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지난"했던" 생애를 향한 고독한 찬사 -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다큐멘터리와 반 고흐가 만나게 되면
글 입력 2019.12.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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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했던” 삶


 

낭만을 그리는 작가라고들 한다. 반은 맞는 이야기다. 실제로 후기 낭만주의를 이끌 수도 있었던 (이끌었다고 확언하기에 그는 너무 일찍 사망했으므로) 화가였을 뿐더러 고흐의 회화는 고전주의의 재현적 원리를 답습했다고 보기엔 형태적으로도, 색감의 면에서도 재현적인 무언가를 그려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아카데미 미술에서 한 발 떨어진 미술을 했다.

 

하지만 그의 회화 스타일을 후기 인상주의에 해당하는 것이라 한정하기에도 참 애매하다. 한창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초반부에 그는 렘브란트나 밀레의 작품으로부터 정확한 윤곽선을 왜곡한 거친 붓감 그리고 자연이라는 회화적 대상을 얻었을 뿐이지, 어떤 독자적인 회화 기법을 구사하고 있었다고 보기엔 난감하다. 물론 이후에는 인상주의의 색채 활용이나 색칠 기법을 수용하면서 후기 인상주의에서 표현주의로 본격적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서 있던 화가라고 명명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말이다. 나선과 물결의 파동, 구형의 표현 등 그만의 윤곽선 색칠 기법이 확립된 시점에는 더더욱.

 

그럼에도 그의 내면이 눈 너머의 세계를 자아의 늪으로 지나치게 끌어들인 탓이었는지, 고흐는 현실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기에는 태생적으로 부적절한 시야를 지니고 있었다. 강렬한 색감과 흐릿한 윤곽선으로 점철된 그의 작품들이 이를 증명한다. 넘쳐흐르는 자아로 물리적인 시공간마저 자신의 색깔로 뒤덮어버렸을 정도로 고흐의 생애는 지난했다. 어쩌면 아카데미즘을 부정한 회화를 그렸다는 것은 후기 인상주의라든지 표현주의라든지 등의 전문적인 미술적 사조를 지향했다는 의미에서 통용되어야 할 말이 아닐지 모른다. 자신의 정념을 끊임없이 화폭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재현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고전주의에 정면으로 대비된다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반(反)아카데미적인 회화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이 해석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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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지난했다’는 말은 ‘안타깝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니까 보편의 매스컴이 말했던 것처럼 살아생전 스스로의 재능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죽은 후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기에 그의 생애가 지난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면 앞에 쓴 것처럼 지난‘하다’라는 표현을 썼을 거다. 고흐의 삶은 확실히 지난했다는 종류의 것이지, 지난하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겨냥했던 비정상의 인간이라는 시선들, 그것에 투쟁하며 헌신적인 기독교 정신을 베풀었던 그의 생애.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회화 작품들. 비정상이라는 화살이 가해지는 순간들 동안에는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던 그림들이 죽은 후에야 영원이 담긴 그림이라며 칭송받는 모순적인 풍경. 이 모든 것이 고흐의 삶이 충분히 지난했다는 걸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지표들인데, 이것들을 보고도 그의 삶을 지난한 것이 아닌 지난했던 것이라 평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혹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고흐의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미학적으로 지니는 의미와 함께 그의 생애를 살펴보는 태도는 다소 진부할 것 같다. 쉽지 않은 시도라는 걸 알지만 이번 영화를 보면서는 그런 교과서적인, 전공병에 가까운(...) 태도를 버리고 싶다. 대가의 전기를 그려낸 영화를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그 또는 그녀에 관한 정형화된 배경 지식을 되뇔 수밖에 없다. 그게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재미없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내가 그렇게 보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고흐를 포함한 모든 위인의 삶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다. 현재형 어미는 직관적인 해석만을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영화의 열린 결말처럼 말이다. 물론 리뷰를 작성할 때는 저런 미학사적인, 혹은 철학에 가까운 미학적인 이야기 역시도 논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프리뷰에서는 이런 행동을 지양해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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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원을 담으려던 생(生)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이는 진리를 알고 있기에 쉽게 패배하지는 않은 것이란다.”

 

(테오에게 보냈던 편지 중 일부. 1884년에 테오에게 회신했던 것으로 추정.)


 

줄리언 슈나벨이 감독을 맡은, 고흐의 삶을 담아낸 전기 영화다. 2018년에 개최된 제75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영화다. 신기한 사실은 감독인 줄리언 슈나벨이 1980년대에 미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였던 작가였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표현주의의 초석을 놓은 고흐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지 않았을지 추측해본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삶 전체를 체험하게끔 하고싶었다”고 말했던 것만큼, 그리고 영화의 트레일러로부터도 추측할 수 있듯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식 내러티브 전개를 위한 연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내가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큰 이유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내러티브가 뚜렷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는데, 더 나아가 이 기법을 통해 많고 많은 소재 가운데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라는,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의 전기를 그려냈다는 걸 보고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 작품마다 상이하긴 하나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중적인 소재를 그려내는 기법은 다소 이질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캔버스 위에 영원이라는 정념을 꾸준히 표현하고자 노력했다던 굉장히 낭만적인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연출하기란. 사실적인 것과 사실적이지 않은 것이 공존하는 가운데에서 관객은 반 고흐의 시점을 어떤 방식으로 유영해야 할까.

 

고흐의 지인이었던 고갱도 등장한다고 들었다. 보이는 것 너머의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후기 인상주의의 노선을 선택했던 인물이다. 타히티의 심장을 그려내는 화가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화가다. 확실히 고흐 개인의 시선에서 그려내기 위해서는 주변부 인물의 등장이 필수적일 테니. 영화를 통해 둘의 관계성에 주목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 중 하나가 되겠다. 고갱의 생을 짧게 설명하라고 한다면—중개인이라는 사회적 위치,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 함께하는 가족 등 세속의 인생을 통째로 내버려두고 훌쩍 타히티로 넘어가 예술가로서 삶을 마감한, 필히 대담한 인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대담하다 못해 비범하다. 고흐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만 말할 수도 없고. 고갱이 떠나겠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의 귀를 잘라버렸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화폭에 영원을 담기 위한 시도를, 자신의 신앙심을 위시하여 정신적 투쟁을 일삼았던 인물의 서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반 고흐라는 인물이 오늘날 문화예술에서 확보하고 있는 상품성과 브랜드성은 차치하더라도, 위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한 인물의 전기를 표현한 영화를 보면서 인물을 향한 기존의 전형적인 해석에서 탈출할 경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영화는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형의 해석이 아니라 관람자만의 단언적인 해석, 즉 과거형의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재된 영화다. 이렇게 말하니 다큐멘터리 영화 신봉자처럼 보이지만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현실에 기반을 두어 연출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신선한 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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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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