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맛있는 예술과 이야기 [시각예술]

전시 '맛있는 미술관'을 즐기다
글 입력 2019.11.1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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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미술관"

 

신선한 제목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끈 전시가 있다. 바로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맛있는 미술관’이다. 여름에 개최된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와, 가을에 열린 디자인비엔날레를 기념하여 펼쳐졌다. 음식의 집결지, 맛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광주의 음식과 식당들을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는 총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술가의 맛’, ‘맛의 쾌감’, ‘광주의 맛’이다. 작가들마다 서로 다른 방식을 활용하여 전시 주제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었다. 재미와 예술 그리고 지역성을 모두 잡은 이 전시 속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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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식당>, 임남진, 2006

 

 

광주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모이는 예술의 거리와 금남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식당이다. 32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작년 여름 문을 닫아 많은 예술인과 단골고객들의 아쉬움을 샀다.

 

문을 닫기 전, 이곳을 실제 방문했는데 작가들이 그려놓은 수많은 벽화들, 여러 예술인들이 대화를 나누며 술을 기울이는 모습, 사장님과 방문객의 스스럼없는 친밀한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그곳을 다시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어 매우 반갑고 애틋했다.

 

그림 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다.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즐기는 손님들, 밖에서 돗자리를 펴고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이곳을 둘러싼 따뜻한 연꽃잎 등 하나의 화폭에 생기 넘치는 광주 시민들의 일상이 풍겨져 나온다. 많은 손님들이 거쳐간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흥식당. 그림으로 광주 시민들이 식당에 품었던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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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야 배고프지>, 이이남, 2019

 

 

광주의 유명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작품이다. 쌀이 폭포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은 맛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시각적 자극을 통해 대중들이 쌀의 맛을 상상하게 만들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쌀 자체를 집요하게 탐구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이 쌀들이 모여 여러 개의 주먹밥 탑을 이루고 있다.

 

주먹밥은 광주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식당들은 시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무료로 주먹밥을 나누었다. 그리하여 주먹밥은 광주의 결속력과 유대, 따뜻한 정 등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이 되었다.

 

‘민주’, 그리고 ‘주먹밥’은 광주의 아픈 역사와 감사함이 느껴지는 단어다. 광주의 음식과 역사가 한데 어울러져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 진실하게 전했다. 작은 주먹밥들이 뭉쳐 거대한 하나의 큰 탑을 이룬 모습은, 광주 시민들이 모여 역사적으로 거대한 한 획을 그은 모습 같았다. 역사를 곱씹고 감사함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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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살기로 먹는 음식>, 박문종, 2019

 

 

남도 음식 중 대표 음식으로 뽑히는 것이 바로 ‘홍어’이다. 코를 찌르는 냄새로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 음식이지만 광주의 재래시장, 잔칫집, 장례식장 등 많은 곳에서 홍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홍어는 결국 미술관까지 진출해 많은 관람객들의 반가움을 샀다. 무심한 듯 홍어를 받치고 있는 신문 조각들은 시장에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의 단면 같아 친숙함을 더한다.

 

한쪽 벽에는 이런 묘사가 쓰여 있었다. “날개는 파드득 씹히는 맛이 게미진데 장정들이 좋아하고 살은 오독오독 차져 큼직한 홍어 점을 어금니에 턱 걸치고 탁주 한 사발 하면 목 넘김이 후련하다는 것 아닌가.” 홍어를 먹어보진 못했으나 나도 홍어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픈 욕망이 생겼다. 홍어를 즐길 줄 알면, 속에 담긴 광주 시민들의 무수한 감정과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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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기>, 윤병락, 2017

 

 

전시 주제 중 하나인 ‘맛의 쾌감’이 가장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새빨간 사과들은 사진보다 더 선명한 그림이었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상큼하고 달달한 사과를 사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고 싶은 충동이 든다. 찰나의 행복을 선사하고, 상상을 불러일으켜 쾌감을 전하는 싱그러운 작품이다.

 

우리는 맛을 느끼기 전, 시각이 온 감각을 지배한다. 빨간 사과를 보며 입맛을 다시기도, 저 사과를 어디서 가져왔을까하며 생각을 이끌기도, 매끈하고 단단하겠지 라는 촉각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먹기 전에 느끼는 행복감과 기대감이 있기에, 먹었을 때 더욱 큰 기쁨을 줄지도 모른다. 작가는 먹기 전 그 찰나를 관객들에게 선사하여 맛의 쾌감을 온 감각으로 느끼게 한다.

 

*

 

올해 열린 광주의 큰 행사들을 기념하고자 이곳을 방문하는 관객들에게 광주의 맛을 감각적으로 전한 것도 흥미로웠고, 음식을 작가들만의 방식으로 예술로 변형시킨 모습에 즐거운 상상력을 더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 시간만큼은 음식을 단순 섭취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음식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광주의 역사, 음식의 상징성과 공감대 등에 귀 기울였다. ‘맛있는 미술관’은 맛있는 예술로 배불리 생각을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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