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테디 보이, 테디 걸 (Teddy Boy, Teddy Girl). 반항과 자유. 그 사이의 어딘가. [패션]

글 입력 2019.12.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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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도, 40-50대 중년도, 70-80대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들 중 젊은 시절이 없던 사람은 없고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젊음이 머물렀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에 순응하기도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고, 반항도 하며 살아왔다.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반항아처럼 살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화 친구나 바람에서 볼 수 있듯 일진이라 불리는 이들이 반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부류의 반항은 하나의 문화라기보다 사회적 병폐로 취급받는다. 그럼 반항은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인 대답은 '아니다'이다. 반항도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 이들 테디 보이(Teddy Boy)처럼.

 

 

 

WHO IS TEDD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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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London. Adam and Eve pub in Hackney.1976. © Chris Steele-Perkins/ Magnum Photos. from HUCK

   

 

세계 2차 대전 이후 영국 Savile Row에서 남성 양복점을 운영하던 부유한 재단사들은 에드워드 시대에 유행하던 스타일에 기반한 에드워디안 댄디(Edwardian Dandy) 스타일을 유행시키려 했다. 상류층 자녀들과 젊은 장교들은 부의 상징 같은 개념으로 에드워디안 댄디 스타일의 정장을 즐겨 입었고, 재단사들은 판매 량을 늘리고자 많은 의복을 제작했지만 현실은 재고가 남아돌아 영국 곳곳의 의류점으로 흘러가 헐값에 팔리기 일수였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상류층들이 노동 정부가 외치던 빈곤문제 해결에 관한 요구를 무시하고 이들을 조롱한다는 의식이 팽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인 노동계층의 자녀들은 싸게 팔리게 된 상류층의 전유물 같던 에드워디안 스타일에 심취했고 곧 영국 곳곳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처음에는 Cosh Boys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젊은이들은 Daily Express라는 잡지사에서 일하던 한 기자가 에드워드 왕의 애칭이었던 Teddy를 차용한 Edwardian to Teddy라는 제목의 기사로 인해 Teddy Bo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테디 보이 또는 테디 걸(Teddy Girl)이 향유하던 공통적인 스타일은 슈트다. 하지만 전형적인 클래식 슈트가 아니라 Spiv라 불리던 사기꾼들이 입던 미국의 주트 슈트(Zoot Suit)와 비슷한 형태의 슈트를 입었다. 일반적인 트라우저 대신 밑위가 배꼽까지 높게 올라오는 하이웨스트 디자인에 배수관 모양의 핏으로 재단하는 드래인 파이프 트라우저 (Drainpipe Trouser)에, 벨벳 장식이 들어가거나 폭이 큰 칼라의 블레이저, 플립 포켓 디테일, 거기에 굽이 높은 크리퍼를 신었으며 양말을 다 드러내는 부류도 있었다.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는 헤어스타일이다. 테디 보이들은 브릴크림(Brylcreem)이라는 포마드와 비슷한 제품을 사용해서 앞머리를 잔뜩 올리거나 덕 테일(Ducktail)이라고도 하는 오리 꼬리 같은 모습의 헤어스타일로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지금의 포마스 스타일보다는 반항적인 느낌이 가득한 헤어스타일을 많이 하고 다녔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향유하던 테디 보이는 하나의 서브컬처로 태어났지만 영국 최초로 젊은이들만의 경제인 유스 마켓(Youth Market)을 형성했고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아 이후에 태어나는 모즈(Mods), 락커(Rocker), 펑크(Punk), 뉴 로맨틱(New Romantic) 등의 밑거름이 됐다.

 

세상에 대한 반항 의식으로 가득 찬 질풍노도의 사춘기 청소년의 상징과도 같았던 테디 보이는 Blackboard Jungle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던 시기에 영화관 내부를 부수거나, 유리병을 발로 차서 깨거나, 경찰과 충돌하는 등 여러 범죄를 일삼아 the teen menance, feral youth 같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갱단을 형성하기도 했으며 사회적 반항 행동이 격해져 인종 차별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1958년에 노팅힐에서 카리브계 흑인에 대한 차별 양상으로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도 있었다.

 

사춘기에 사회에 대한 반항을 표출하거나 자신만의 자유를 추구하던 이들은 이처럼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행동이 격해져 문화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WHY TEDD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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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REBELS MARKET

 

 

비록 인종차별 시위나 폭력 행동 따위로 인해 좋지 못한 이명이 붙기도 했었으나 테디 보이는 젊음과 자유, 그리고 그 시기에만 뿜어져 나오는 '반항'을 하나로 문화로 만들어낸 하나의 집단이자 예술가다.

 

상류층이 무시하던 노동계층의 자녀로 태어나 자신들을 무시하던 이들이 자랑처럼 여기던 문화를 가져와 되려 유행시키고 영국 전체로 뿌려버린 역전의 아이콘인 것이다. 틀에 박힌 사고나 세상의 선입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열망을 당당히 표출하는 그 정신은 무척이나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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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Tory Burch, Thom Browne, Chanel. from VOGUE

 

 

테디 보이는 패션도 완벽하게 내 취향을 건드린다. 역사가 중요하듯 클래식 스타일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여기에서 나오는 깊은 맛이 있는 것은 분명 하나 그 정형화된 틀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정신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예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고, 이는 자유로움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틀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오랜 보존을 위해 아주 훌륭한 방식이고 일정 수준의 안전을 보장하지만 이런 틀에 너무 얽매이면 새로움이 태어나지 못한다. 테디 보이가 보여주는 슈트의 재해석 같은 새로운 스타일 말이다. 정장은 정해진 핏으로만 재단하고, 구두나 힐만 신어야 예쁜 옷이 아니다. 트라우저를 하이웨스트로 배꼽까지 올리고, 바지폭은 넓혀버리고, 통굽 구두를 신어도 예쁠 수 있다. 깔끔한 느낌보다 거칠고 반항적인 느낌으로 머리를 잔뜩 세워도 잘 어울린다.

 

수트라는 패션의 재해석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기존의 사회가 요구하던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자유로움, 반항아, 야성적인 느낌을 만들어냈다. 청소년기의 반항심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당당히 표출하는 그 모습은 섹시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쓴 글에서 계속 언급했지만 내가 패션에서 추구하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어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아주 간단한 것이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거나 옷을 살 때 “이런 거 입으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게 바로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남의 시선이 뭐가 중요한가? 내가 입고 싶으면 입고 사고 싶으면 그냥 사면되는 일이다.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아무 상관없다. 내가 사는 삶에서 나보다 남의 비중이 더 크면 안 된다. 적어도 옷이라도 당당하게 나답게 입자.

 

 

 

STYLE SUGG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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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 ZARA, BERSH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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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ZARA, 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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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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