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활해온, 광활한 세계와 광활할 예정인 세계를 만나며 - '웰컴 투 더 유니버스'

우주 앞의 인간을 직시하고 오다
글 입력 2019.10.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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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나먼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천체의 세계는 말 그대로 무한하고 광활하다. 고등학교 때 공통과학을 학습하며 지구과학 파트에서 우주와 천체에 관해 공부한 기억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지구 바깥의 머나먼 별과 행성들의 존재에 대해 나 역시도 꽤나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름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에 집중했었다. 나는 그때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환상 뒤에는 언제나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실제로 수업을 듣고 복습과 예습을 행하면서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내가 과학에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인 ‘물리’가 그 우주와 천체라는 드넓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근본적인 언어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식화된 물리법칙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환상은 저 멀리, 아마도 게성운 근처 즈음으로 날아가 버리곤 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중등교육은 원리가 증명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개인의 흥미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이미 증명된 법칙을 토대로 암기에 가까운 학습을 강제함과 동시에 곧바로 문제풀이에 몰두하게 만들어버리기에. 내 환상을 충족시킬 만한 과학적 아름다움을 당시의 공부에서 찾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개봉하고 일 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주에 대한 나의 환상은 꽤 빠른 시간 안에 확 달아올랐다가 꺼져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동경과 호기심은 몸에서 떨쳐버리기 아주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물리와 친해지지 못했고 더 나아가서는 과학이라는 과목 자체와 접점을 반강제로 끊어버리게 되는 (2학년에 진급하면서 인문사회계열을 선택했고 우리 학교에서는 그렇게 될 경우 과학 과목 자체를 학습하지 않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을 편성했다)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상하게 별과 행성, 블랙홀, 양자역학, 웜홀, 시간의 상대성과 같이 실로 ‘우주적인’ 단어와 표현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자연히 끌리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함에도 가끔씩 위키백과의 힘을 빌리거나 자연공학계열 친구의 물리/지구과학 학습서를 강탈해서(...) 이 자연적인 끌림에 조금이라도 응답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나는 책에서 설명하는 법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지식과 사유 방식이 풍부하지도 않았기에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 원리인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E=mc^2의 유도 과정은 읽을 때마다 새로웠다. 수험장에서 수능 비문학 파트의 물리 지문을 읽고 눈앞에 펼쳐진 4-5문제를 연달아 풀어야 할 때의 중압감을 매번 느꼈다.

 

그럼에도 블랙홀, 웜홀, 평행우주와 같은 개념을 들추어볼 때마다 어떤 충족감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 살아가다가 문득 저런 우주적인 개념들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그 넓은 우주 세계 안의 조그맣고 희미한 행성인 지구에서 거닐고 있는 매우 협소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허무함을 주는 동시에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이들 감정은 마치 동전의 양면을 이루듯 양자적인데 현실의 일이나 학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러한 우주적인 요소들이 ‘네가 그렇게 애써봤자 결국 너는 우주에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라는 비웃음을 선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네가 애쓰고 집착하는 눈앞의 일보다도 더욱 광활하고 신비로운 진리를 경험해보라’는 위로를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과 우주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 이론을 사랑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아무리 닿지 못한다고 해도 아득하고 머나먼 세계에 대한 동경심과 호기심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도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끌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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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그림

 

 

 

2.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인간의 너머로 뻗어나간, 통제할 수 없는 광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천구를 물리적인 실체로 간주했으며 우주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가 본격적으로 지동설을 펼치기 전까지 고대에서 중세 전반을 아우르고 있었던 세계관은 천동설, 즉 태양을 포함한 모든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주장이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크게 지상계(terrestial world)와 천상계(celestial world)로 구분된다. 지상계는 4원소(흙, 물, 공기, 불)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천상계는 에테르(aether)라는 제5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종류도 다르다. 그는 지상계에서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직선운동이 지배적인 반면 천상계에서는 시작과 끝이 없는 등속원운동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고대 천문학의 기반이 성립되어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우주의 중심에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있고 그 주변을 동심원 형태로 여러 행성들이 회전한다는 천동설을 발전시키게 된다. 천동설은 16세기 중반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이라는 센세이션을 몰고 오기 전까지 기원후의 세상에서 무려 천 년을 넘게 자신의 위상을 지켜왔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지동설이 학계의 올바른 이론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간은 천동설의 그것보다 훨씬 적다. 아마도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사실”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아닌 세계, 인간이 무언가의 주변부가 되어버리는 세계는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재앙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주는 잔인할 정도로 광활하고 엄격해서 인간의 터전인 지구조차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편입시켜 버린다.

