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둥근 교실과 둥근 사회를 위하여 -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 [도서]

글 입력 2019.12.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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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단순히 크기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인간관계부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갑을관계까지, 아이들이 영영 배우지 않기를 바라는 어둠까지도 학교 안에 이미 존재해있다.


학교 내의 혐오 문제 역시 꽤나 해묵은 문제다. 차별은 “남자애들은 축구, 여자애들은 피구”에서부터 시작되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흡수력이 빠르다. 두세 시간짜리 성평등 교육보다 한 마디 혐오와 차별이 더욱 묵직하게 아이들의 두뇌를 강타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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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즈, '男청소년 40% "미투 지지 안해"

35% "교내 성차별 존재"', 2018. 11. 26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는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과제 ‘학교 안 혐오현상과 교육의 과제(2018)’를 수정하여 작성한 서적이다. 학교 안 혐오현상의 예시부터 학생 인터뷰, 문제점과 대안까지 드러나 있어 교내 혐오 실태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너른중학교 2학년 1반 학생들의 심층 인터뷰가 실려 있어 학생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여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공학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성차별에 덜 노출된 채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준비하기도 했고, 선생님들 중에서도 ‘역사는 왜 허(her)스토리가 아니고 히(his)스토리인지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던 선생님도 계셨다. 머리가 말랑말랑하던 시절에 페미니즘을 접하기 시작해서 그런지, 대학에 온 후 만난 여성학이 낯설거나 거부감 들지 않고 매우 편안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어째서 남학생들은 출석 번호가 1번부터 시작하고 여학생들은 50번부터 시작하는지가 의문이었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60번대 출석 번호를 가지게 되었고, 왠지 모르게 참 불만이었던 기억이 있다. 언제나 남학생들이 앞이고 여학생들은 뒤라는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학생들의 언어도 빼놓을 수 없는데, 학년이 높아질수록 여학생들 앞에서 성적인 농담을 하는 남학생들이 늘어갔다. 그런 농담에 웃어주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곤 했지만 선생님들도 큰 제재를 하지 않았고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의 반응이 없을수록 더욱 큰 소리로 성적인 단어를 내뱉었다.

 

 

학생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상황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상처를 입지 않았거나 그 상황이 대수롭지 않아서가 아니다. 혐오의 상황을 정식으로 문제시했을 때 오히려 더 힘든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혐오 상황을 무시 또는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106쪽)



사실 여학생들이 혐오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 상황이 피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에서 나와 있듯이, 혐오와 마주했을 때 다가올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점까지도 우리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직장에서 쫓겨날까봐,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까봐 상사의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고발하지 못하는 장면들. 비단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 삶 속에 자리해 있듯이, 학교 안에서도 이런 불편한 침묵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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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학교의 혐오 문제는 영영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일까. 책에서는 다양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학교 운영부터 교과서 개정, 제도의 개선과 교원 교육까지, 혐오의 근절을 위해 미래 학교와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안한다. 단순히 특강이나 학습지도안 설계에서 멈추지 않고, 제도적 개선 방향까지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었다.


작년 가을, 나는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페미니즘과 무관한 교과 수업이었는데, 수업 첫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해보는 시간에 어떤 남학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니즘 싫어요.”


그 학생이 페미니즘을 알고 호불호를 결정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와 쌍둥이처럼 태어난 가부장제와,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어난 여성학의 역사를 알리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20세기, 산업혁명과 전쟁으로 격변하던 시대에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은 어째서 죽음을 택해야 했는지,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외치던 그의 외침과 페미니즘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도 아마 모를 터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아직 열네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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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2015)

 


무지와 혐오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혐오의 주체가 학생이라면 이는 더욱 간명히 드러난다. 모르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고, 모르기 때문에 혐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알려준다면 멈출 수 있다’가 된다.


물론 교육의 효용성에 대해서 매우 시니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아직 교육의 힘을 믿는다. 사회를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하기에, 그리고 그 변화의 가운데에는 교육이 있기에 이런 논의가 유의미한 것이다. 내가 역사 시간에 ‘허스토리’라는 단어를 듣고, 수능이 끝난 후 페미니즘 강연을 들었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도 여성학을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의 중심에는 ‘역량’이 있다. 훌륭한 세계 시민으로 자라날 ‘역량’.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창의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조금 더 둥글게 만들 수 있는 포용력과 이해력도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세계로 뻗어 나갈 핵심역량이 아닐까 싶다.


어제보다 조금 더 둥근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선배보다 조금 더 둥근 나를 만들기 위해서 계속 갈고닦는 능력과 끈기. 학교가 변하면 사회가 변한다. 사회가 변하면 학교도 변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자리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혐오, 교실에 들어오다

학교 안 혐오현상의 실태와 대책



지은이

이혜정 외


출판사 : 살림터


분야

교육


규격

152mm * 224mm


쪽 수 : 232쪽


발행일

2019년 11월 28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5930-121-6 (0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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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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