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트 있고 뾰족한 인간에 대한 반성,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글 입력 2019.11.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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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큰 바보짓을 저질러본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짧고도 강렬한 두 마디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작만큼 흡인력 있게 300여 페이지를 이끌어간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보다 훨씬 긴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세계사’라면 더욱 더.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는 ‘인간의 바보짓’이라는 미시적이고도 친근한 관점으로부터 출발해 거대한 세계사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한다. 지금까지 봐왔던 역사 서적 중에 가장 위트 있고 시니컬한 말투로 거침없이 인간의 ‘흑’역사를 말하는 이 책은 교과서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주제들을 술술 풀어내고 있었다.


인간의 뇌, 환경, 정치, 전쟁, 기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인간의 실수를 10가지의 주제로 빈틈없이 채워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막힘없고 밀도 높은 저자의 식견이었고, 두 번째로 두려웠던 것은 이렇게나 많고 무시무시한 실수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실수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애초에 인간이 완전한 존재일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바람은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 3자의 역사로써 그 실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책을 쓰는 저자도 읽는 독자도 언제든 그 소수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혁신과 도전의 존재라는 진취적인 단어로 설명하지만, 그 뒤에는 우리조차 어이없는 실수의 역사가 존재한다. 종종 이러한 일들은 누군가의 단순한 멍청함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의도적인 악의로 일어나기도 하며, 학습하지 못한 폐해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엉뚱한 실수도 있었지만,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존재로써 소름이 끼치는 실수도 많았다. <인간의 흑역사>는 에피소드의 경중에 따라 가벼워지기도 했다가 갑자기 한없이 무거워지기도 하는데, 이 적절한 밀고 당기기는 책에 더욱 몰입하는 요소가 되어줬다.


또한 인간의 실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이러한 바보짓의 결과가 당사자에게 국한되어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환경을, 그리고 세상을 범하면서 일어난다는 것에 있었다.


일례로 인간의 단순한 욕심과 호기심의 발상으로 다른 생물들의 거처를 옮김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이 언급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스틴은 단지 사냥의 흥미로움을 돋우기 위해 영국산 토끼 24마리를 자신의 나라로 들여왔고, 그 결과 호주의 생태계는 무차별적으로 무너졌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토양이 허물어졌으며, 바이러스가 퍼졌다. 고작 사냥의 흥미로움, 토끼 24마리가 불러온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오스틴의 예시와 함께 인간이 과도하게 인간중심적으로, 혹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 나머지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 실수를 덮기 위해 인간이 또 다시 범하는 실수들이 반복되면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상태가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 당장 눈앞은 온전할지라도 세상을 수많은 엉망진창으로 뒤덮여있다. 그리고 그 배경은 대부분 인간의 행위에 있다.

 

 

인간의 흑역사_표지 입체.jpg

 

 

수많은 과거의 실수들을 나열한 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지러울 정도로 기술과 사회가 빨리 변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은 한 세대 만에, 아니 10년 만에, 때로는 1년 동안에도 몰라보게 바뀌곤 한다. 모든 게 쉴 새 없이 새로워지는 듯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인간은 과거에 했던 실수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똑같은 실패를 죽어도 예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확한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패턴의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또 수많은 인간의 실수를 10가지의 주제로 묶을 수 있었다는 것에서 이미 그 반복성이 확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이 책에는 비슷한 류의 실수의 순위를 매긴 장도 있으니, 이 책을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실수가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의 흑역사>가 훌륭한 책인 이유는 박식한 지식들이 유쾌하게 풀어져있는 구성력도 있지만, 흥미롭게 책을 읽은 뒤에 찾아오는 반성과 두려움도 한 몫을 차지한다. 우스갯소리로 ‘인간의 욕심을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서 역사로부터 추출된 수많은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그 문장의 무거움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시작은 가벼웠지만, 끝은 무거운 책.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임을 확신한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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