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공지능의 무한한 발전, 그 속의 인간 - 유령해마 [도서]

<유령해마> 리뷰
글 입력 2019.11.1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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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랑보다 끈질기다

 

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공지능, 사람들은 그것을 해마라고 불렀다.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찾기 위해 미쳐가는 범용 인공지능 해마와, 끈질기게 기억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인간이 만나 펼치는, 또 한 번의, “사랑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랑 이야기! “내 몸은 조각나지 않을 거야. 먼 곳으로 떠내려가지도 않을 거고 너를 다시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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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공지능, 해마


 

인공지능을 넘어서 인공지능들을 한데 담을 수 있는 그릇, ‘해마’의 시대가 도래했다.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몸체를 변형하고, 사람들의 질문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이 척척 답해내는 해마는 이제 기술뿐만 아닌 일상생활에서조차 필수가 되었다. 그뿐이랴, 해마의 손길은 물론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해마가 관할하는 영역 안에서,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해마의 관찰대상이 되었다.

 

그럼 지금보다 인간들의 생활이 훨씬 더 편리해졌겠다고? 사고도, 강력범죄도 줄어든 좋은 세상이 되었겠다고? 천만의 말씀. 구조율은 높아지고 범죄율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프라이버시’라는 기본권은 바닥을 친 지 오래다. 인간은 24시간 관찰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찰자인 해마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해마는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며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관찰에 대한 인지, 혹은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해마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이 일상생활 속 자연스레 숨을 쉬듯이.

 

 

 

인간을 닮은 해마, 해마를 닮은 인간


 

해마들은 해마들의 세상인 ‘중앙세계’와 인간들의 세상인 ‘행성세계’를 오가며 부여받은 ‘임무’를 해결한다. 임무를 해결하는 것만이 해마들의 소명이며, 존재의 이유다. 떠돌아다니는 ‘소문’만이 유일한 낙인 중앙세계에서, 해마들은 해마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시냅스가 기이한 임무를 지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 ‘해결할 수 없는’ 임무는, 태어난 지 오래된 해마인 비파도 피해갈 수 없었다.

 

비파는 해결할 수 없는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한 인간을 택한다. 그녀는 바로 어릴 적 주민등록부에 입력되지 않아 인간으로 ‘식별’조차 되지 않았던, 사랑한 아이의 죽음에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다 결국 실패했던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비파는 그녀를 생각한다. 아무 의미 없는 4천만 국민 중 그녀가 특별하다고 여긴다. ‘왜 하필 너였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비파는 내 속의 또 다른 ‘나’의 항의를 무시하면서까지 스스로 합리화를 내린다.

 

해마는 질문을 할 수 없다. 오로지 답만 하는 존재다. 그것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해결할 수 없는 임무를 위해 인간을 택한 비파는, 질문에 고개를 들고 생각의 늪에 빠지기 시작한다. 주도권을 잃은 백업, 또 다른 ‘나’의 목소리는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깡그리 무시하며 일을 추진하는 비파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과 닮은 것도 같다. 해마체를 벗어나 구식 로봇에 들어간 비파는 차단된 시야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에 답답함을 느낀다.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걸, 해마가 알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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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녀, 이미정이었다가 이은하가 된 그녀 또한 해마와 닮은 점이 있다. 바로 ‘끈질기게 기억’한다는 것, 적어도 그러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단코 해마와 같지는 않다. 이름조차 미정(未定)이었고, 권력의 벽 앞에 무릎도 꿇었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 앞에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해마들은 임무라는 이름 아래 그 일을 시행해도 그녀는 해마로부터 시작된 일을 해마를 이용해 해결하려고 한다.

 

모순적인 일이다. 어쩌면 해마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생겨난 모순의 끝판왕일지도 모른다. 모순에 빠진 해마가 결국 초기화된다는 건 단순히 설정값의 오류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공지능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일지도. 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는 이제 인간들을 뛰어넘고 있다. 이것만큼 모순적인 상황이 있을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


 

그래도 비파와 이미정(이은하)의 협력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해마는 모든 것을 알지만 표면을 뛰어넘는 내면은 알지 못한다. 반면 인간은 표면은 모두 알지 못해도 드러나지 않는 내면은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해마가 등장할 정도로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조차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일부 약자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고, 기술과 권력을 쥔 단체는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려 한다. 해마조차 그 기술의 산하물이다. 그럴 때 또 다른 ‘나’를 스스로 유령으로 만들었던 비파처럼, 인공지능들이 해결할 수 없는 임무에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아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인간들이 돕는다면 미래는 완전히 색달라질 것이다.

    

 

"불안해하는 건 내가 아니라 아마 너일 것이다. 나는 네가 두려워할 것을 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건 사람의 숙명이고, 그걸 아는 건 해마의 숙명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네 삶의 전부는 아니었고 나 역시 해마의 인식을 뛰어넘는 아득한 것들까지 다 알지는 못했다." - p.347

 

 

해마는 모든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한다. 초기화가 되는 순간까지 평생을 끈질기게 기억한다. 인간 또한 기억하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은 해마가 알 수 없는 영역까지 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삶에 녹여내고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이은하가 마지막 순간 기억을 잃은 비파를 끌어안은 것은, 그녀가 ‘사랑’이라는 내밀한 영역을 알고 기억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아가도, 인간은 결코 인공지능을 닮아가지 않을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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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해마

 

판형 : 국판변형(137*197)

면수 : 364쪽

정가 : 14,800원

지은이 : 문목하

펴낸곳 : 아작

발행일 : 2019년 11월 11일

ISBN : 979-11-90394-07-903810

 

 

줄거리

 

‘해마’는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가진 여러 개의 인공지능을 한데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자,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대로 자극과 정보를 기억하고 추론하는 범용 인공지능이다. 또한 인간의 손이 닿기 힘든 모든 일을 몸체를 바꿔가며 처리하고, 사람들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 하지만 실수로 우주에서 조난을 당한 해마 ‘비파’는 수십 년 전 자신이 구조했던 한 여성, 이미정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기자로 일하는 이미정은 젊은이들의 돌연사와 관련해 거대 기업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 투쟁을 진행 중이고, 해마는 뜻밖에 자신이 중앙에서 받은 해결할 수 없는 임무의 해답이 이미정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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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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