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첫 번째 목소리, 극작가 김중원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의 그 작가
글 입력 2019.12.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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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1 

극작가 김중원

 




글은 말과는 사뭇 다른 무게를 가진다. 순간순간 흩날리는 것이 아닌, 글자로 남아 눈으로 읽음으로써 기억되기 쉽고 그만큼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이 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글을 경험한다. 누군가의 편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와 메모, SNS의 게시물까지... 우리가 매번 객석에 앉아 보고 즐기는 그 무대도 대부분 ‘극본’이라는 글로 처음 완성된다.


글을 쓰고 무대에 올리는 극작가에게 글은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무대는 어떻게 다가올까? 작년에 이어 최근 다시 공연을 올리고 있는 뮤지컬 <재생불량소년>의 김중원 작가를 인터뷰하여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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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중원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작가 김중원이라고 합니다. 무대 공연 쪽으로 주로 대본을 써왔는데, 사실 쓰고 싶은 소재와 어울리는 장르라면 가리지 않고 씁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Q. 네, 반갑습니다. 극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부쩍 궁금해졌어요. 우선 중원님이 어떤 계기로 처음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여러 가지 상황들이 다 아우러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제가 사는 곳에는 영화관이 없었어요. 대학교 오기 전까지는 공연을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었구요. 심지어 휴대폰도 없었고, 집에는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자연스레 소설책, 만화책 읽는 게 취미였습니다. 고등학교 땐 인강(인터넷 강의) 대신 PMP에 영화를 한가득 다운받아서 하루에 하나씩 보는 것도 일상의 낙이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어요.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거의 서른 즈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습니다. 거기서 쓴 글 중 나누고 싶은 몇몇 개의 글은 당시 싸이월드라는 곳에도 올리고 그랬어요. 제 글을 봐주시는 분들도 조금 있었거든요.


그렇게 수험생이 됐을 때, 진로에 고민하는 절 보며 형이 말 하더라구요. “중2병에 오글거리는 글이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것 같으니” 글 쓰는 과를 한 번 가보는 게 어떻냐고. 그 말에 제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싹 바뀐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같아요. 부모님 반대도 이겨내고 1년 재수 후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고서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좋은 선생님도 만나고, 스스로의 자격지심과 고군분투하다 보니 어떻게... 글을 계속 쓰고 있네요.


수많은 상황 중에 나의 길을 선택하는 이도 있었겠지만, 저는 뭔가 결핍된 상황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았던 게 지금까지 왔던 것 같아요.

 

 

Q.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된 즐거움이 중원님의 선택을 이끈 거네요. 당시 형이 해 준 ‘그 말’이 언제까지고 또렷이 남을 것 같아요. (웃음) 완성된 글은 작가님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소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우선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제가 쓰고 싶은 소재로 대본을 쓰는 것과 제작사 쪽에서 소재를 의뢰받아 대본을 쓰는 경우요. 시작이 달라도 과정은 비슷한데요. 뮤지컬 같은 경우는 우선 뜻이 맞는 작가와 작곡가가 만나 이야기와 넘버의 조화, 컨셉 등을 먼저 이야기한 뒤, 스토리를 짜요.


그리고 수없이 대본과 음악을 고친 다음에 공모나 제작사를 만나 공연이 확정될 때 즈음 연출님이 정해지고 만나서 또 한 번 대본과 음악을 수정합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배우님들과 스텝들을 만나서도 연습을 통해 대본과 음악은 수정됩니다.


말하고 나니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인데요, 맞습니다. 해당 분들은 만나는 시기는 각각의 상황마다 다 달라도, 1~2명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러 명을 만나면서 조율하고 맞춰가면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합니다.


공연이 올라가서도 관객분들의 코멘트에 맞춰서 또 수정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올라가긴 하지만, 조율사 같은 느낌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게 바로 공연의 매력인 것 같아요.

 

 

Q. 와, 정말 반복적으로 피드백을 나누며 소통하는 작업이네요. 공연을 거듭할수록 새로이 선보이는 기분일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재생불량소년>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짝짝짝) 우리 독자 중에도 공연을 관람한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혹시 이번 공연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A. <재생불량소년>은 ‘아웃스포큰’의 강승구 대표님이 저에게 소재를 의뢰해서 만든 작품인데요. 의뢰를 받고 1년 만에 공연이 확정되어 초연 때는 만족할 만큼 수정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래서 재연 때는 그 놓친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우선 주인공 반석의 라인들과 전사를 통해 각 인물들이 서로 개연성 있는 인물로 만들고자 했구요. <힘들고 벅차도 버티는 그 순간이 가치있다>라는 주제를 좀 더 붙잡기 위해 음악이나 수많은 라인들도 함께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초연의 큼직큼직하게 붙어있던 장면들을 세밀하게 쪼개 이어 붙이면서 관객분들에게 좀 더 흥미롭게 극 진행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재생불량소년>은 처음 연극으로 쓰였다가 이후 뮤지컬로 장르를 넓히며, ‘2018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꼽히기도 했지요. 연극을 뮤지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극본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궁금합니다.

 

A. 우선 연극 때는 지금처럼 땀 튀기는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멜로물에 가까웠어요. “시체 위에도 꽃은 핀다.”라는 하나의 문장에 꽂혀서 함께 어쩔 수 없이 병실을 쓰게 된 무균실 환자 둘의 사랑 이야기를 썼었는데요. 뮤지컬로 오면서 조금 더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청소년들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싶어서 여자 주인공 역할을 성균으로 바꿨습니다.


