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팬클럽이다 [도서]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이 알려준 나의 팬클럽
글 입력 2019.12.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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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할 2푼 5리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속 삼미 슈퍼스타즈의 승률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국의 프로 야구가 시작되면서 인천을 연고지로 엄청난 기대와 환호 속에 태어났으나, 그 ‘프로’의 세계에서 연패를 거듭하며 1할 2푼 5리라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다.

 

이런 삼미는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왜냐하면 ‘프로’의 세계에선 우승만이 목표이며, 우승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프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한다. 우승이라는 목표 때문에, 허리가 부서지더라도, 가진 시간과 열정을 모두 소진해서라도, 안 되는 것을 되게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프로’가 되어야 하나? ‘프로’ 야구가 아닌 다른 야구는 없나? 사실 프로는 어떤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눈코 뜰 새 없이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스펙을 쌓고, 취업하여, 승진하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한다. 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혹은 사랑 등의 개인적인 감정도 ‘잘’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쉬엄쉬엄하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이, 미디어가 더 노력하라고, 이겨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말한다. 지는 건 이기는 것의 반대, 옳지 않은 것인 양 이야기한다.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그 이야기에 떠밀려 ‘프로’의 세계로 발을 들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따라 열심히 달린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다 능력과 성취, 돈을 향해 아주 열심히 뛰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손과 발은 항상 열심히, 바쁘게 움직인다.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할 때 혼자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매우 힘든 일이다.


 

아무리 봐도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이고 6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하위의 삶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면 치욕을 겪고, 꽤 노력을 해도 부끄럽긴 마찬가지고, 무진장,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봐야 할 만큼 한 거고, 지랄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좀 하는데’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꽤 이상한 일이긴 해도 원래 프로의 세계는 이런 것이라고 하니까. (p. 136)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의 처음, 그리고 마지막 팬클럽 회원인 ‘나’와 성훈은 ‘지면 어때?’라며 ‘프로’야구가 아닌 야구 그 자체를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본다. 프로, 그리고 프로가 당연한 세상이 봤을 땐 별 볼 일 없고 웃음거리인 ‘아마추어’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엄연한 ‘그들만의 야구’를 한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프로’라면 상상도 못 할 이야기지만, 야구란 운동이 원래 그렇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으면 점수가 나고 승부가 결정되는 운동이다. 잡기 힘든 걸 억지로 잡는 건 오히려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것 아닌가.


성훈은 이런 삼미가 더욱 대단한 이유가 그들이 프로의 세계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며 '죽어라' 움직이는데,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고 독자적인 신념과 특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는 건, 웬만한 ‘자기 수양’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왜? 이 세계는 언제나 선수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야. … 이봐, 팀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는 건 당연하잖아! 밤중에 연습이라, 보기 좋은데! …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뛰어! … 이봐, 뭘 생각해? 생각할 시간 있으면 뛰어 병신아! … 그게 힘들어? 힘든 걸 이겨내는 게 프로야! … 올해 목표도 우승이다. …… 던져! 잡아! 뛰어! 쳐! 빨리, 빨리 달려! 라고 하는데, 그 속에서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를 견지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p. 269)

 

 

이젠 1루로 나가서 쉬란 말이야…… 쉬고, 자고, 뒹굴고, 놀란 말이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봐. 공을 끝까지 보란 말이야. 물론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했겠지. 어차피 세상은 한통속이니까 말이야. 제발 더 이상은 속지 마. 거기 놀아나지 말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분명 그 공은 –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었어. (p. 252)

 


나도 한때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나의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학구열이 높은 기숙사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프로’의 세계가 무엇인지 톡톡히 맛보았다. 모두가 아주 치열하게, 쉬는 시간과 수면 시간까지 쪼개가며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열심히 하긴 싫었다. 친구들은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울었지만, 나는 공부가 정말 하기 싫어 울었다.

 

그 와중에 주변 선생님, 친구들은 하나같이 ‘누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더라, 정말 대단하지 않냐’와 같은 말을 건넸고, '이번 자습 땐 뭘 공부할 거냐'며 내 스터디플래너를 구경하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모두가 지켜보는 것 같았다. 자습실에서 졸다가 깨면 그렇게 부끄럽고 괴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프로의 세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3학년이 되고, 도저히 못 견딜 정도가 되자 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공부>를 했다. 모두가 수능에 신체 리듬을 맞춘다며 국어 영역 모의고사를 풀던 아침엔, 졸려서 공부가 되지 않으니 일단 등교해 3교시까지는 푹 잤다. 그리고 일어나 슬슬 공부했다. 아침 내내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는 조금도 관심에 두지 않았다. 오후가 되고 공부가 하기 싫어지면 당당하게 스터디 플래너에 ‘잠’, ‘외출’을 적어 넣고 낮잠을 자거나 교문 밖으로 나가 할 일 없이 걸어 다녔다. 그리고 돌아와서 잘했다는 의미로 동그라미도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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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그 유명한 ‘고삼’임에도 불구하고 1학년, 2학년 때 받던 스트레스의 절반도 받지 않았다. 공부 좀 안 하면 어떤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는 야구>도 야구이듯이,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공부>도 공부다. 프로들은 그런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하지만, 그런 공부는 <하기 싫어도, 울면서라도 하는 공부>보다 이성적인 공부다. 적어도 나에겐.

 

‘프로’의 세계가 유혹하는 순간, 문득 그런 공부가 불안한 순간들도 많았다. 실컷 놀고 있는데 친구가 공부에 열중한 모습을 볼 때, 인터넷 강의 속 강사가 자꾸 ‘지금도 네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고 말할 때, 멈칫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지 않았다. 비싼 돈 주고 산 인터넷 강의도 그 후로 듣지 않았다. 나의 세계에서 그건 옳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후회할 것투성이인 내 인생에서 그 시기만큼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칭찬하고 응원하고 싶다. 삼미 슈퍼스타즈에겐 소설 속 ‘나’와 조성훈이 시작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었듯이, 나에겐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 팬클럽이다.

 

그렇게 싫었던 고등학교도 끝났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공부>도 끝났다. 그리고 그때의 마음가짐은 없어져 간다. <돈 벌기 싫으면 벌지 않는다>는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보다 훨씬 더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프로'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유혹은 더 떨쳐내기 힘들다. 그래서 나의 세계를 구상하기보단 자꾸만 프로의 세계를 기웃거리고 있다.

 

프로의 세계를 기웃거리며 펼쳐 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프로가 아닌 다른 세계도 있음을,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음을, 그런 나를 응원하는 내가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나는 내가 구성하는 나의 세계를 응원한다. 아직은 조금 부족한 세계이지만, ‘프로’의 세계에 속지 않고, 천천히 쉬어가며 완성해나가기를 바란다. 그 완성된 세계가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세계일지라도 ‘그럼 어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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