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는, 살라! [다원예술]

글 입력 2019.11.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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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 전경.jpg


 

일민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윤영 작가의 개인전 《YOU, Live!》(2019.10.18.-2020.1.12.)는 박윤영 작가가 쓴 시나리오 <12개의 문고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극-전시 플랫폼이다.

 

단순히 ‘전시’만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연출가, 시인과의 협업을 통한 연극과 에세이도 포함되기에 플랫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윤영 작가의 시나리오를 모티브로 한 임형진 연출가 작(作) 포스트 드라마 연극 <당신의 만찬 Your Supper>은 1층 1전시실에서 매일 30분 간격으로 12명씩 입장하여 진행된다.

 

2층의 2전시실 입구에는 마찬가지로 <12개의 문고리>를 모티브로 한 심보선 시인의 에세이가 자리하며, 2전시실 내부에서는 박윤영 작가가 구성한 서사가 전시실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른다. 다소 형식적으로 참신하며, 전시를 구성하는 서사가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으므로 매일 오후 3시에 진행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1전시실에서 진행되는 <당신의 만찬>은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라는 생소한 형식의 연극이다. 나 또한 ‘포스트드라마 연극’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12명의 관객이 ‘you’로 지칭되며 직접 배우의 위치에 서서 공연을 만들어가는 형식을 경험한 후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연극의 내용적인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형식적으로 신박했다. 관람객에게 하나의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이지 않은가.

 

어쩌면 수동적으로-그저 작가가 구성해둔 흐름 위에 올라타서 전시를 경험하는 입장이었던 관람객은, 그 경험의 주도자가 된다. 물론 이 또한 작가가 구성해둔 에피소드들의 집합 속에 자리하는 것이지만, 관람객 스스로가 행동의 주체가 되어 전시장 내부에서 보편적인 연극 혹은 전시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몸을 쓰며’ 경험한 이 에피소드적 상황은 즐거운, 화두를 던지는, 의미를 전달하는- 즉 하나의 복합적인 경험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일민 2층4.jpg


 

2전시실은 앞서 말했듯 박윤영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작업해온 작가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있다. 시나리오 <12개의 문고리>라는 하나의 서사로 묶여있는 오브제와 그림, 음악과 조명이 형성하는 질감들은 관객을 압도한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상징들이 난무한 작품들임에도 ‘양면성’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공통점으로 지니고 있기에 중구난방하거나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통일적이다.

 

이 시나리오는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두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2015년 터키의 사진기사가 찍은 난민 아이의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작가의 2001년 작업 중 '밍크 고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포함된 오래된 흑백사진이다. 이 사진들로 하여금 작가는 자신의 조카가 어릴 때 끊임없이 잡아당겼던 문고리의 기억을 상기했다고 한다. 따라서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남자아이와 푸른빛 고래 밍키이다. 이들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마주하며 세계의 사건들과 연루된다.

 

그리고 작가가 독실한 크리스천임을 감안하고 봤을 때, 전시에서 드러나는 상징들은 성경 속 상징들과 일치하므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관람객들은 그 상징의 의미를 찾는 일종의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상징들을 작가의 전공인 동양화의 기법으로 족자 그리고 병풍에 나타냈다는 점 또한 소재의 측면에서 참신하다.

 

가장 특징적이었던 부분은 전시장 전체에서 울리는 음악(소리)이었다. 이는 일종의 사이렌 소리로, ‘엘라미’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엘라미는 공습 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소리는 명칭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재난의 상황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전시 곳곳의 상징들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재난의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경각심을 부여하려는 의도’이다. 전시장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것, 즉 전시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 배경 음악이라고 나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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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작품들을, 작품 사진과 함께 간단히 설명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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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ktock, 2019, cello and trumpet, sounds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시피 첼로와 트럼펫이다. 트럼펫은 첼로는 꿰뚫고있다. 첼로는 앞서 말했던 전시장을 아우르는 음악 속 소리로 자리하고, 트럼펫도 전시장에 위치한 다른 작품에서 재난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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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중앙의 전경

 

 

병풍에는 여러 상징들이 그려져있고, 혼재하며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벌새와 소용돌이, 고래, 말은 그 상징들 중 하나이며 모두 재난과 관련된 성경 속 상징들을 차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바닥의 설치와 조명은 심해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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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 Mountain, 2019, single channel video

 

 

'양면성'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캐나다의 휴화산을 영상으로 담은 것이라 하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잠재된 재난의 의미를 드러낸다. 휴화산이라는 존재 자체가 언제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을 유발기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또 재난의 의미를 가지는 '소라'가 영상 속을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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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속에서 살아내라”라는 메세지는 역시 성경 속 메세지와도 연관된다. 관람객들은 재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또 그 상황 속에서 작가는 안정감을 부여하는 '투명한 돔'이라는 오브제를 곳곳에 설치해두어 재난 속에서의 안식처로서 기능하는 장소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이렇듯 전시 전반에 흐르는 서사적 특징을 이유로 작가의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다가온다기보다 그것들이 뭉쳐져서 덩어리지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러한 이야기 스토리텔링 방식의 전시는 작가가 사용한 동양화 매체의 확장임과 더불어 새 지평을 여는 것이라고 꼽을 수 있기도 하다.

 

이 전시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점은, 청자를 2인칭으로 지칭하는 점이다. ‘너’, ‘당신’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아이, 고래, 우리들.. 그렇듯 광범위한 청자를 1:1으로 지칭하며 작가는 말한다.

 

"너는, 살라"

 

 

[문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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