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9년에 경험하는.. xxxx년 도래할 디스토피아의 여러 단면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9.11.12 19: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전시포스터.jpg


 
전시 기간: 2019.09.18.~11.17
전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관람 시간: 오후 12시-7시 (월요일 휴관)
기획: 야콥 파브리시우스 (쿤스트할오르후스 예술감독)
전시 진행: 조희현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이 전시는 100년에 걸쳐 10편으로 진행되는 전시의 네 번째 버전으로, 첫 번째 전시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4>(2016)를 시작으로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5>2016),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6>(2018)이 앞서 진행되었다.
 
한국, 덴마크, 독일, 이란 등 국내외 작가 20명이 참여하였다. 본 글에서는 나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주었던 몇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의 전시 양상과 더불어 주관적인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삽입된 작품 사진은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출처이다.
 
 
 
2층 전시 공간


 


2층 전경.jpg

2층 전시 전경의 일부

 
처음 들어갔을 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각각의 작품이 차지하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데 비해, 2층 전시장의 공간 자체가 넓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염두 했던 부분은, 내가 전시 관람할 당시에는 작동하지 않았던, 2층 전시장의 중앙에 위치한 이미래 작가의 기계적 조각 작품 <연루된 자들>의 가동범위가 넓기 때문이라는 짐작이다.
 
 
*
아니아라 오만
 

아니아라 오만.jpg

아니아라 오만, <함께인 것보다 더 가까이>, 2018-2019, 실리콘 캐스트, 바이오플라스틱, 피그먼트, 철마운트

 
“얼굴의 일부를 근 미래의 사물로 상상”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다소 역겨움과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형상이다. 얼굴을 본뜬 실리콘 캐스트, 신체의 일부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게딱지를 붙인 모형, 오물덩어리를 뭉친 것처럼 보이지만 얼굴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 등이 벽에 “사물처럼” 걸려있다. 작가의 상상대로, 인간 신체 부분이 무용(無用)해지는 미래 그리고 기계와 같은 것들로 대체되는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적 미래를 떠올려볼 수 있는 여지를 작품은 우리에게 남겨준다.
 
 
 
*
시셸 마이네세 한센
 
 
사운드와 설치 작업을 전시했다. 아바타의 목소리와 블랙 메탈 밴드의 리드싱어이자 1991년에 자살한 올린의 목소리로 영국의 철학자이자 미래주의자인 막스 모어의 텍스트를 낭독한다. 그 텍스트는 분절됨과 동시에 결합되며 자연으로의 회귀와 영생을 말한다. 사운드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긴 제목 그리고 동일 작가의 설치작업과 더불어 관객들에게 감각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같은 공간에 위치한 다른 작품들과도 복합적으로 감각될 수 있도록 작용한다. 전시장의 분위기 자체를 좌우한다고 느꼈다.
 
 
*
최고은

 


최고은.jpg

최고은, <봄의 욕망의 정원>, 2019, 창문 설치, 투명 시트지, 478 x 368 cm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삼면화를 창문에 설치하여 스테인드 글라스의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의미적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종교화의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그림에 담긴 내용은 세속적이고 욕망적이다. 일종의 의미적 전복과 동시에 기만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는데, 이러한 부분이 불쾌하다기보다 재미있었다. 이러한 전복적 쾌감이 예술이 선사하는 쾌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모티프들이 촘촘하게 모여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중앙에 위치하는 성모마리아, 왼쪽의 인어공주, 오른쪽의 선녀 이렇게 세 인물은 모두 설화, 역사, 전설 속 인물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자발적인 또는 비자발적인 헌신과 복종의 이야기를 다루는 상징이다.
 
의미와 형식적인 부분에서나 제목에서도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이 연상되었는데, 보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보쉬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3층 전시 공간

 

2층과 대비되는 전시장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2층이 넓고, 여지를 많이 두는-여백이 많은 공간이었다면 3층은 조밀하고, 관객을 압도하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가벽의 사용이 적절하고 탁월하기에 공간 구성이 주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이라는 것은 그 전시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
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
 
 
이들의 영상작업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된다. 오락적 영화같이 흥미로운 서사로 구성되며, 몰입도를 높인다. 영상은 미래의 황폐화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요리사가 등장하고, 요리할 음식을 정하며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 속 짧은 영상들을 클릭하여 요리의 방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재료를 공급하는 스네일리언과 연락한다. 그 에피소드들 속에 뒤섞인 현실에의 풍자는 적절한 유머를 수반한다.
 
설치작품인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와 서사를 공유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DSC0822.jpg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요르겐센,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 2019, 3D 프린트, 마네킹, 오디오와 영상 반복, 혼합 재료

 
영상이라는 현실과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매체에서, 실재적 형체가 있는 설치로 구현함으로써 디스토피아로의 구체적인 상상을 용이하게 한다. 세밀하고 탄탄한 서사를 가진 이 작품들은 작가들이 구상한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현실감과 더불어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SF 소설의 21세기-22세기 버전이 아닐까.
 
 
*
아니아라 오만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3층에서 돌아다닌다. ‘돌아다닌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작품이 돌아다니고, 부딪히고, 혼자 충전하고, 또 다시 돌아다닌다. 형식적인 신박함이다. 작품이 그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작품이 로봇청소기이기에 가능하다. 작품의 형식은 동그란 로봇청소기에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사람의 얼굴인 사물을) 삽입-조각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언캐니한 감정을 야기한다. 2층에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물로서의 신체의 일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2.jpg


 
이는 그 공간만의 특별함을 형성하는 무언가로 작용한다. 일종의 장소특정형 작업인 것이다. 작품은 전시장 내부를 계속 돌아다니며 전시장 내부의 분위기를 희석하는 듯한, 또 작품 각각을 연결하고 의미를 상기시키는 느낌을 부여한다.
 
이러한 작품의 요소와 더불어 회화, 비디오, 설치작업, 판화, 드로잉.. 갖가지 작업들의 적절한 혼합과 조화는 이 전시만의 특징을 견고히 한다. 또한 작품의 형식 뿐 아니라 작가들의 활동 시기나 스타일까지도 다른데, 19세기말 출생 작가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까지 아울러서 하나의 전시에 녹여냄으로써 ‘지금 이 전시장’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전시’라는 것은 소모적이고 일회적인 것으로 그 전시가 지니고 있는 일종의 장소특정성이 전시를 구성하는 의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은 이러한 특성에 적합한 전시라고 느꼈다. 중세 그리고 미래, 그 사이의 현재를 가로지르는 디스토피아적 서사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떠나, 서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관객에게 부여한다.

 

[문채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