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긋지긋한 가족의 또 다른 의미, "미스리틀선샤인" [영화]

언젠가 뜻밖의 위로를 건네는 존재
글 입력 2019.11.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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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오프닝. 클로즈업된 아이의 두 눈에 비친 것은, 올해의 미스 루이지에나 와 미스 아메리카가 매우 놀라며 당선의 기쁨을 누리는 장면이다. 여자아이는 그것을 몇 번이나 돌려본다. 텔레비전 속 감격에 겨워 두 볼을 감싸고 좋아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라며, 자신이 만든 9단계 '실패의 거부'프로그램을 연설하는 남자. 연설이 끝나고 청중석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멀뚱히 앉아있다.

다음은 방 안에서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고 운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운동한 기록들을 달력에 표시하는 더벅머리의 청년. 말 한마디 없이 운동하곤 내심 흡족해한다.

바로 이어지는 마약 장면. 바비의 주얼리를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소품들로 봐서는 여자아이와 함께 쓰는 화장실로 추정되는 곳엔, 자유로운 영혼 같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변기 위에 앉아 들이켠 마약으로 흡족해한다.

고요한 흡족함이 가라앉기도 전에 자동차 안에서 운전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바쁘게 통화도 하는 여성의 모습이 밀착된 카메라 뷰로 등장. 어딘가 급해 보이는 그녀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며 병실 안 휠체어에 앉아 지독히도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팔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극단적 시도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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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화의 오프닝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아마 이 영화의 오프닝이 영화의 전부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에 등장한 이 6명의 캐릭터가 영화 전부이고, 이들의 캐릭터 성이 영화의 이야기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학 강사지만 인기가 없어 파산 직전에 놓인 아버지 리처드(그렉 키니어), 2주째 저녁 식사로 패스트푸드 닭 날개를 내놓는 엄마 셰릴(토니 콜렛), 헤로인 중독으로 요양원에서 탈출한 할아버지 에드윈(앨런 아킨), 전미 최고의 (본인주장) 프루스트 학자지만 동성 연인에게 차여 자살시도와 명예까지 실추된 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 비행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는 절대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오빠 드웨인(폴 다노), 그리고 어린이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하는 주인공 올리버(아비게일 브레스린)까지.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이유는 이렇게 듣기만 해도 무슨 일 생길 것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코믹하지만, 꽤 명확한 관점으로 따뜻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후버가족과 프랭크는 다 같이 노란색 고물 미니버스를 타고, 올리버가 나가게 될 어린이 미인대회가 열리는 리돈도 해변으로 떠난다. 각자의 이유로 가기 싫어했던 이들도, 딸 올리버의 소원은 꼭 들어주기 위해 나서는 이들을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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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들어도, 지켜줘야 할 대상인 미성년자 올리버에게는 미소를 잃지 않는 가족들의 모습은, 과거 미국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방치형 부모와 반대되는 모습에, 감독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부모의 불화를 자녀에게 넘겨선 안 되고, 자녀를 방치하지 않고 잘 자라게 해 줘야 할 의무는 지키기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들을 마냥 콩가루 집안이라고 취급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족들이 레스토랑에 가서 각자 메뉴를 주문하는 장면에서 올리브는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하지만, '사과는 실패자나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는 아빠는 아이스크림이 지방이 많고, 미인대회 수상자가 먹기엔 적절하지 못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올리브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거부하기에 이르고, 다른 가족들은 무지한 리처드를 대신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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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가 섞인 드라마 장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좁은 버스 안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종종 (그 지분의 절반 이상이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올리버가 들어서는 안 될만한 대화를 포함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고물의 노란 버스가 고장 나버리는 탓에 정비소를 가지만, 고치려면 올리브의 미인대회를 훌쩍 넘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이들은 다 같이, 직접, 자동차를 밀어 시동을 건다. 그리고 하나둘 달리는 자동차 안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모두가 자동차에 탑승했을 때, 모두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한다. 참 웃프고 짠내나는 상황임에도 대단했다며 웃어넘기는 모습, 이들에겐 가족으로서 또 하나의 해프닝이 생긴 셈이다. 남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마저 웃어넘길 수 있는 사이인 가족으로서 말이다.

