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원한 의미로 남아있을 그대에게 - 연극 "라 뮤지카"

“나는 당신에게 금지된 유일한 여자야.”
글 입력 2019.12.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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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두 개와 의자 네 개, 그리고 전화기와 스탠드 조명. 연극 <라 뮤지카>의 무대를 이루는 소품의 전부이다. 두 남녀가 무대에 등장해 아무런 사건의 발생 없이 오직 대화로만 연극을 이끌어 간다.

 

프랑스의 여류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희곡을 바탕으로 탄생한 연극 <라 뮤지카>는 뒤라스 작품 특유의 구성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녀 주인공 한 명 씩 등장하여 둘 사이의 첨예한 감정 교류는 감상자를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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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극장에서의 연극이라는 형식 속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은 다른 어떠한 장르보다도 인물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호텔 로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극 속에서 배우는 단 두 명, 남주인공 미셸과 여주인공 마리만이 등장한다.

 

아주 드물게 호텔 카운터 직원의 말과 전화 음성이 내레이션으로 등장할 뿐, 한 시간의 연극은 오직 두 사람의 행동과 표정과 말소리로 채워진다. 작품에서 이미 이혼한 남녀는 신혼 시절 지내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 다음날 또다시 헤어질 것을 앞두고 지난 이별과 오해, 그리고 진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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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박태양

 

 

늦은 밤, 미셸은 객실로 들어가기 전 외출나간 마리를 로비에서 기다린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이혼하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가구를 처분하는 문제를 시작으로 그들의 이혼에 관한 이야기에 접어든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간 서로의 오해와 진실이 드러난다.

 

마리는 사실 춤을 추러 다녔고, 미셸과 함께하기를 늘 바랐지만, 미셸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느라 전혀 알지 못했다. 한편 마리에게서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을 미셸은 은연중에 알게 되어 마리와 대화를 시도했을 때 마리는 거절했다. 스스로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둘 모두 각자의 애인이 생겼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두 주인공은 대화를 통해 사실 각자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는, 이미 지나버린 진실을 마주한다. 이미 끝나버린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마주한 진실은 새로운 후회와 원망을 자아내고, 둘 모두 순간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진실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서로의 감정의 끝을 경험한 후이고, 서로에게는 각자 새로운 사람이 생겨 곁을 지켜주고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은 매 순간 바뀌기 때문에 이 극적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 뒤라스의 각본은 이러한 삶의 한 모습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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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박태양

 

 

오해라는 것이 하나의 매듭이라면, 둘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매듭을 해결하려했으나 관계는 더욱 심하게 엉켜버린 셈이다. 너무 심하게 엉클어져서 더 이상 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결국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그 끈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끈을 끊어버려도, 남겨진 두 가닥의 실은 여전히 심하게 꼬여 있을 것이다. 이혼한 뒤에도 둘은 이 매듭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이곳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각자 마음의 매듭을 조금씩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연극은 과거의 오해로 인해 매듭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매듭을 풀어주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엉킨 실타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극에서 서로의 매듭이 풀리는 모습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관객에게 역시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지난 기억에 관한 감정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뒤라스 특유의 ‘심리 문학’,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대단히 높이 평가받고 있는 그녀의 문학이 드러난다.

 

*

 

연극의 말미에 마리는, 다시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미셸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당신에게 금지된 유일한 여자야.”

 

둘의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서로는 서로에게 하나의 “유일한 존재”로 남겨졌다. 둘은 이루어질 수 없지만, 한편으로 서로에게 있어서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두 인물이 주고받은 감정들, 오해와 분노, 격분과 원망으로 인해 도달한 이혼, 그리고 이제야 다시 확인한 진실. 이러한 것들이 서로를 서로에게 금지시키는 유일한 위치에 놓이게 하였다. 따라서 “금지된 유일한 여자”라는 최종적인 진실을 확인하기까지 둘이 주고받은 모든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자, 영원히 유일한 존재로서 각자의 마음에 남아있을 서로를 상징하고 있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이번 연극은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 연극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데, 그 당사자인 인간들은 그 감정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불안한 개인들이 빚어낸 사랑이기에 그 사랑 역시 불안하다. 서로의 진심을 통해 관계가 맺어지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오해가 빚어지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관계를 유지할 용기를 잃기도 한다.

 

더 나아가 뒤늦게 진심을 확인하더라도 현재를 뒤로하고 다시 함께할 수는 없다고, “우연히 마주쳐야만 하는 관계”를 선언해버리는 것이다. 일말의 불신과 오해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연극 <라 뮤지카>는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샅샅이 보여주었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라 뮤지카>는 불완전한 개인,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불완전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이제 처음 경험하고 있거나, 이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뜨거운 사랑의 시절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까지, 연극 <라 뮤지카>는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훌륭한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간이 지나 그들의 감정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기에 다다랐을 때, 다시 한 번 이 연극을 감상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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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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