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소와 내용, 세계의 조화 -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과 "이브 58-1" [시각예술]

내년 4월 정식 개관을 앞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방문하다
글 입력 2019.11.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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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규모의 미술관은 한 번 둘러보려면 두세 시간도 부족하다. 그래서 커다란 공간들은 가끔은 내게 숙제처럼 느껴진다. 드넓게 펼쳐진 공간에 차고 넘치는 작품들을 모두 한 번씩은 눈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리고 리플렛과 벽면의 텍스트들에 등이 떠밀려 온전히 작품을 감상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작은 공간들은 항상 매력적이다. 다리도 아프지 않고 읽어야 할 텍스트가 많지도 않다. 오래 걸으면 쉽게 피곤해하고, 집중력을 발휘해 뭔가에 빠져드는 것에 취약한 나로서는 이 두 가지는 꽤나 반가운 특성이다. 그러나 작은 공간이 매력적인 이유는 당연히 이 두 가지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공간 특유의 정감 때문이다. 미술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요소 중 건축물의 외형은 꽤나 중요하다. 하지만 독특한 건축물이 항상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건축물은 때로 미술관의 내용, 즉 작품들에 쏠려야 할 시선을 빼앗아 미술관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의 장소성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라면 그곳은 더없이 아름다워진다.

 

그리고 나에게 이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준 공간은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이다. 이곳은 내년 4월 개관을 앞두고 있으나 현재 사전개관 프로젝트로 수장고 개방전 <0 컬렉션>과 성북도큐멘타 6 <공공화원>전, <조각가의 서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정식 개관 이전이라 그런지 홈페이지마저도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장소는 마치 오래 전부터 지금처럼 운영되어 온 듯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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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4월 개관을 앞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그 이유는 이곳이 최만린 작가가 1988년부터 30년간 몸담았던 자택을 리모델링해 탄생한 하우스 뮤지엄이기 때문이다. 한 인물이 생활했던 공간은 그의 삶과 가장 밀접한 장소이기에, 그를 기억하고 기념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작품들의 장소 또한 본래 작가의 집이었을 테니, 그곳은 한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북구는 최만린 작가가 집을 내놓자 그곳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며 개·보수를 진행한 덕에 이곳은 옛 건물의 따뜻함을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도 어엿한 미술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은 본래 작가의 자택이었던 만큼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산보국문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걷다 보면 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최만린미술관이 보인다. 흰 외벽과 짙은 갈색의 벽돌, 아치형의 대문과 영근 감나무가 눈에 띈다. 외부에는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미술관은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셔서 전시도 보시고 도서관에서 책도 읽다 가세요. 입장료는 무료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건물을 사람들이 미처 알아보지 못할까봐 적었을 법한 친절하고 사려 깊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하필이면 비가 쏟아졌다. 축축해진 우산과 겉옷을 털며 약간의 투덜거림과 함께 미술관으로 향했지만 대문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불평은 말끔히 사라졌다. 으슬으슬 추웠던 날씨 때문인지 미술관은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건물 내부는 말끔히 단장되어 관람객과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0 컬렉션>을 위주로 미술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0 컬렉션>展은 내년 4월에 진행될 최만린 작가를 본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를 앞두고 1층의 수장고를 일부 공개하여 대표 소장품 15점 가량을 미리 선보이는 전시이다. 또한 작품에 관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도 만날 수 있다. 작은 전시실에서 이루어지는 전시지만, 그의 총체적인 작품세계를 훑기에는 크게 모자람이 없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이브의 시대’와 ‘천·지·현·황·아의 시대’, ‘태, 맥의 시대’와 ‘0의 시대’로 나뉜다.

