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가능태 긍정하기 :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글 입력 2019.12.2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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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은 연습이었으면 좋겠다

연습으로 한 번 

그러면 복기하고 유념하여, 

두 번째 생에는 바른 길을 찾아갈 것인데

인생에 한 번은 연습이었으면

 

-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중

 

*

 

평생 하나뿐인 벗과 하나뿐인 연인을 떠나보내며 고려 남자는 바랐다. 인생에 한 번은 연습이었으면 하고.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고 싶을 때 대개의 인간이 그렇게 느끼리라. 영화 <라라랜드>에선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마주치자마자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 플래시백이 펼쳐진다. 온라인 세상에 지나치게 경도된 어떤 이들은 '리셋'하듯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상상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튜토리얼과 연습 모드가 뜬다면? 포기하고 싶을 때 누를 재시작 버튼이 있다면? 그랬다면 우리네 삶은 어땠을까. 하나뿐인 인생을 더 "바르게" 찾아갈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더 행복했을까.


질문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게로 옮겨보자. 그 노인과 술 한잔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이렇게 답해줄 것이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 그렇다. 100년을 살아온 노인 왈, 인생은 “그 자체”일 뿐이란다. 이 말대로 노인도, 소설의 작가도, 연극의 창작진도 그렇게 노인의 인생 기행담을 따라간다. 그곳엔 고려 남자가 바랐던 “바른 길”은 따로 없다.


노인은 스페인 정부군 폭발 전문가로 일하다가 우연히 적군 프랑코 장군을 구했고, 냉전 시대엔 때론 자본주의 진영에서, 또 때론 사회주의 진영에서 폭탄을 만들어왔다. 종교가 무엇인지, 어떤 이념에 찬동하는지, 정치적 입장이 어떠한지가 중요했던 20세기. 그곳엔 “성(性)적으로,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거세당하고 뚜렷한 방향 없이”(프로그램북) 산 인간, 그렇게 100년을 살아온 노인 알란 칼손이 있었다.


 

8. 이란 정보안전국 본부에 수감된 알란, 처칠 암살 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들다.jpg

 


100세 노인 알란 칼손의 생 역시 보통의 삶처럼 선택의 연속이었다. 선택지 스케일이 보통 이상이었을 뿐. 인생의 선택지가 어쩔 수 없는 무엇과 어쩔 수 있는 무엇의 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때, 알란도 매 순간 그것들과 맞닥뜨렸다.


때론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죽게 했고, 의도대로 누군가를 속였으며, 어쩔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 선택을 했다(그것도 걸어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 통념으로 비추어 봤을 때, 그가 떼어온 한 발 한 발은 때론 무책임했고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알란에게 다시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가 바랐던 건 술, 맛있는 음식, 즐거운 대화를 나눌 친구였다고. 그는 그런 순간을 찾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해왔을 뿐이라고. 스웨덴, 러시아, 스페인, 미국, 중국, 북한, 인도네시아, 프랑스 등지를 횡단하며 제2차 세계 대전, 맨해튼 프로젝트, 국공내전 등 세계사 굵직한 사건들에 영향을 미쳐왔던 알란.


100년 동안의 시간에도, 그리고 창문을 넘으며 내디딘 100년 이후의 시간에도, 그가 성냥을 그어온 이유는 그렇게 간단했다. 그래서일까? 누구도 그의 선택을 '실수'라고 보지 않는다. 알란은 마음에 따라 어떤 것을 선택했고, 그것의 결과가 있을 뿐. 단지 "그 자체"일 뿐이다.


 

12. 고양이를 잃고 충격에 빠지다.jpg


 

연극과 소설 모두, 창문을 뛰어넘은 후 시작되는 100세 알란의 모험담과 100년간 겪어온 알란의 지난 모험담을 나란히 배치하며 알란의 생을 펼쳐낸다. 100년 동안 알란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과 "안녕"하고 이별했다. 그리고 100세가 된 알란은 여행을 시작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나간다. 연극에선 창문을 뛰어내리기 전의 알란, 창문을 뛰어내린 후의 알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극적으로 엮어내기 위해 고양이 몰로토프의 비중을 늘렸다. 몰로토프는 외로웠던 알란의 인생에 찾아온 작은 온기였고, 100년 인생 중 알란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친구였다.

 

언제나처럼, 이별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알란은 '언제나'와 같지 않았다. 모든 일은 “그 자체”라며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살아온 알란이 맹렬한 분노를 느낀 건, 몰로토프의 죽음 앞에서였다. 그는 여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냥을 긋는 선택을 했고, 집까지 폭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그에겐 규격화된 양로원의 시간이 찾아왔다. 맛있는 음식도, 술도, 즐거운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는 인생. 모든 걸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세계 이곳저곳을 누벼온 알란은 회복되지 않는 이별의 고통과 무력함에, 결국 100세를 앞두고 인생을 그만 끝내고 싶어 한다.


