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구가 말하는 진실에 대하여 [문화 전반]

82년생 김지영과 매(일) 맞는 여자로 바라본 허구적 아카이빙
글 입력 2019.12.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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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일들을 다루는 소설이다. 이 간단한 명제로부터 출발하여 『82년생 김지영』에서 등장한 허구적 아카이빙의 속성과 효과, 그리고 그것이 한국 여성운동의 맥락에서 어떠한 지형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82년생 김지영』이 택하고 있는 액자 형식의 소설 구조가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역시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의 여성 혐오 사례를 집합해놓은 인물로서, 1982년부터 2016년까지의 연대기를 통하여 각 시대별로 여성혐오의 양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났는지를 표상한다.

 

허구적 인물의 허구적 삶이지만, 경험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들을 채집하여 하나의 인물로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은 소설과 실제의 삶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소 설의 내용텍스트 자체가 주는 전복성뿐 아니라 형식의 전복성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운동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허구적 아카이빙에 대하여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하나의 축으로, 고백 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 자료와 기사들을 또다른 축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1982년생 김지영 씨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인생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제도적 성차별이 줄어든 시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하는지를 보여 준다. 『82년생 김지영』은 보고서 형식으로 쓰여 사실적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구체적인 경험들은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들을 채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등장하는 각종 팩트들은 지난 20여년 동안의 성차별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준다. 개인적 기억과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적 자료들을 통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삶으로 도약하는 근거가 된다.” (민음사 출판사 서평)

 

『82년생 김지영』은 허구의 구체적인 경험을 개인에 귀속시켜 고백하는 형식의 글로, 다양한 통계 자료들을 언급하며 소설을 풀어나간다. 이는 허구적 경험을 심리적 묘사와 함께 언급하는 여 타의 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지점인데, 이러한 기본적 형식 설정을 통해 『82년생 김지영』은 여성 문제를 다루는 것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매니페스토로 여겨지는 문구인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 적인 것”이라는 명제에 충실한 소설처럼 보인다.

 

출판사 서평과 작가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82 년생 김지영』은 커뮤니티와 SNS 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한 사례들을 채집하여 '김지영'이라는 가상적 인물의 이야기로 변형시켰다. 한국 여성 이름으로 흔한 편인 ‘지영’이라는 이름, 그리고 1982 년생이라는 구체적인 설정과 더불어서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은 김지영의 인생이 '여성'이라는 굴레로 얼마나 특정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때 사용된 구체적 사례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허구적으로 아카이빙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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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8년 7 월부터 11 월까지 진행했던 뉴미디어 아카이브 전시 <알레고리, 사물들, 기억술>의 소개에서는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대중장식』을 인용한다. "어떤 시대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 시대가 스스로에 대해 내리는 판단보다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피상적 차원의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써 더 잘 결정될 수 있다." 또한 전시 소개에서는 아카이브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자료와 작품은 매끄러운 인과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이 전시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에 섭니다. 자료는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고, 완전히 잊혀지거나 문득 다시 발견됩니다. 자료와 작품 사이에는 단절, 불일치, 우연, 사후적 재구성, 무관함 등 다양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시간과 함께 의미는 퇴색하고 경험은 사라집니다. 작가 자신도 세계의 파편들입니다. <알레고리, 사물들, 기억술>은 자료들을 작품이라는 결과에 종속시키는 전시가 아니라, 자료/사물들의 세계를 '작품의 평행우주'로 제시하는 전시가 되고자 합니다. 인과관계나 주어진 의미의 안전한 장소를 이탈하여 떠돌아다니는 사물들, 사물들의 수수께끼, 사물들의 새로운 계열을 구성하는 프로젝트가 되고자 합니다. 작가가 수집한 사물들(혹은 수집하지 못했던 사물들의 부재/공백)의 계열을 재구성하는 일은 관객의 몫으로 남습니다."