 

그는 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추상조각이 한국의 조각, 자신의 작업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한다면 추상화 이전의 초기작은 당시의 어지러웠던 시대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브> 연작 중 하나인 <이브 58-1>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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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 58-1, 최만린, 1958, 석고, 42cm x 29cm x 133cm,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영구 설치 작품

 

 

이 작품은 최만린 작가가 미대에 재학 중이었던 1958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의 1950년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은 완고한 3.8선과 폐허가 된 국토를 남겼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때의 한국은 국가 운영에 대한 고민,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마냥 고통과 절망의 시대는 아니었다. 길디긴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터진 한국전쟁 등으로 모두의 숨통을 죄었던 시대가 비로소 끝나고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일말의 희망감이 세상을 덮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 그의 조각에서는 아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미술계에서 젊은 미대생으로서 자신의 작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고달픈 시대적 상황에서 어떤 자세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혼재되어 있다. 최만린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부서진 상태를 주워 모아 엇비슷한 원상 속에 다시 회생시키는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흩어진 덩어리들을 그러모아 한데 덧붙이는 행위는 갖가지 사회적 혼란으로 흩어진 공동체의 개인들을 다시금 결합시키고자 하는 현실 극복의 실현이었던 셈이다.

 

그의 이브는 가시를 쥔 손을 늘어뜨리고 먼 곳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작은 머리와 가느다란 팔다리, 힘이 집중된 몸통이 눈에 띈다. 먼저 작고 평면적인 얼굴에 옴폭 패인 두 눈은 간결하게 표현되었으나 진솔하고 완고한 눈빛을 담고 있다. 얼굴의 중심부에 자리한 코는 곧고 강직한 데 반해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미세한 흔적만 남아 있다. 희미한 이브의 입은 고통의 상황에서 소리 내어 울부짖는 입이 아닌 고요히 다물어 버린 입이다. 이렇듯 시선을 먼 곳에 고정하며 말을 아끼고 있는 이브의 모습은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인내와 끈기를 표현한다.

 

그리고 불룩하게 솟은 배는 한편으로 잉태의 가능성과 생명성을 의미한다. 이브는 최초의 여성이었기에 그녀의 출산 또한 최초의 출산이었고 이는 흔한 출산과는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손에 쥔 가시와 연결된다. 가시라는 소재는 성서에서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인과 영육 간에 상처를 입히는 타락한 인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브의 가시는 의문을 남긴다. 가시는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의 노동, 즉 농사에 어려움을 겪게 한 형벌의 일부였을 뿐 이브에게 주어진 형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브가 들고 있는 가시가 또 다른 의미를 지님을 암시한다.

 

성서에서 가시는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중 마태복음은 가시라는 소재를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으로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가시면류관은 본래 그리스도를 능멸하기 위해 씌워진 것이었으나 이내 그리스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의미로 굳혀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의 탄생과 희생은 인류사와 종교사에서 대단히 새로운 시작이 되었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제 2의 이브’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이는 <이브 58-1> 속 이브가 손에 든 가시와 연결된다. 최만린 작가의 이브 또한 당대인들이 맞이했던 고통과, 그럼에도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즉 이브가 손에 쥔 가시는 고통과 희생을 동시에 의미하며, 이브는 가시를 움켜쥔 고통을 책임지고 희생해야 할 인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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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브 58-1>은 단순히 상처 입은 이브의 모습을 빌려와 당대의 고통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는 난잡한 사회상과 혼란한 자아를 딛고 사회와 자신 스스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던 바를 작품에 고스란히 남겼다. 최만린 작가는 곧 다가올 미래에서 희망을 기대하기 위해서 고통스럽지만 감내해야 할 것들까지도 제시한다. 그럼에도 이브, 최만린, 그리고 당대의 사람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통해 오히려 과거와 상반되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브’라는 것은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라기보다도 내 직접적인 나의 모습이요, 내 옆에 사람들의 모습이고, 하나의 인간을 말하는 그런 대명사로서 ‘이브’라는 언어를 차용했습니다. 나뿐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찢어지고, 부서지고, 다치고, 죽음 앞에 허덕이고,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그런 부서진 상태를 하나하나 주워 모아서 다시 엇비슷한 원상 속에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나의 흩어진 마음을 한 조각, 한 조각 흙으로 붙여나간 것이 <이브> 연작이라는 작품입니다.”

 

- 최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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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시들도 둘러본 뒤 2층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끄적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비록 구름이 걷히고 해가 비치지는 않았지만 빗방울은 어느덧 그쳐 있었다. 마치 최만린 작가의 이브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오는 길은 험했더라도 가야 할 길은 수월하리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 했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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