 

그래서 우주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원리를 창조하여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의해 이미 인간에게 발견되고 있는 현상이거나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일련의 원리들을 만들고 증명한다.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과학계의 주된 혁신 중 하나인 이유는 인류를 지배해왔던 이전의 “당연한” 사고 체계를 통째로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류를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의 주변부로 옮겨버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시작으로 케플러와 뉴턴,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학자들의 이론과 이론이 성립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다양한 학자들의 다양한 법칙들을 바탕으로 우주의 별들은 어떻게 탄생하고 죽음에 이르는지, 그러한 별들의 내부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수한 별들이 존재하는 우주의 크기는 얼마인지 등, 광활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한 초석을 1부에서 다진다.

 

2부는 은하에 대한 이야기다. 별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성간물질과 이것의 배열이 만들어내는 은하라는 신비한 공간을 설명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책에 포함된 수많은 삽화들 가운데 아름다운 사진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삽입된 챕터가 2부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성운과 은하를 촬영한 사진은 그것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색감들의 조화로운 배열과 수많은 별들이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반짝이는 모습으로 인해 탄성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장 낭만적이고 우주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환상을 가장 충실하게 만족시켜 줄 파트라고 생각한다.

 

3부에서는 여러 SF영화나 히어로물 세계관에서 빈출하는 블랙홀, 웜홀, 평행우주, 우주 식민지, 시간여행 등의 개념을 총망라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그 유명한 E=mc^2라는 에너지 등가원리가 등장하는 파트기에 내용이 방대하고 어렵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개념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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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광활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나는 그 우주 비행사가 500광년 떨어져 있는 베텔게우스 별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본다. 나는 그가 약 500년 후에 그곳에 도착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거의 빛의 속도로 날아가고, 베텔게우스는 500광년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그곳에 도착하는 데에는 지구시간으로 500년이 걸려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 여행 동안1/100x500=5년밖에 늙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그의 시계는 아주 느리게 움직일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느리게 보일 것이다. 아침을 먹는 데 10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가 베텔게우스에 도착하면 그는 실제로 5년밖에 늙지 않는다.” (325p)

 

 

이런 천문학 교양서나 물리 교과서를 읽으며 매번 놀라는 부분은 상대성이론의 시간개념이다. 순전히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 여기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행성의 시간이 이곳보다 빠르거나 느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비하고 기이한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놓고 이것을 플롯의 주된 기제로 삼아 다른 행성에 방문한 주인공과 지구에 남은 사람들 간의 시간차가 20년이 넘어가게끔 만들어버리는 영화들을 볼 때마다 충격이 엄청나다.

 

내가 이곳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낼 동안 어느 행성에서는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 흐를 수도 혹은 십 년에 달하는 시간이 흐를 수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잔인한 현실 앞에 이를 설명하는 수식들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점이 “사실”이고 사실 앞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저 우주의 신비함에 감탄하거나 공포를 체험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지구에서 아주 자명한 “시간”이라는 개념은 자명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상대성이론까지 등장한 와중에 단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고 싶은 개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물리적인 증거를 찾기 위태로워지니 말이다. 천 년을 넘게 천동설을 옳은 이론으로 믿어왔던 인간의 사고방식대로라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나는 지금 눈앞의 시계가 오후 9시 9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지구의” 다른 곳은 오후 2시 9분일 수도 있다는 점에 자명하게 동의한다.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가 아닌 또 다른 공간의 시간이 지구의 그것과 다르게 작동하리란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진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은하의 다른 행성에서는 지구에서 일 분이 지날 동안 한 시간, 일 년이 지날 수도 있을 텐데. 더 나아가 그곳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노릇인데.

 

가끔은 지구 바깥에 이런 광활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질 때가 있다. 광활한 세상 안에서 나는 먼지 입자만큼도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마다 종종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활한 세상을 마주하며 경험하는 해방감도 크기에 우주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가 없다. 정말 언젠가는 인류가, 혹은 인류에 준하는 고등생물이 이 좁은 지구를 떠나 가까운 행성이나 또 다른 은하계의 행성에서 삶을 꾸릴지도 모른다.

 

리처드 고트가 책의 말미에서 우주 식민지를 제창할 때 지구 너머의 세계가 인간의 공간으로 편입되는 일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공간이 아니었던 세계를 우리의 곳으로 끌어 들이는’ 것은 과연 오롯이 우리의 의지에서 발현되는 행동일까? 그저 우리는 우주의 지배 아래에서 우리 나름의 생존을 위해 힘겹게 투쟁하는 존재일 수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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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활한 세계에서

우리의 능동성은 도대체 어디까지 유효할까.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존재성에 의문을 갖고

존재성의 유효함을 탐구하게 만드는 안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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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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