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동민상회

글 입력 2019.11.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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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나서 어떤분을 그릴지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분이 그림 그려 달라고 나를 불렀다. 세상에나. 반가워서 호다닥 갔다. 그런데 살짝 멈칫하긴 했다. 다른 팀원은 디지털로 이쁘고 화사하게 알아보기 좋게 그려주는데, 나는 손으로 투박하게 알아보기도 어렵게 내 마음대로 그리니까.

 

"그런데 제 그림은 다른 팀원에 비해 이쁘게 그리지 않는데, 좀 개성 있는데 괜찮으세요?"

"그럼. 개성있는 게 좋지. 평범한 거보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역시 뭘 좀 아시네. 기분 좋은 미소로 앞에 앉아서 모델이 되어주셨다. 이렇게 밖에 물러나 앉아 있는데도, 표정이 밝으셔서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았다. 역시 사람은 각자만의 매력이 다 있고, 생각이 다 있으니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좋고, 글로, 그림으로 그리는 게 즐겁다.

 

기분 좋은 노란색과 주황색을 주로 사용했다. 머리는 자주색의 느낌이 들었고, 라인을 넣고 싶은 마음과 넣고 싶지 않은 마음 두가지가 들어서 블루 계열로 조금 그리다가 말았다. 습관적으로 이목구비를 그리려다가 표정보다는 느낌만을 살리고 싶어서 흐렸다. 사실 얼굴을 잘 그리지도 않지만. 나는 묘사보다 분위기 감각을 더 살리고 싶으니까. 처음에 모델이 자꾸 질문하는 나를 보고 의아해하셨지만, 그림 그리면서 대화 내용을 글로도 쓴다고 하니까 바로 납득하셨다.

 

"밝으신 거 같아요. 먼저 그려달라고 하셔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 사람 잘없는데. 보통 그냥 지나가는데."

"아아 그랬구나. 나는 뭐든 긍정적이야. 안되도 크게 걱정이 없지. 이렇게 지금 생활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볼 땐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나는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해. 사실 명도니 뭐니 되기 전에는 걱정이 됐는데, 명도 되고 나니까 마음이 더 편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공부도 일등만 하면 불편하잖아. 뒤에서 누가 따라올 거 같고. 쫓아가는 사람이 있어서 불편한데, 우리는 바닥을 찍으니 마음이 편해. 그냥."

 

 

동민상회.jpg

 

 

"혹시 기억에 남는 단골 있으세요?"

"모든 사람이 다 기억에 남긴 한데, 한 할머니가 있어. 그 할머니가 연세 많으셔서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자제분들이 변호사 의사 다 박사들이야. 딸은 의사인데 미국으로 시집가고.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평범한 거야. 돈 많다고 거들먹거리거나 그러지도 않고, 항상 수수하게. 시골 할머니처럼. 양철 바게쓰 들고 기사가 모시고 오는 거지. 물건을 사가는데, 돈 있다고 절대 표시를 안해. 그런데, 항상 열심히 산다고, 김장철에는 김장 담궈서 주시고, 우리 남편이 건강이 안좋아서 얘기하면 미국에서 약도 보내주고. 물심양면으로 다 도와주셨는데, 돌아가셨어.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 항상 오시면 그냥 오시는 적이 없어.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도 가져오고."

 

"얼마나 되셨는데요?"

"5년 됐지. 사당동에 사셨는데, 사당만 지나면 그 분 생각이 나."

 

눈물이 글썽글썽 하셨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맺혔다. 기사가 데릴러 와도 항상 따뜻하게 절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고. 5년이나 되었어도 아직도 슬펐다.

 

"또 다른 기억나는 분들은 있으세요?"

"단골분들이 다 잘했어. 한 번 인연이 닿으면 기억에 남게 다 잘하시더라구. 그래서 참 뿌듯한 거 같아. 내가 나쁘게,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새삼 스럽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려 하네."

"저희 엄마도 그래요. 그냥 재지 말고 잘해주라고. 그럼 나중에 다 돌아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막 주위에서 이것저것 받아와요. 막 퍼주는데 그만큼 받아오고.."

 

"가족 얘기를 하나 하면, 지금 가족 보다는 친정 엄마, 친정 엄마를 많이 기억하는데.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어. 내가 62살이거든. 엄마가 56살에 돌아가셨어.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어. 못살았었거든. 셋째 아들인데도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우리 6남매 다 키우시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다른 분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 언니 눈물 원래 많아. 감동 받지 마. 속지 마."

이 타이밍에 웃으면 안되지만, 조금 웃음이 났다. 아,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데. 이렇게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것도 이 환경의 매력인가 싶다.

"괜찮아요. 저도 눈물 많아요."

잠깐 웃고 다시 대화로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항상 힘들게 어렵게 살면서도,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항상 도우는 거야. 어릴 땐 미웠지. 자식도 건사 못하면서 남들을 더 도와주냐고. 나 먹을 거 없이 남 주냐고. 잘사는 고모는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는데. 엄마는 콩 한 쪽도 나눠주고, 난 못마땅해서 못하게 했지. 그런데 엄마 하시는 말씀이 '나 잘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너네들 다 잘되라고 하는 것이야. 엄마가 죽고 없어도.니네들이게 다 돌어올 거'라고."

 

"많이 돌아오셨어요?"

"많이 돌아왔지. 보면 크게 막 잘 살고 이런 건 없어도, 너무 평범하게.. 못한 것도 없고 평온하게 잘 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우리 부모가 쌓아놓은 은덕이구나, 공이구나 많이 느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친정 시골집에 가니까 엄마가 안계셔도 이웃집, 도움 받은 사람들이다 챙겨주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잘 사셨구나. 나도 엄마처럼 못살더라도 닯게살아야겠다 생각하는데, 그래도 잘 안되더라. 그게 잘 안되더라."

 

엄마 얘기 하면서 나도 애틋해졌다. 그림 하나 호다닥 완성하고, 또 하나 그리려는데 어디 가야 한다고 자리를 철수하게 되었다. 그림을 보시더니 진짜 본인 같다고 잘 그렸다고 좋아하셨다. 나도 같이 기뻤다.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이름도 겨우 받았다. 느낀 게 너무 많아서, 내 나름의 느낌도 강하고 와닿은 점이 많아서,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나와 같이) 대화 만으로도 인사이트를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최대한 내 생각은 베재하고 대화만을 살렸다.


"성함이나 가게명 알 수 있을까요? 글 타이틀로 쓰려구요."

"동민상회. 아들 이름 동욱이, 민수 이름 따서 만들었어."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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