아무래도 노래가 있어서 노래가 주는 강렬한 에너지도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요, 남자 주인공들로 바뀌면서 연극에서 감정씬은 전부 수정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주인공이 각성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또 상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부분도 수정을 했습니다. 결말이 바뀐 거죠.

 

 

Q. 큰 변화를 주다 보니, 수차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무대를 올리면 또 감회가 새로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극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무대 장면이 있나요?

 

A. 매 공연이 순간순간마다 저에게 강렬한 기억을 주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가다 보니 무대의 외적인 장면도 있지만 대본 이상으로 장면이 표현되는 순간이 항상 기억에 남아요.


<안녕! 유에프오> 창작산실 쇼케이스 당시, 아무래도 심사다 보니 진중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는데요, 끅끅거리고 힘겹게 웃음을 참는 심사단 모습에서 강렬한 쾌감을 느꼈었어요. 공연이 아닌 리딩인데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집중하고 즐겨주신다는 건 대본의 장면들이 빈 무대에서 상상이 된다는 거니까요. 그게 곧 공연의 큰 장점이기도 하구요.


<재생불량소년>에서는 마지막 환자복을 입은 반석과 과거의 승민의 시점이 병합돼서 경기를 진행하는 장면이 항상 울컥해요. 의도하고 대본에 쓴 거기도 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봤을 때 더 큰 감동이 느껴져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그 외에도 <요괴메카드> 공연 때 1500명 가족 관객이 오프닝 떼창을 부를 때도 엄청 힐링이 됐던 순간이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Q. 의도한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자신이 쓴 문장이 무대 위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보는 짜릿함은 작가님만이 느끼실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잘 안 써질 때나 막막할 때가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이럴 때 대처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A. 글 쓰는 걸 습관화 시키는 거예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직장도 나가기 싫어도 출근해야 되는 것처럼... 저도 하루의 정해진 일과대로 때가 되면 일을 하고, 쉴 땐 쉬고. 이게 제일 효과적인 것 같아요. 아무리 말 같지도 않은 글이라도 꾸역꾸역 쓰고 나면 다음 날, 그 분량을 보고서라도 원동력이 좀 생기거든요.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낙서와 메모 같은  글이라도 언젠간 꼭 쓰일 때가 옵니다. 정말이에요.

 

 

Q. 중원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메모를 좀 더 습관처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이번엔 좀 다른 질문인데요, 중원님이 가장 애정하는 시간 혹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A. 모든 프로젝트가 끝난 후 잠들기 전 알람을 안 맞춰놓는 순간,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짜는 순간. 그때를 가장 좋아합니다. 막상 늦잠 자고 여행을 하는 그 순간보다 부담감 훌훌 털어버린 그 찰나의 순간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나 분야가 있으신가요?

 

A. 물론이죠. 사실 공연에서도 연극, 뮤지컬 말고도 오페라도 했었어요. 제가 애초에 끈기가 없는 성격이라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한계를 두고 싶진 않단 생각도 커요. 제가 생각한 소재가 영화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영화를, 드라마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드라마를 쓰기도 합니다. 공연 쪽에서 아직 못해본 무용극이나 넌버벌 퍼포먼스도 소재만 잘 잡는다면 해보고 싶구요.

   

 

Q. 다가올 2020년을 맞아, 뒤에 두고 갈 것, 계속 가지고 갈 것, 앞으로 찾고 싶은 것을 하나씩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게으름과 낮아지는 자존감을 제발 이젠 두고 가고 싶구요, 도전 의식과 저를 향한 의심은 계속 가지고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는 저를 찾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지금 저도 이 말을 하면서 <낮아지는 자존감>과 <저를 향한 의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순인 걸 알거든요.


인사이드 아웃의 장면에서 가장 슬픈 순간과 기쁜 순간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저 스스로도 제 아픔이 기쁨이 될 것을 믿기에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저 스스로의 재미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19살 때 글 써보는 과를 가지 않겠냐는 형의 물음에 대답을 하는 그때의 저처럼요.

 

 

Q. ‘나’를 구석구석 바라보고 믿음으로써 성장하고자 하는 바람이 공감됩니다. 이제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만 남았어요. 빈칸을 채워 주시겠어요?

 

"글은 내게 ~다."

 

A.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쓰는 모든 대본은 나를 치유하기 위한 연극치료에서부터 시작한다.” 라구요. 비슷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글은 내게 상처이고,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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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쓰는 극작가는 무대 위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실 공연 내내 무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손길로 쓰인 문장에 숨이 불어 넣어져 그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쓴 글이 숱한 수정을 거쳐 또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벅차고 즐거울지 감히 상상해보게 되는 대화였다.


김중원 작가에게 글이 오랜 길을 함께 걸어갈 ‘상처’이자 ‘치유’로 남은 것처럼, 오늘도 다양한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노트북을, 핸드폰을 잡은 당신이 그로써 위안을 받을 수 있기를, 직접 낳은 문장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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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재생불량소년>


일자 : 2019.12.07(토) ~ 2020.01.05(일)


시간

화, 목, 금 20시

수 16시 / 20시

토 15시/19시

일, 공휴일 14시/18시


*

월 공연없음


장소 : 동양예술극장 2관


티켓가격

R석 40,000원

S석 30,000원


기획/제작

아웃스포큰


공연시간

100분

 

 

 


 

 

무대 밖, 그들의 목소리를 담다

과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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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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