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덕후'들을 위한 완벽한 판타지 [도서]

글 입력 2019.11.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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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한다는 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독서, 즉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정말로 ‘책’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마 많은 애서가들이 전자만큼이나 후자의 의미로 책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소위 ‘책덕후’를 자처하는 내 주위의 친구들만 해도 책에 대한 물욕이 독서욕을 훨씬 압도하는 듯하다. 물론 나도 다를 바 없다. 언제 읽을 지 모를 책을 일단 사서 쟁여두는 건 기본이고, 좋아하는 책이 리커버 한정판으로 나왔다고 하면 그것이 출판사의 상술인 줄 알면서도 장바구니에 담으며, 표지가 세련된 책은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되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엇보다도 ‘책을 다룬 책’이 아닐까. 책방에 관한 책,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 책을 수집하는 장서가가 쓴 책 등등.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독 ‘책덕후’들의 심금을 울릴 만한 작품이 있으니, 바로 판타지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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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시적 재능을 타고나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못해 책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모험을 떠나는 시인의 이야기'라니!

 

줄거리만 듣고 나서 곧바로 책을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스토리는 아기자기하면서도 모험 이야기에 충실한 작품이고, 무엇보다 애서가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고서적의 생김새와 향기, 책을 싣고 나르는 거리의 풍경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묘사들을 아낌없이 늘어놓는 그런 책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무려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되었다는 말에 또 결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변명을 해 본다). 사실 그래픽 노블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삽화가 좀 많이 들어간 버전이겠거니 했다. 그러니 책을 받아보고 나서, 책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만화로 구현해 낸 정성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점은 저자 발터 뫼어스가 직접 모든 컷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작가가 발벗고 나섰는데 결과물이 실망스러울 리 없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떨림과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마치 영화화된 작품을 보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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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컷이 다 아름다웠지만 특히나 전면을 꽉 채워가며 공간을 그려내는 장에서는 감탄이 나왔다. 그 중 백미는 단연 부흐링의 가죽 동굴을 무려 네 페이지를 할애해 묘사한 부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만 했던 장면들이 그대로 구현된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 중간 중간 발터 뫼어스의 삽화가 등장했기 때문도 있을 테지만, 보통 책으로 먼저 접했던 작품을 영화나 만화로 접하게 되면 들게 마련인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 속에 실제로 들어가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완벽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물론 어렵다. 일단 원작 소설부터가 상당히 가벼운 문체로 쓰여 있기도 하지만, 이번에 그래픽 노블로 다시 그려지면서 한층 더 가벼워졌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2권에 가서 그림자 제왕과 미텐메츠가 도망가는 장면은 작품에 이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긴장요소마저 흐려진 듯했다. 아무래도 발터 뫼어스를 비롯해 이 책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만화가는 아니다 보니, 훌륭한 그림의 퀄리티에 비해 컷의 구성은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독자를 100% 만족시키는 작품이 있기란 어려운 일이고, 솔직하게 말해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완벽한 문학성을 기대하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애초에 발터 뫼어스가 출판업계의 관행을 까기(?)위해 실화에 이야기를 덧씌운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지 간에, 만일 처음부터 끝까지 책 이야기로만 가득 찬 판타지 소설을 바랐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그걸로 이 작품의 역할은 다 했다고 본다. 거기에다 더해 아름다운 그림까지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래픽 노블 버전을 선택하면 더욱 좋겠다.

 

결국 ‘책덕후’는 똑같은 작품이지만 버전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또 구매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책에 그토록 목숨걸고, 책에서 양분을 얻으며 살아가는 캐릭터들이라 할지라도 쉽게 이입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바로 이런 책벌레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이라고 감히 추천해 본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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