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조성호 클라리넷 리사이틀 "ARIA"

글 입력 2019.12.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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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클라리넷리사이틀_ARIA_포스터 FINAL.jpg

 

 

벌써 2019년도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는 슬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한 해 동안 있었던 희로애락의 발자취들을 되짚어보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추스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진일보를 준비하기에 좋은 공연이 있었다. 바로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의 리사이틀이다. 지난 13일 금요일 저녁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이 무대를 앞두고, 오랜만에 들을 클라리넷 리사이틀이 정말 손꼽아 기다려졌다. 클라리넷은 앙상블일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기지만 동시에 솔로로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악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아름다운 음색으로 표현할 다양한 인생의 감정들이 어떻게 와닿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클라리넷은 호소력이 있으면서도 다소 절제된 음색이라고 생각한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울 수도 있고 동시에 예리하게 저며들 수도 있는 그 소리로 조성호가 전달할 오페라의 세계가 기다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중에 끊임없이 오페라 반주까지도 하는 도쿄필 클라리넷 수석주자의 연주니까 말이다.

 

 


 

P R O G R A M

 

루이지 바시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주제에 의한 디베르디멘토
Luigi Bassi  Divertimento from Verdi's ‘Il Trovatore’

 

카를로 델라 자코마  푸치니의 ‘토스카’ 주제에 의한 환상곡, 작품 171
Carlo della Giacoma  Fantasia on Puccini’s ‘Tosca’, Op.171

 

루이지 바시  베르디의 ‘리골레토’ 주제에 의한 환상곡
Luigi Bassi  Fantasie brillante on Verdi’s ‘Rigoletto’

 

- I n t e r m i s s i o n -

 

도나토 로브렐리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주제에 의한 환상곡, 작품 45
Donato Lovreglio  Fantasia on Verdi’s ‘La Traviata’, Op.45

 

카를로 델라 자코마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주제에 의한 환상곡, 작품 83
Carlo della Giacoma  Fantasia on Mascagni’s ‘Cavalleria Rusticana’, Op.83

 


 

 

먼저 첫 곡은 루이지 바시가 편곡한, '일 트로바토레' 주제에 의한 디베르티멘토였다. 루이지 바시 본인이 평생 클라리네티스트였기 때문에 그는 클라리넷의 매력을 잘 살리는 방향으로 작곡을 아름답게 잘해낸 것 같았다. 음원으로 미리 이 작품을 들어볼 때에 클라리넷의 선율에 녹아있는 인생사가 아주 밀도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가 이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한 순간, 너무나 놀랍게도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없이 음원으로 듣기만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기교가 요구되는 곡이라고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며 잘게 쪼개진 수많은 음들을 놓치지 않고 짚어나가야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눈 앞에서 목도하고서야 비로소 이 곡이 엄청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관악기로 부드럽고 약한 소리이되 명료한 음을 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걸 눈 앞에서 해내는 조성호를 보며 시작부터 감탄했다.


이어지는 두번째 곡은 카를로 델라 자코마가 편곡한 '토스카'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었다. 푸치니의 비극 오페라답게, 시작부터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강렬한 타건이 객석으로 번개처럼 내리쳤다. 그리고 뒤이은 조성호의 강렬한 음. 삐끗하는 소리가 나기도 쉬울 법한데 음이 흔들리지 않고 강약을 넘나들었다. 느리게 이어지는 선율, 그 속에 담겨있는 격렬한 감정은 매우 깊었다. 깊은 고뇌와 절망감이 클라리넷의 호소력 짙은 음색에 묻어났다. 인생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노(怒)와 애(哀)의 정서가 김재원의 손끝에서는 아주 극적으로, 그리고 조성호의 호흡으로는 절절하게 그려졌다. 일 트로바토레를 연주하는 조성호의 모습에서는 그가 보여주는 기교에 완전히 압도되었던 것 같은데, 그가 연주하는 토스카에서는 클라리넷의 음색과 감정표현에 몰입이 되었다. 사실 이 작품의 연주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분 정도인데 적어도 그 동안만큼은, 조성호가 온전히 토스카인 것만 같았다.


