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눈사람] 가끔은 캐롤이 무섭다

첫 번째 눈사람: 연말 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대
글 입력 2019.12.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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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자꾸만 캐롤이 들린다. 나도 모르게 캐롤을 흥얼대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벌써 12월이다. 종강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가 아예 지나가고, 내 나이에 1이 추가된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겁이 났다. 나는 1년간 무얼 했나? 내가 벌써 한 살 더 먹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무방비한 채로 2020을 맞이해도 되는 걸까?

어른이 될수록 나이가 드는 데에 무뎌진다고 한다. 전보다 많이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무감각해지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한 살 많아질 때마다 설레던 감정이 남아 있어서, 아직도 그 숫자가 참 중요하게 느껴진다. 사실상 지인들과의 호칭 정리 외에 더는 나이가 큰 의미는 없다. 14세 이상도, 15세 이상도, 심지어 19세 이상도 이젠 다 프리패스인 "성인"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고 더는 봉인 해제될 무언가는 없어졌다. 정치 선거에 피선거인으로 출마할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정말 나이는 그저 "내가 몇 년을 살았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물론, 알바 지원이나 청소년 할인의 경우 아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19세와 20세의 차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새해에 대한 설렘이 전과 같지 않아졌다.



 

우리의 연말 증후군



연말이 되면 '연말 증후군'을 앓을 위험성이 있다. 연말 증후군은, 한 일이 없다는 자괴감,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 외로움 등에 빠져 우울해하는 증상을 말한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당장에 닥친 취업 실패, 실업 등의 제각각의 원인을 안고 있다. 갑자기 닥쳐온 연말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심할 경우 신체화된 증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청춘의 연말은 놀랍도록 불안하다. 우리의 연말 증후군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우리를 보호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대학만 오면 될 줄 알았는데, 대학에 오니까 시작이었다. 연말 파티를 계획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불안한가 싶은 마음은 불안감을 더욱 키울 뿐이다. 연말, 우리의 연말 증후군은 추위를 타고 온 독감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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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축제 분위기는 연말 증후군을 악화시키는 데 한몫한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로 붐비는 거리를 걷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나만 빼고 다 즐거운 것만 같다. 들려오는 캐롤에, 웃음소리에 화가 나기도 한다. 특히나 솔로들은, 연말에 가장 큰 외로움을 느낀다. 사실상 벚꽃이 날리는 봄보다, 연말의 반짝이는 거리를 홀로 걸을 때가 더욱 쓸쓸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연초와는 달리, 연말에는 한없이 작아진다. 남은 인생에 다시는 2019년은 없을 테니까,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만 잔뜩 떠오른다. 갑자기 별생각 없던 날들에 의미가 부여되고, 스스로 합리화했던 모든 것들이 허무해지기 시작한다. "끝"이라는 말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졸업을 앞둔 학생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 십상이다.


 

보내지 못하는 2019


 

학생 때는 연말 증후군을 느끼기 어려웠다. 한 학년이 올라가는 일은 두려움보다는 설렘에 가까웠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더 어렸을 때는 "고학년"이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대학에 입학한 후에 체감하는 연말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렸다.

수능 후 반수를 한 친구에게 연말을 잘 보내고 있냐고 물었다. 올해 처음 수능 없는 연말을 맞아본 그녀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녀는 "수능이 없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허전해. 1년간 되게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뭘 위해 열심히 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수능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2019를 증명해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방황을 느끼게 한다.

"수능"은 많은 학생의 가장 큰 목표이다.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몇몇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수능을 위해 12년을 공부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능은 학교생활의 종착역에 가깝다. 뚜렷한 목표와 정확한 기간이 있는 것이 그때엔 참 무서웠는데, 그래도 그 목표가 버틸 힘이 돼 주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젠 우리에게 어디까지 얼마큼 왔는지 알려줄 척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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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도 시험이 있고, 종강을 하고, 학년이 오르지만, 그렇다고 졸업이나 취업이 보장되어 있지는 않다. 나의 취업을 보장해줄 정확한 방법이나 모델이 제시되어 있지도 않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혹은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나의 커리어를 채워 나가야 한다. 내가 올 해에 쌓아온 것들이 잘 해온 것들인지도 미지수다. 누구도 나의 길에 대한 확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보내지 못하겠다. 2019년 1월 계획했던 것들, 가령 봉사활동이나 어학 자격증 따기, 그런 것들이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었는지 모르겠다.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틀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무언가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다들 같은 마음이겠지 싶으면서도, 나만 올 한해를 헛되이 보낸 것 같다.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다.

 
 

아직은 자신 없는 2020



새해에 대한 설렘을 가져보려 해도, 어느 포인트에서 설레야 할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 살 더 먹는 일의 의미는 사라졌다. 한 학년이 높아지는 것은 설렘보단 두려움에 가깝다. 새 학년이 된다고 새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워질 것도 없고, 그냥 "2020년이 오긴 오는구나." 따위의 말들을 하며 무덤덤하게 새해를 맞을 뿐이다.

졸업의 압박은 생각보다 심하다.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해도, 취업 준비는 짧을수록 좋기에 학교를 다니며 내내 놓을 수는 없다. 준비한다고 보장된 취업은 없다. 선배가 간 길이 나의 길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저 불확실 속에서 '어딘가 한 자리쯤 날 위한 자리가 있겠지' 하면서 졸업에 하루하루 다가간다.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힘들다. 필자는 2학년이지만 꾸준히 취업 포트폴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리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은, 캐롤이 들리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미리 시작해서 다행이지, 벌써 이렇게나 되었구나. 졸업이 머지않았다. 2020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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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할까?"

농담 같지만, 반은 진담이다. 이제 대학생들 사이에 휴학은 졸업 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휴학"은 이상적인 표현일 뿐이다. 진급에 대한 두려움은 휴학으로 이어진다. 취업 준비가 되지 않아서 졸업을 미루기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다수이다.

 

"대학원 갈까?"

역시 반은 진담이다. 취업은 되지 않고, 취준생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들이닥친 졸업에 대해 또 한 번 길을 잃게 된다.


*


캐롤에, 연말에, 신년에 "마냥" 즐거울 수 있던 시절은 갔다. 청춘은 즐거울 것만 같겠지만, 우리의 연말 증후군은 생각보다 깊고, 쓰리다. 한 해를 보내는 일도, 새해를 맞이하는 일도 예전 같지가 않아졌다. 쉬운 선택지도, 정확한 답안지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앞에, 귀를 막고 캐롤을 외면하려 해본다. 그래도 밀려오는 불안감에 휴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청춘의 연말 증후군일지 모른다.


신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연말 증후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올 내년 이맘때에 다시금 실천하지 못한 그 계획들로 인해 우울해질까 봐 겁이 난다. 나이가 드는 게 익숙해질 때쯤엔, 지난해를 흘려보내는 일 역시 익숙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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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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