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극히 찰나이되 더없이 소중한 생의 시간 - 연극 우리별

글 입력 2019.11.2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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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별_포스터.jpg

 

연극 우리별. 극의 내용을 랩과 음악으로 풀어낸다기에 무슨 말일까, 하고 슬쩍 들여다봤다가 마성의 매력에 빠져 밤새 스토리를 곱씹게 만들었던 연극이다.

 

올 초였나 작년이었나 이 공연을 처음으로 보러 갔던 때를 잊지 못한다. 마치 비행기가 붕 떠오르듯 리드미컬한 신호음을 따라 열린 무대. 그리고 그 위에서 지구, 달처럼 별의 이름을 한 사람들은 낯선 노래를 부르며 자전하고 공전하듯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파란 빛을 띤 조명 아래 경쾌한 박자와 일상,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한 단어의 조합이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내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찬란한 하늘과 그 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삶의 기쁨을 단순히 단어를 나열해 표현하는가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멸망하는 무서운 미래를 아이러니하게도 힘찬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다른 연극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해서 보게 됐었던 연극이었다. 그리고 2회차 관람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톡톡 튀는 멜로디와 속도감 있는 전개, 개성 있는 캐릭터, 얽힌 시간선 등 다채로운 극중 요소를 짚어나가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두 번 보니까 대화와 내용이 이해되는 폭이 달랐다. 볼 때마다 다른 메세지를 던지는, 정말 매혹적인 연극이다.

 


 

무대 위에 우주를 담다


 

우리별_공연사진_04.jpg

 

 

기본적으로 연극은 우주의 모습, 혹은 그 우주의 시간을 노래하면서 이를 일상에 빗대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주인공인 지구는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언니와 함께 사는 화목한 가정의 막내로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자신의 몸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며 세계사를 읊는다던지,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보는 티비에서 지구에서 펼쳐질 법한 사건사고가 송출된다던지 하는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이런 소소한 설정 하나하나가 참 재밌다. 여기에 우주의 시간 개념을 반영한 점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막이 오른 후 초반부 100초에 전체 몇억년의 시간을 집약해서 보여주듯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도 이 시간선이 나타난다. 이후에 스토리가 진행되며 지구가 생일 선물을 받고 싶어 자전하고 공전해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는 모습이나 뒷걸음질쳐서 시간을 되감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시간의 속성을 무척 위트 있게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이 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를 관찰하는 다른 세계의 학생과 선생님의 이야기가 양립하여 전개된다. 평행세계 이론을 연상시듯 선생님이 학생이 되고, 학생이 선생님이 되는 기묘한 연출은 관람객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초월한 그 어떤 시간선으로 이끌어낸다. 신비로운 느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상징과 메세지가 꽉꽉 채워져 있어 매 순간 지루할 틈이 없다.

 


 

내 곁의 소중한 인연을 향한 이야기


 

우리별_공연사진_03.jpg

 

 

단순히 우주와 행성의 모습을 상징화해서 스토리텔링한 것은 아니다. 이 세계관이 한 가족에 투영된다는 점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극중 별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 있는 이들은 대단한 사연을 가진 가족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을 반복하는 아버지, 끝없이 몰아치는 집안일을 감당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 학교에 다니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들, 이런 가족의 모습을 느긋하게 포용하는 할머니. 지구니 금성이니 하는 낯선 이름을 가진 별들에게, 너무도 머나먼 곳에 있을 별들에게 우리는 묘한 공감을 느끼며 동질감을 형성한다. 이 거대한 우주의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가 이토록 소박하고 정감가는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 소중하고 사소한 일상이, 가족이 웃음짓는 매일의 모습이 하나의 세계와도 같고 거대한 우주와도 같게 느껴지니까. 삶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극은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지구와 달의 관계성을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로 연장하기도 하고, '날 지금까지 보고 있었어?' '내가 너야, 네가 나야' 라는 대사에서처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아래 모든 인연이 하나로 이어진 듯 독특한 시선을 전한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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