다만, 이들의 여행엔 현실이 늘 함께한다. 민망한 상황에서 전 연인과 우연히 마주친 프랭크는 조롱거리가 된 듯한 기분에 침울해 한다. 아빠 리처드는 자신이 만든' 9단계 실패의 거부' 프로그램 계약에 제동이 걸리며 셰릴과의 불화로 이어진다. 죽을 듯이 노려보며 싸우는 이들은 비좁은 고물 버스 안에서 말 한마디 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만,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지긋지긋해 보여서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이들 부부가 싸우는 장면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찾아보니, 부부 감독이 찍은 영화라고 한다.

옆에서 부부가 열심히 싸우는 와중에도, 미인대회 전날, 코치인 할아버지에게 올리브는 슬쩍 질문을 던진다. 걱정되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우승하지 않으면 미인대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아빠 대신 할아버지에게 보이며, 본인이 예쁘냐고 묻는 올리브.
 
거기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소녀란다. 네 총명함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예뻐서 널 사랑하는 거야"

 
얼핏 들으면 외모지상주의 할아버지라고 느낄 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이 모두 예쁘다고 덧붙이는 그의 말은 너무 과하지 않아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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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할아버지의 말처럼, 주인공들은 여행의 기간 동안 조금씩 현실의 일을 정면으로 부딪치려 노력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극 중 가장 존재감 없던 아들 드웨인이 우연히 차 안에서 올리브가 병원에서 주워온 시력테스트 판촉물로 시력검사를 하던 중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색맹은 비행사 자격이 없고, 그는 색맹이었다. 현실을 부정하던 그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멈추고 뛰쳐나와 처음으로 영화 안에서 대사를 토해낸다.

파란 하늘에 노란 버스와는 대조되는 그의 상황은, 사는 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했다. 너무 화가 나서 가족들을 패배자라고 말했지만, 또 뒤돌아서 방금 한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드웨인, 그리고 그다음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 지극히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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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별별 일을 다 겪고 결국 도착한 이들은 점차 어린이 미녀대회가 이상한 곳임을 깨닫고, 올리브를 출전시키지 않으려 한다. 어린이가 짙은 화장을 하고, 깊이 파인 수영복을 입고 인위적인 웃음을 짓는 대회는, 멀쩡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상하게 느낄 법도 한데, 생각보다 여전히 이상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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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올리브를 무대에 출전시키지 않을 것인지 계속하게 둘 것인지 설전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올리브가 잘못된 가치를 가진 이들에게 평가받는 게 싫다는 프랭크와 드웨인, 그리고 올리브가 어쨌든 하고 싶어 했던 것이니 계속하도록 지지해야 한다는 엄마의 관점에서, 과연 가족이라면, 그리고 나라면 어떤 쪽일지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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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결국 엄마의 신념대로 올리브는 미인대회의 마지막 참가자로 참여하게 되었고, 영화 내내 할아버지와 붙어 다니며 개인 교습을 받았던 올리브 비장의 무기는 바로 섹시 댄스였다. 왕년에 뭇 여성들과 놀아봤다는 할아버지가 역시 그렇지 뭐, 하다가도 또 한 번 미인대회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섹시 댄스를 추니, 기존의 어린이 미인대회 규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올리브를 끌어내리려는 미인대회 측을 두고, 끝까지 올리브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내려올 수 있도록 같이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는 올리브 가족.

참 눈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어색한 장면이었지만, 미인대회에 큰 '깽판'을 쳐서 어린이 미인대회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는 모습, 그리고 부끄러운 상황일 때야말로 떠나지 않고 함께 하는 게 가족임을 보여주는 모습은 최고의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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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다시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며 집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는내내 혼자 껄껄껄 웃으며 즐거웠지만, 역시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더 좋았다.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꼬집기도 하고, 패배자 같다 여기는 극 중 인물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적절한 위로를 던지기도 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8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저예산영화 임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현실성 있는 각본으로 1억 달러가 넘는 대흥행을 거뒀다고 한다. 그러니까 귀여운 올리브와 함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딱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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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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