1부의 마지막 곡은 다시금, 루이지 바시의 작품이었다. 바로 '리골레토'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다. 이 작품은 첫 곡과 같은 작곡가이다보니 아무래도 서로 비교를 하게 된다. 그런데 첫 곡인 일 트로바토레의 경우는 실제 연주를 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면, 리골레토 환상곡의 경우 기교와 다양한 감정표현이 동시에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곡이었다. 마치 첫 곡과 두 번째 곡에서 돋보였던 점들이 골고루 녹아있는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작품의 비극적인 결말을 미리부터 알려주는 듯한 격정적인 시작에 이어 부드럽고 달콤한 아리아로 선율을 변화시켜가며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조성호는 인상적인 기교와 아름다운 감성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클라리넷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폭과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는 리골레토 환상곡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왔다. 가히 이번 리사이틀 1부의 화룡점정이었던 선곡이었다.

 

 

Sungho Cho_002ⓒTaeuk Kang.jpg

ⓒTaeuk Kang

 

 

2부의 시작은 도나토 로브렐리오가 편곡한, '라 트라비아타'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었다. 이로써 베르디의 3대 오페라는 이번 무대에 모두 나온 셈이다. 그러나 베르디의 3대 오페라 마지막으로서가 아니었더라도, 이 작품은 너무 아름다워서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입부를 가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일렁이는 듯한 부드러운 김재원의 트레몰로가 이어지고, 그 사이를 꿈꾸는 듯이 누비는 조성호의 부드러운 소리가 객석을 감쌌다. 1부의 여운에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전환이 되었다. 꿈결같이 부드러운 연주에 이어 맞이하는 카덴차는 화려했다. 그 뒤에 맞는 짤막한 축배의 노래는, 마치 약방에 감초처럼 다시 한 번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마치 조성호의 선율이 대사를 읊어나가는 것처럼 흘러가는 대목이 있었다. 프로그램 북에 보니, '레치타티보를 부르는 듯한' 구간을 만나볼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 조성호의 모든 호흡이 노래 그 자체 같았다.


마지막 작품은 카를로 델라 자코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었다. 이 작품은 제목만 보고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들어보니 유명한 선율이 있었다. 바로 인터메조 선율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익숙했던 선율인데 매번 찾지 못했던 그 선율이 바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자코마는 이 아름다운 인터메조의 선율까지도 녹여 환상곡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들을 때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자코마가 편곡한 이 작품은 앞서 들었던 작품들보다도 더욱 깊은 감정과 높은 기량을 요하는 작품인 것 같았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어느 한 쪽도 부족해서도 안되기에 중심을 잡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호는 손끝까지도 놓치지 않고 몰입하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가 들이마시는 숨 한 번도, 손가락의 움직임 한 번조차도 흔들림이 없었다.

 

 

curtaincall.jpg

 

 

뜨거운 환호와 함께 무대를 마치고,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는 객석의 화답에 응하여 다시금 무대로 나섰다. 그가 연주한 앵콜곡은 아마도 모두에게 첫사랑과 같은 작품인 카르멘이었다.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열정적인 첫 타건에서부터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익숙한 선율이었다.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을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음색으로 들으니 더욱 그 극적인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다. 나중에 보니 이 편곡은 니콜라스 발데유가 진행한 것이라고 한다. 카르멘 판타지의 느낌이 아주 응축되어 있는, 정열적이고도 아름다운 앵콜이었다.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이어지자, 조성호는 두번째 앵콜곡을 연주했다. 피아노 첫 음을 들었을 때는 혹시 했는데, 클라리넷 첫 음을 듣고 나니 역시 하고 말았다. 오페라는 보지 않았더라도 아리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의 선율이었기 때문이다. 클라리넷의 호소력 짙은 음색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마지막 빈체로에선 마치 사람이 노래하는 것같은 그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의 리사이틀은 아리아라는 부제와 어울리게 정말 다양한 오페라의 향연이었다. 본 무대에서 보여준 일 트로바토레, 토스카,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더하여 앵콜을 통해 카르멘과 투란도트까지 전해주었다. 그는 클라리넷으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그려냈으며, 무엇보다도 객석의 감정을 그 뜨거운 일련의 순간들에 몰입시켰다. 도쿄필에서 수많은 오페라들을 연주했기 때문일까. 조성호는 매순간 그 아리아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다채로운 무대를 보여준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는 내년에도 활발한 무대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내년 목프로덕션의 기획공연으로 2월 중에 다시금 IBK챔버홀을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솔리스트로서가 아닌, 뷔에르 앙상블로 무대를 찾는다.

 

조성호는 천생 독주자 체질이라고 스스로를 평하지만, 조성호의 연주는 자신만의 매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어느 악기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매력이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선율로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었다면, 다가오는 2월에는 같은 목관악기들과 함께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룰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줄 조성호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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