부터든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서든 모두 그 시작은 다르지만 길고도 긴 시간 동안 그들의 곁에 가장 친한 친구처럼 머물고 있던 강박들은 인물들이 집에 있던 진료실에 있던 가만히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개의치 않고 그들과 함께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그 괴짜 친구와 함께 하는 동안 인물들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아왔을 것이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러냐 묻는 질문들에는 경멸과 신기함 혐오와 동정이 뒤섞여 있다.


그렇기에 극 중간 프레드가 말하는 택시 운전사와의 에피소드가 더욱 와 닿았다. 유일하게 자신의 뜬금없는 욕설에도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행선지만 물은 뒤 묵묵히 듣고 있던 그에게서 프레드는 평생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톡톡_릴리에게 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는 밥.jpg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무작정 불쌍하게 보는 것은 상처가 되는 일이다. 처음엔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한 그들에게 화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한 번 두 번 반복되고 일년 이년 시간이 흐를수록 그 화는 스스로에게 향한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생각의 흐름이 내면으로 흐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일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사고방식에 집중할수록 작은 티클들이 눈에 띄게 되고 그것들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게 된다.

 

다섯 명의 인물들의 지난 삶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수록 오히려 강박과 그들 자신만 덩그러니 남았을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 치료실에 모여 자발적으로 그룹치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풀어놓기에 정말 정신 없고 빠르게 대사들이 지나가고 겹쳐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의 아픔에도 공감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프레드가 욕을 하지 않기를, 뱅상이 숫자를 세지 않기를, 블랑슈가 손을 씻지 않기를, 릴리가 말을 한번만 하기를, 밥이 바닥의 선을 밟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고 진정으로 응원하기 시작한다.


연극을 보던 나조차 어느새 이들에게 동화되어 한 명씩 차례대로 강박을 탈피하려는 도전을 할 때마다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 한 명이라도 강박을 이겨낸 행동을 해내지 않았는지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 하나씩 서로의 강박에서 벗어난 행동을 찾아내주었을 때는 마치 함께 치료를 받은 것 마냥 기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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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 시선이 상대방을 향하게 되며 작지만 밝게 빛나는 희망을 본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들이 어쩌면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만 고칠 수 있어 보이던 강박증이 타인과 함께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듯이 인생에서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나누어 들 수 있는 무게의 짐들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안될 거란 생각에 또 때로는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너무 혼자서만 짊어지려 하던 일들이 너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털어놓고 기대어보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희망이 되어 우리의 손을 잡아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저 웃긴 코미디 연극으로만 생각했지만 볼수록 그리고 곱씹을수록 그것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 가에게는 그저 웃긴 연극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이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고 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용기들이 모여 부끄럽지 않아도 될 문제들에 대해 당당하게 임하며 서로에게 툭 터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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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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