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엇이 아닌 내가 될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연극 '후회하는 자들'

글 입력 2019.12.13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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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카메라가 깜빡이며 촬영을 시작한다. 미카엘과 올란도.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와 마주 앉는다. 편하게 말씀하라는 카메라맨의 말에 둘은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연극 <후회하는 자들>은 그렇게 시작된다.

 

스웨덴의 젊은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쿠스 린딘의 데뷔작인 <후회하는 자들>은 2006년 초연 이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다. 또한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돌아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

 

그 돌아보는 사람, 후회하는 자는 누구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직관적인 대답은 간단하다.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였고, 이제는 다시 남성으로 돌아온 올란도와 그러길 바라는 미카엘이 바로 극 중의 후회하는 자들이다. 그 둘은 각자의 삶 속에서 다른 인생을 꿈꾸며, 새 인생의 시작을 꿈꾸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였지만 그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수술이 끝나자 마자 미카엘은 후회하고, 올란도는 자신이 MTF (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인 것을 숨기고 한 오랜 결혼 생활이 막을 내리며 남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그리고 다시 남성으로.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그들의 인생은 언뜻 큰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그 인생도 성격도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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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제공(사진_이은경)

 

 

낯선 존재들을 집단화하여, 그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폭력적인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시스젠더 헤테로만을 일반적인 인간이라고 여기는 차별이 사회에 만연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외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들에 대해서는 무지할 뿐 아니라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한 데 묶어 ‘퉁쳐서’ 표현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미카엘과 올란도가 비슷한 문제를 가진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당연하게도, 놀라울 것 없게도 그들은 서로 다르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미카엘은 여성을 좋아하며 하루빨리 남성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성적 관계에 대해 큰 욕망이 없음에도 자신의 몸이 완전히 남성이기를 원한다. 그와 달리 돋보이기를 좋아하고, 남성을 좋아하는 올란도는 육체적으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간의 상태에 놓인 자신에 만족한다. 스스로를 경계에 놓인 인물이라고 칭하며 묻는다. 사람들은 흔히 정상과 비정상을 말하지만, 그 경계는 누가 정하였는가?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우리는 그런 말들에서 더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후회하는 자들] 홍보컨셉 사진.jpg

 

 

페미니즘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우리나라 사회 이슈중 빼 놓을 수 없는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시위를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최근의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 중 일부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패미니즘의 주체로 인정하며 섹스와 젠더가 다른 존재들을 부정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MTF 트렌스젠더는 사회가 그동안 여성에게 강요해온 소위 ‘여성성’이라는 것을 도리어 재생산하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폭력적인 문제는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올란도의 말을 들어보자. 원래가 돋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올란도는 처음 여성으로 수술을 받고 진한 화장, 레이스 달린 드레스, 그리고 높은 하이힐을 신으며 자신을 치장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돋보이기 위해서 뿐 아니라 ‘책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막상 다른 여자들은 아무도 그렇게 하고 다니지 않는데, 자신은 책 잡히지 않기 위해서.

 

다시 남성의 몸으로 돌아가는 복원 수술을 위한 미팅을 준비하는 올란도의 모습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그는 미팅에서 최대한 ‘남성’ 같은 모습을 한 뒤, 그 속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여성성’을 일부러 어색하게 부각하며 자신은 남성이라고 주장한다.

 

 

[후회하는 자들] 올란도(김용준 분) 과거 사진.jpg

 

 

그들의 이런 행동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성성’을 재생산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것은 이미 여성과 남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차별적 시선으로 갈라 놓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포착당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 아닌가. 이런 실존하는 투쟁의 고통을 단지 또 다른 가해나 비정상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다른 곳으로 미뤄 놓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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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제공(사진_이은경)

 

 

미카엘은 여성인 미카엘라와 남성인 미카엘을 오가는 자신의 행동을 일종의 역할 놀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상황 속, 단지 몇 분의 간격을 두고 미카엘이 되었다가, 다시 미카엘라의 모습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도리어 사람들이 포착하고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과 ‘남성의 모습’을 흩트려놓는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올란도는 첫 번째 성전환 수술은 보험 처리가 되지만 두 번째 수술은 그렇지 않은 현재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한번은 되는데 두 번은 안되는 이유가 뭘까, 그들이 생각하기에 성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선택은 언제나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는, 선명하고, 또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여성과 남성, 또한 그 외의 수 많은 젠더들이 언제나 그렇게 선명할 수가 있을까? 우리 모두가 후회하는 자들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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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수유 제공(사진_이은경)

 

 

3000년 후에는 젠더가 없어질 것이라고, 어느 누가 그렇게 말했노라고 미카엘은 말한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아주 앞선 사람이 되는 것일테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그 언젠가 우리를 규정 짓는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경계가 없어지거나, 있어도 없는 듯 넘나들 수 있게 된다면, 오늘 내가 A였다가 내일 내가 B라고 말해도 누구도 의심의 눈초리를 갖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그저 나 자신이 되면 된다. 올란도는 어떤 단어들은 사전에서 사라지거나 아예 그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경계는 사라지고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후회하는 자들] 포스터.jpg




 

후회하는 자들
- 돌아보는 사람들 -


일자 : 2019.12.07 ~ 2019.12.25

시간
화, 수, 목, 금 8시
토, 일 4시
월 공연 없음
 
*
12.25(수) 4시 공연
12.15(일) 공연 종료 후 관객과의 대화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티켓가격
전석 35,000원
  
기획
두산아트센터, 극단 산수유
 
제작
극단 산수유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15세 이상

공연시간
80분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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