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터 잭슨의 반인반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 [영화]

<고무인간의 최후>의 데렉은 인간도, 괴물도 아니다
글 입력 2019.11.0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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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피터 잭슨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색다른 제목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1987년에 발표된 영화 <고무 인간의 최후>가 그것이다. 각본, 감독, 촬영, 제작, 편집, 연기까지 무려 6가지의 역할을 떠맡은 피터 잭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4년간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서사적 빈틈으로 점철된 조악한 고어 영화지만 특유의 재치와 연출을 통해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다름 아닌 피터 잭슨이 연기한 ‘데렉’ 역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데렉의 특성은 ‘반인반수’를 떠오르게 한다.


반인반수(半人半獸)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을 일컫는다. 반인반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해서 쓰여온 괴물 소재 중 하나이다.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로스와 이집트의 스핑크스, 심지어는 동화의 인어공주도 반인반수 중 하나이다. 좀비 역시 인간의 성격과 시체의 성격(이때의 시체는 인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짐승 혹은 대상의 위치에 속한다)을 반씩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또 다른 형태의 반인반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반인반수 괴물들의 성격은 하나로 응축되지 않는다. 켄타우로스는 난폭하며 야만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고 호색한이며 세상일에 무지하다. 반면 스핑크스는 인간을 제어하는 위치에서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며 인어공주는 인간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짐승적인 신체의 일부분 때문에 결국은 물거품과 같은 온전한 대상의 영역에 속해버리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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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터 잭슨의 <고무 인간의 최후(Bad Taste)>는 인간과 대상 사이의 오고감을 통해 유희를 즐긴다. 언뜻 이 영화에서는 인간을 노리는 외계인과 외계인을 노리는 인간이 분명하게 나눠진 듯 보인다. 후반부에서는 외형적인 측면에서도 그들 사이의 완전한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계를 계속해서 흐리려는 인물은 다름 아닌 데렉, 즉 피터 잭슨 자신이다. 데렉은 영화의 초반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 가죽이 벗겨졌을 뿐 그 가죽만 붙여놓으면 인간의 위치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데렉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무 인간의 위치에 놓이는 편이 적절한 것처럼 인간의 면모를 잃어간다.

 

그 정점이 데렉이 외계인의 뇌(처럼 보이는 것)의 일부를 자신의 뇌 속에 넣는 장면이다. 사실 그 장면 이전과 이후에서 데렉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외계인의 신체 일부가 데렉의 신체에 개입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데렉이 더는 정부보조군과 같은 아군의 위치에 놓이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데렉은 아군을 해치지 않고 외계인만을 노린다는 점에서 완벽한 아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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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은 데렉의 신체 중 중요한 부분이 훼손되었고 (정부보조군 중 하나가 다쳤어도 관객은 그를 아군으로 인지한다) 그 중요한 부분에 외계인의 일부가 이식됨으로써 생겨난다. 데렉은 결국 ‘반인반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데렉의 반인반수적 특징은 적과 동지의 경계를 흐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비평을 이끌어낼 수도 있으나 피터잭슨이 그런 생각을 하고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고무인간의 최후>에서의 데렉은 괴물로 변해버린 감독으로 독해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다. 극중에서 데렉은 두뇌가 명석한 인물에 속했다. 마을을 점령한 그들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챈 인물이며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식인행위가 실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보조군을 불렀으며 외계인을 꽤 많이 처치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이 영화 전체를 시작시킨 인물이기도 하며 심지어 마지막에는 ‘다시 태어나’ 영화를 끝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데렉이기에 관객은 데렉이 절벽에서 떨어져 거의 죽은 것으로 확실시되거나 영화의 긴 시간동안 데렉이 등장하지 않아도 데렉의 존재를 계속해서 상기할 수밖에 없다. 이는 히치콕이 자신의 흔적을 영화 곳곳에 남기는 것이나 일련의 모더니즘 감독들이 영화 자체에 대한 자가적 인식을 영화 내에 심어놓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영화의 예술적 측면에 집중된다고 인식되던 일종의 자가반영적 선택을 황당무계한 영화의 서사와 표상에 담아낸 것은 <고무인간의 최후>가 갖고있는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분명 데렉은 죽었거나 등장하지 않은 비-존재인데도 계속해 극을 끄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피터 잭슨은 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감독, 즉 데렉이자 자기 자신이 실제로 ‘아군’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데렉이 영화에서 그러했듯 감독은 아주 무시무시한 비존재일 수 있고, 동시에 적의 몸을 일부 가지고 있는 반인반수일 수 있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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