그때 들려오는 몰로토프의 목소리. 이는 네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연기한 과거 알란이 100세 생일을 맞은 현재 알란에게 전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알란, 살아 있어요. 포기하지 말아요, 알란. 다시 불을 붙여요.



1. 100살 생일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100세 노인.jpg

 

18. 다시 창문을 넘기로 하다!.jpg

 


그렇게 다시 불을 붙인 알란은 양로원 창문을 넘어 세상으로 향한다. "촌스러운" 수미쌍관이라는 극작의 자조처럼, 알란이 창문을 넘는 순간은 연극의 처음과 끝에 배치된다. 그의 100+a 인생을 따라가다가 쌍관인 '미'에 도착해보면 우린 알 수 있다. 창문을 넘어 도망치기 직전, 알란 인생엔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있었고,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에게는 또 다른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들이 펼쳐지리란 사실을 말이다. 알란은 가능태가 현실에 펼쳐진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의 앞엔 무수한 가능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는 알란의 말처럼 인생 "그 자체"일 뿐이다. 특별할 것도, 유난할 것도 없다.

 

모두 알다시피 이 “그 자체”란 게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알란이 불붙여온 가능태엔 함께 웃고 떠들던 시간과 “안녕”이란 작별 인사가 늘 함께했다. 몰로토프와 보낸 안온했던 시간과 몰로토프를 잃은 후의 고통도 삶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이런 말을 남겼던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영화 <벌새> 중)

 

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생엔 나쁜 일의 가능태도, 기쁜 일의 가능태도, 만남의 가능태도, 이별의 가능태도 있을 것이다. 알란이 창문을 넘는 순간은 바로, 이 수많은 가능태에 불이 붙는 순간이다.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 이별을 무릅쓰는 순간, 인생의 모든 가능태를 긍정하는 순간, 동시에 이 “촌스러운” 수미쌍관이 빛나는 순간이다.


 

1. 100세 생일 파티가 열리기 1시간 50분 전.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도망치다..jpg



알란도 “복기하고 유념하여” 인생의 “바른 길”을 찾아가고 싶어 했을까? 아니, 알란은 수많은 가능태가 현실화 된 지난 100년, 술 한잔 나눌 친구들을 만난 100세의 나날, 그리고 어쩌면 더 힘겹고 고단할지 모르는 앞으로의 가능태를 인생으로 받아들인다. 이게 인생을 대하는 "규범적인" “바른” 자세라는 소린 아니다.


인생의 파고는 다 각자의 몫이기에 누가 낫니 저울질할 일은 아니지만, 우연히 폭약 회사 사환으로 취직해 여러 국가가 탐낼 만한 재능을 가졌던 알란 칼손의 삶보다 더 고된 삶을 산 사람, 그래서 ‘리셋’을 바라는 인생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죽어간 ‘네버 에버’ 조직원들은 인생 2차전을 바라지 않았을까). "바른"이란 수식어엔 알란도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알란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알란에겐 살아갈 날이 남았고 그 시간은 무수한 가능태의 연속이라는 것. 알란은 그것에 불을 붙였고, 무엇이 어떤 모양으로 터질지는 미정이라는 것.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의연히 받아들인 이 100세 노인 앞엔 예측불허한 모험이 다시금 펼쳐질 거라는 것이다. 나쁜 일도, 기쁜 일도, 누군가와 술과 대화를 나눌 일도. 참, 101세엔 핵을 들고 도망친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 기억력이 나빴던 알란의 친구 아인슈타인,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알란, 그게 정말 가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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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100번째 생일에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웃음 -



일자

2019.11.26 - 2020.02.02


시간

평일 8시

토 3시, 7시

일요일 및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

12월 매주 수요일 4시, 8시 공연

12월 25일(수) 2시, 6시

1월 24일(금), 25일(토) 3시, 7시

1월 26일(일) 2시, 6시

1월 27일(월) 4시 / 1월 28일(화) 공연없음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주최/기획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1세 이상


공연시간

150분 (인터미션 : 15분)

 

 


 

 

원작

요나스 요나손 (Jonas Jonasson)

 

연출

김태형

 

지이선

 

출연

오용, 배해선, 김아영, 오소연, 오종혁, 이형훈, 

최호승, 김보정, 임진아, 전민준

 

 


 

*

참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18 프로그램북
요나스 요나손, 임호경 역,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열린책들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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