 

아카이빙은 단지 주어진 자료를 모으는 과정일뿐 아니라 '선별' 및 '재구성'이라는 2 차적 공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때 『82 년생 김지영』이 작품에서 수행하는 아카이빙 작업은 다수의 여성이 겪어왔던 문제들을 하나의 인물(이지만 보편적인 인물로 설정된) '김지영'의 인생 서사로 허구화 및 귀속시킨다.

 

이는 디지털 상에서 개인적으로 아카이빙되었던 디지털 아카이빙을 토대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는 소설의 인물을 통해 그 아카이빙 자료들을 선별 및 취합하여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은 것이다. 이는 시대별로 구분되는 소설의 특징과 더불어 각 시대별로의 여성 혐오의 양상과 특징 역시 맥락화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다수 여성의 경험을 모으는 것 역시 김지영의 이상행동으로 텍스트 속에 메타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김지영의 증상은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여성혐오 사회’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김지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바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김지영을 위한 여성들의 연대 행위다. 이 여성들은 김지영을 대신해 말하고 있다.”

 

김지영이 투명한 객체가 되어 자신의 속 마음을 다른 여성을 통해 말하는 이러한 서사적 설정은 김지영 외의 다른 인물들이 경험해왔던 여성혐오적 시선들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요컨대, 김지영이 다른 사람이 되어 말한다는 설정을 통해 소설은 김지영의 인생이 김지영 하나로 귀속될 수 없음을, 또한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양한 사례들이 아카이빙 되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매(일) 맞는 여자>와 아카이빙이 여성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여운규 감독의 <매(일) 맞는 여자>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들이 살해당하거나 맞거나, 강간당하는 장면들을 모은 푸티지영화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강력범죄 등에 의해 여성이 매일 맞고 죽어나간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매(일) 맞는 여자>는 특정 영화의 특정 장면의 재현만을 문제삼고 있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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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맞는 여자>의 푸티지 영화들은 현실을 허구적으로 재현해낸 작은 응축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82 년생 김지영』이 김지영의 인생을 통해 다양한 현실의 사례를 묶은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다른 소설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경험을 주로 묘사하지만 동시에 이 것이 공적임을 알릴 수 있는 사실적 자료를 제시한다. 『82년생 김지영』의 뒷부분에는 주석이 첨부되어 있어 각 자료가 어떠한 보고서에서 등장했고, 어떠한 기사에서 등장했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여성 인권 문제에 있어 끊임없이 나오는 문제 제기인 “피해의식”, “날조된 사실”등과 같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조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몇 남성들이 “이러한 사례는 픽션”이라 고 이야기하지만 김지영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통해 발화된 사건들은 현실과의 연관이 확실하기 때문에 실제적 아카이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82년생 김지영』에서 아카이빙된 여성혐오의 역사는 마지막 남자 의사의 말을 통해 다시 남성 중심의 서사로 여성 혐오의 역사가 엮어진다는 것을 메타적으로 그려낸다. “처음에는 한두 달 쉬면 되지 굳이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 언짢았는데, 생각해 보니 출산 때 또 자리를 비울 테고, 그 후에는 몸이 아프네 애가 아프네 하면서 번거롭게 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지 싶다. 물론 이 선생은 훌륭한 직원이다. 얼굴은 고상하게 예쁘면서, 옷차림은 단정하게 귀엽고, 성격도 싹싹하고, 센스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와 메뉴, 샷 수까지 기억했다가 사 오곤 했다.” (『82년생 김지영』,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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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맞는 여자>의 마지막 장면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독해가 가능한데, 마지막 영화는 <화차>의 푸티지다. 해당 장면에서는 남자가 “어딜 가든 내 뒤를 쫓아올 수밖에 없다”며 여성인 주인공에게 억지로 계약서 지장을 받아낸다. 결국 여성혐오의 아카이빙마저도 남성 중심으로 말해지고,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두 텍스트는 텍스트 자체에서 재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아카이빙이라는 작업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으로, 남성 중심의 역사 쓰기와 말하기를 메타적으로 비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여성혐오의 역사는 여성을 통해 쓰이고 읽혀져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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