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해피엔드(Happy End) [영화]

글 입력 2019.11.1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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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엔드(Happy End) 포스터>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하루를 살다 문득 이 영화를 봐야겠다 싶었다. 노트북과 충전기를 가지고 외출했고 틈틈이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지금 내가 무얼 본 건지 머리가 멍하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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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테이프 같은 전개


 

보통 영화 리뷰를 적을 때 영화의 구성이나 전개, 분위기 등 영화 자체에 관한 건 서두에 적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의 시작을 전개와 관련하여 적는 것은 그 구성이 다소 충격적인 동시에 머리를 멍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순행이고 직접적인 설명은 없다. 장면을 툭- 하고 하나씩 던지고서는 '네가 알아서 해석해!'라고 하는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낀 건 장면 하나하나가 길다는 것. 큰 변화 없는 화면을 오랜 시간 응시하기란 솔직히 힘들었다. 또한 대사가 음소거된 장면도 많다. 토마스가 통화를 하는 장면, 조르주가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흑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피에르가 공사장 붕괴 사고 피해자를 만나러 간 장면 등 대사가 없지만 대충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들이 존재했다.

 

두 가지 표현 방식의 의도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집중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영화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참으로 친절하지 못한 영화였다. 기승전결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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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고 사는 게 우리뿐이야?


 

포스터에도 적힌 문구가 이 영화의 주제 그 자체이다. 등장인물인 칼레 지역 '로랑' 가문의 인물들은 대부분 위선자이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 실력을 가진 듯 보이는 앤은 사실 아들의 권위에 집착하는 엄마이며, 아내를 사랑하는 외과의사인 듯 보이는 토마스는 은밀하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불륜 상대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성적 대화를 나눈다. 조르주는 병상의 아내를 질식시켜 죽였고 시시때때로 틈을 노려 자살을 시도한다. 에브 또한 엄마를 약물 중독에 이르러 죽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번듯하고 고요한 듯한 가정 안의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헉! 하는 것은 없었다. 그랬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본 게 다이다. 처음에는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왜?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문득 이 위선 덩어리 영화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는 위선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위화감을 느낀 곳은 영화가 아닌 위선을 익숙히 생각하는 내 모습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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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통해 보는 우리의 위선


 

참으로 '척'하기 좋은 곳이다. 내가 선택한 모습만을 골라서 (어쩌면 만들어서) 보여주는 미디어는 우리의 잠재된 욕망의 창고 같기도 하다. 입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을 그 작은 틀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직접 보여주기 힘든 것들을 중계까지 해가며 잘도 보여주는가 하면 누구보다 더 행복한 척하고 더 멋진 인생을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미디어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된다. 곪을 대로 곪아버린 문제들은 방치한 채 쓴 가면 그 자체가 내가 되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디어와 위선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한 번에 이해하기에는 다소 복잡했고 영화가 끝나고 한참 후에서야 내가 본 것들을 천천히 정리하며 소화시켰다. 영상을 촬영하는 주체가 에브인 것도 중반부를 지나야 알 수 있으며 영화 전개와 관련하여 영상 촬영이 거의 무관하다고 느꼈다. 미디어 문제를 담고 싶었던 것은 느껴지지만 굳이 이런 형식으로 이 영화에 넣어야 했을까 의문이기는 했다.

 

첨언하면 미디어뿐 아니라 감독이 영화에 담고자 하는 주제가 많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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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이 아닌 해피 엔드


 

영화를 일부러 느슨하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전에 산만하게 사건들이 흩뿌려진 채로 주워 담지도 못하고 끝난 영화였다. 유럽을 소재로 한 영화나 공연은 솔직하게 이해가 조금 힘들다.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채로 페이스를 따라가야 하니 영화가 내 멱살을 잡고 일단 따라와보라고 하는 듯했다.

 

13살의 아이와 노인이 접점을 두고 죽음(특히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건 좋았다. 신선하기도 했고 유독 그 부분에 집중을 하며 보게 되긴 하더라. 하지만 1시간 47분이라는 꽤 긴 러닝타임 동안 내가 본 게 무엇인가 싶다. 필자가 감독의 의도로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해석하기에 아직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나 이 영화의 시작부터 엔딩까지 나는 이야기 주변을 겉돌다가 끝난 기분이다.

 

그렇게 영화의 끝자락에서 앤과 토마스는 조르주가 자살하려는 모습과 그를 촬영하는 에브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제목은 해피 엔딩이 아닌 해피 엔드. 그렇게 위선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행복한 결말이 아닌 '행복 끝'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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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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