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영화]

국내경쟁 2: <별들은 속삭인다>, <푸른 방에 찾아온 자객>, <산후>, <령희>, <기대주>
글 입력 2019.11.0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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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개최된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를 다녀왔다. 영화관 내부는 꽤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국제 영화제라는 이름답게 많은 외국 관람객분을 만날 수 있었다. 올해 방문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 단편영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기에, 이번에도 <국내 경쟁 2> 세션을 선택하여 관람하기로 했다.

 

<국내 경쟁 2>에 상영될 영화는 <별들은 속삭인다>, <푸른 방에 찾아온 자객>, <산후>, <령희>, <기대주>. 총 5편의 영화였다. 어린 초등학생 친구들부터 취업 준비생, 임산부, 불법 체류자,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각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짧지만 긴 여운, 각양각색의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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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했던 5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별들은 속삭인다>, 그리고 <기대주>였다. <별들은 속삭인다>는 제4회 충무로 뮤지컬 영화제의 지원을 통해 제작된 영화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영화의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명랑한 노랫소리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게 만들었다. 영화는 한 시골 마을로 전학 온 청각장애인 연희와, 함께 짝꿍이 된 영준의 이야기다.

 

영준은 연희와 친해지고 싶어 자꾸만 말을 걸고 장난을 친다. 연희는 그런 영준이 부담스럽기만 한데,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수화하는 모습을 영준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하지만 영준은 연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무례한 질문들과 궁금증 대신, 달콤한 사탕을 손에 건네주거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우리 내일도 같이 놀지 않을래?' 그렇게 연희는 영준에게 마음을 점점 열기 시작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맑고 푸른 얼굴로 노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한가로운 마을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두 어린 친구의 따뜻한 우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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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주>는 수영을 좋아하는 한 중년 여성 명자의 이야기다. 명자는 아마추어 수영 대회 팀원을 뽑는 시합에서 중학생 소녀 지규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다. 선발을 앞두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는 명자이지만, 주변에선 자꾸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수영 코치 선생님은 그냥 양보하시면 안 되냐며 명자를 설득하려 하고, 함께 수영을 하는 친구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냐고 명자를 나무라곤 한다. 그저 수영이 너무 좋아서 잘 하고 싶었고, 대회에도 나가보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말에 그녀의 마음 한켠이 무거워져 온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소망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이가 많으니 어린 사람에게 당연히 양보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런 편견 어린 생각을 당연하게 해왔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우리는 모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고,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마음을 모두 부정해 버리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담백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명자의 이야기는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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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3편의 영화들도 각자의 매력을 보여줬다. <산후>는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주인공 수현이 겪는 우울과 무기력을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산모가 겪는 우울감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해낸 영화가 있을까 싶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도 실감 나게 다가와서 보는 내내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아기 문어들이 성장할 때까지 품 안에 안고 보살피다가, 9개월 뒤엔 제대로 먹지 못해 결국 굶어 죽고야 만다는 엄마 문어의 이야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푸른 방에 찾아온 자객> 또한 취업 준비생이 겪는 복합적인 감정과 절망감을 신선하면서도 드라마틱 하게 표현해냈고, <령희> 또한 불법 체류자로써 감내해야 하는 수많은 부조리함과 불합리를 건조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일상을 예리한 눈으로 담아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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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엔, 앞서 상영되었던 단편 <령희>의 감독님과 <산후>의 프로듀서님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되었다. <령희>의 제작 과정과 궁금했던 장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산후>는 감독님의 조카가 태어나면서 시나리오를 작업한 영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작자분들의 대화를 들으며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역시 단편영화의 힘은 사소하지만, 그저 사소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풍경을 지나치지 않고 담아낸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대해 영화는 다시금 그들을 비추며 각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들고, 자꾸 곱씹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런 주옥같은 단편 영화들이 앞으로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각자의 마음을 울리고, 생각을 바꿀수 있도록 말이다. 장편 영화와는 다른 매력으로, 차분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단편들을 만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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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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