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미에 대한 생각 [사람]

취미에 대한 결론 없는 독백
글 입력 2019.11.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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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같은 종류의 글을 쓸 때, 우리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그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한다. 그리고 재빨리 나의 일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다른 사람에게 밝힐 만한 취미가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가 매번 국어사전에서 취미의 뜻을 찾아본다.

 

 

취미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잠을 자고, 씻고, 출근하고, 밥을 먹는 루틴 말고, 전문적이지 않으면서 즐기기 위해 하는 일. 나는 비교적 최근에 작성한 지원서를 다시 꺼내 보았다. <영화 보기, 다이어리 쓰기, 뱃지 모으기> 내가 작성한 세 가지 취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떤 건 취미가 맞고, 어떤 건 어떤 건 취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든지 단편을 좋아한다. 서사가 긴 드라마(예를 들면 왕좌의 게임)는 잘 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작품을 감상한 다음 그 여운에 빠져있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런 내가 16부작이면 짧은 편에 속하는 드라마를 보면, 방영되는 몇 달간은 그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요즘은 다시 보기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본 방송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지만, 매주 같은 요일, 시간마다 방송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웹툰도 장편보단 단편이나 옴니버스 형식을 선호한다. 쉽게 말해 얼마간 내 인생이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기분이다.

 

 

영화.jpg

 

 

그런 나에게 영화는 어쩌면 정해진 답 일지도 모른다. 짧고, 다음 편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어지는 후속작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만 드라마와 달리 그 정도는 감수한다. 두 시간 정도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갔다가 나오면 나에게 남은 여운을 즐기며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본다.

 

내가 이런 장면을 못 보고 지나쳤다고? 한 번 더 보러 가야겠다, 이 감독의 전작은 방금 본 거랑 느낌이 다르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감독의 다른 작품 감상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다작한 감독의 경우, 시간 순으로 작품을 보면 그동안 달라진 감독의 생각이나 기술 등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요즘은 차일피일 미뤄온 영화를 기기에 저장해서 경기도에서 서울로의 이동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영화 보기>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영화와 더불어 방송 시간이 웹 드라마도 나의 취미 리스트에 조만간 올라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스무 살에 처음 기록을 시작한 다이어리는 몇 달 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될 거라던 친구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어느덧 올해로 5년째다. 그동안 3개월, 6개월, 1년 다이어리 등 여러 종류의 다이어리가 내 곁에 머물렀다. 막상 사용해보니 속지의 디자인이 나와 맞지 않거나, 종이의 두께가 너무 얇거나, 들고 다니기에 유용하지 않아서 도중에 다른 것으로 바꾼 다이어리도 많다. 다 쓴, 쓰다 만, 사용하지 않은 다이어리만 해도 내 방에 스무 권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외출할 때 메고 나가는 가방의 크기가 다이어리를 수납하기에 적당한 크기라면, 나는 다이어리와 함께 나가곤 한다. 물론 다이어리를 가지고 나간다고 그때마다 뭔가를 쓰지는 않는다. 그냥 이제는 습관인 것 같다. 어딜 가든 종이 영수증을 받고, 내가 뭔가 했다는 흔적을 챙겨서 열심히 다이어리에 옮긴다.

 

다이어리를 꾸미는데 공을 들이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봐와서 어설프게나마 따라 해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리고 그때 다이어리를 쓰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 이해했다. 나로서는 꾸준히 할 수 없는 노동이었다. ‘어딜 가고, 누굴 만나고, 뭘 했다, 돈은 얼마나 썼고,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기분은 어땠다’를 기록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이어리.jpg

 

 

결국 남는 건 손에 잡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적어도 5년은 계속 다이어리를 쓸 것 같다. 물론 종이의 모습인 다이어리도 버리거나 태우면 그만이지만, 나는 다이어리가 디지털로 남긴 기록보다 훨씬 오래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다. 내가 직접 정성스레 힘을 주어 눌러쓰지 않은 글자는 그만큼 손쉽게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뱃지 수집은 대학에 입학하고 생긴 취미다. 위의 두 가지에 비해 이 취미를 시작한 이유나 계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처음 뱃지를 산 곳은 아마 텀블벅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유기 동물 후원, 혹은 비슷한 이유의 후원 목적을 띄고 올라온 클라우드 펀딩의 리워드로 뱃지를 하나 두 개 씩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개 없어서 학교에 메고 다니던 크로스백에 뱃지를 달았다.

 

이 프로젝트도 괜찮아 보이고 저 프로젝트도 좋아 보였다. 심지어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오천 원에서 만 오천 원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니 돈을 쓰는데 거침이 없었다. 후원 예약을 걸어두고 잊은 프로젝트도 많았다. 10개 넘게 모인 이후로는 안 쓰는 에코백 겉면에 뱃지를 달았다. 달고 보니 듬성듬성 빈 곳이 보였고, 그때부터 후원이 아닌 단순 판매 목적의 뱃지도 사기 시작했다. 에코백 한 면에 뱃지를 꽉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여태껏 뱃지에 얼마나 돈을 썼는지 잘 파악이 안된다.

 

 

뱃지.jpg

 

 

나는 서두에 어떤 건 취미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썼다.  뱃지 모으기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휴학하기 직전 학기인 3학년까지 열심히 뱃지를 모았다. 그러나 휴학을 한 이후 지금까지, 열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뱃지도 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니 휴학하기 전이나 후의 씀씀이에 큰 변화가 없다. 뱃지를 사지 않아서 남는 돈을 다른 곳에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뱃지를 수집하는 행위로 즐거움을 느낀다면 내가 어떤 곳에 있든지 지속해야 하는 것 아닐까? 뱃지 수집이 나에게 취미가 아니었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나는 3년 동안 왜 뱃지를 모은 것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적은 금액이지만 돈을 쓰는 재미, 배송을 기다리며 느끼는 기대감, 택배를 받고 포장을 풀어헤칠 때의 설렘, 화면 속에서만 보던 뱃지를 실제로 마주할 때의 행복. 다른 물건과 비교해봤을 때 이러한 것들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뱃지를 계속 모으게 된 게 아닐까.

 

학교를 다닐 때는 딱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잠깐 자고 일어나 씻고 과제하고, 학교 갔다가 또 과제하고 남는 시간에 겨우 식사를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금과는 정반대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전개해보니 그때의 나는 뱃지를 사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로 지속하는 취미는 ‘취미’가 아닌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나는 이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있지만, 생각할수록 느껴지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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