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방 속의 은신처, 잡지 하이드어웨이Hideaway

언제 어디서나 도망치기 좋은 잡지를 발견했다.
글 입력 2019.11.0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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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으로부터 도망, 청소로부터 도망, 시험공부로부터 도망, 내가 사랑해마지않던 것으로부터 도망. 작고 크게 몇 번 정도는 경험이 있으나 완벽한 도망은 아니었다. 몸은 도망쳐왔으나 마음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 있어 마음이란 것의 본질은 어쩌면 머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몸을 움직이기는 쉬웠다. 마음으로부터의 도망이 가장 힘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책을 읽었다. 글이라는 것은 몰입감이 좋았다. 누군가 나에게 실제로 말을 할 때 맞장구를 치는 데서 오는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남의 시선을 읽으며 내 세상 대신 남의 세상으로 종종 도망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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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도망쳐 온 곳은 잡지 Hideaway이다.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이며 이번 호의 주제는 [The Runaway]로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은신처'이다.


생각해 보니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꾸준히 읽지 않으면 앞의 내용을 기억하기 힘든 소설책과는 달리 잡지는 카테고리 별로 컨텐츠가 나뉘어 아무 때나 아무 곳을 휘리릭 펼쳐서 읽기 좋았다.

 

또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일반 잡지와는 달리 가방에 간단히 넣고 다닐 만한 크기에 무겁지 않아 좋았다.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운 주황빛의 컬러이고, 곳곳에 주황색 여백을 비치해 놓아서 눈이 피로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가방에서 꺼내어 도망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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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항상 마감에 시달리는 에디터들에게 도망가고 싶은 도시를 묻는 인터뷰, 도망치는 고양이로부터 이끌어낸 인간관계에 대한 에세이, 도망치는 마음에 대한 사진, 도망가기 좋은 골목, 도망을 주제로 한 영화, 여행, 책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망이라는 행위를 뽑아내고 도망이 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탐색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컨텐츠를 뽑아 보았다. 먼저, 어딘가로부터 도망칠 때마다 반복적으로 느꼈던 감정들을 표현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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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진유정, 장수혁

 

 

크고 작은 도피를 일삼는 나에게 있어서 도피 무한루트란 아래와 같다.

 

 

1. 피하는 법 밖에 진짜 모르겠는데 판단이 안선다.

2. 판단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하는데 생각하는 것 조차 괴로우니까 생각도 피하게 된다.

3. 판단이 안선다.

4. 다른 일로 관심을 돌린다.

5. 피해왔던 것들을 한꺼번에 맞아버린다.

6. 피하는 법 밖에 진짜 모르겠는데 판단이 안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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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피 무한루트를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이럴 것 같았다. 도망치는 몸은 가벼웠으나 마음은 무엇보다 무거웠다.

 

또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과 『사양』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에 대한 통찰이 기억에 남는다. 두 작품 속 주인공 모두 극단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간실격의 요조는 끝끝내 도망을 치다가 겁쟁이로만 남고 사양의 가즈코는 위태로움 속에서도 진취적이라는 점을 비교한다. 용기가 숭고한 이유는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렵지만 맞서기 때문에, 공포를 알면서도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숭고해지는 것이라는 것. 그게 용기의 미덕이라는 말이 나에게 깊이 남았다.

 

나는 자주 거북이가 되고 싶었다. 내 속도로 천천히 걷고 그러면서도 재빨리 도망갈 수 있게 등껍질을 등에 매달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언제든 등껍질 속으로 들어가 도망치듯 잠자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기에, 인간이어야 하기에 온전히 거북이가 될 수는 없다. 거북이 등껍질 할 만한 것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Hideaway가 모두의 등껍질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 Vol.2 The Runaway -


펴낸곳 : 하이드어웨이 클럽

분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규격
가로 160mm X 세로 220mm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9년 09월 26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9670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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