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트인사이트를 통한 나의 성장 일기 [사람]

4개월 전 썼던 지원동기를 다시 읽어보며
글 입력 2019.10.30 09: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극렬한 공포를 느낀다. 죽음 앞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세월은 빛 바래지고, 그 상황에서 벌거벗은, 온전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Das Vorlaufen zum Tode', 즉 죽음으로의 선구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 극도의 공포, 트라우마와 같이 두려움으로 귀결되는 모든 것들을 앞서 경험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의 심연을 부정하지 않고 과감히 마주하는 도전을 통해 나를 기만하는 가치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나기 전의 나

 

너무도 내향적이었던 내가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외향적인 척 연기를 하고 돌아올 때면, 마음 속에는 공허함이라는 단어만 윙윙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펜과 종이, 혹은 휴대폰의 메모장을 켜서 이것저것 끄적이곤 했다. 우울과 공허로 시작된 내 문장들은 자아 성찰로 시작해 주변 사람, 사회, 인간으로 끊임없이 범위의 부피를 팽창해 나갔다.

 

기록의 궤적을 훑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타자로서 바라보는 행동들은 미약한 존재로 세상을 방황하는 나로 하여금 내가 실존한다는 것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게 단어들과 문장들을 하나하나 잇는 것은 그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타자로서 바라봄으로써 절대적 위치에서 삶을 사유하게 만드는 ‘인생 상담소’와도 같았다.

 

이런 고통의 기억들, 우울로 점철된 문장으로 시작된 사유들을 많은 사람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다. 항상 ‘멋짐과 당참을 연기했던 나’의 연약하고 소심하고 작디작은 모습을 누가 알아채 버리면 어떡하지, 내 심연을 누군가가 손가락질하면 어떡하지, 혹시나 누가 한낱 새벽 감성으로 치부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가슴에 가득 품었다. 너무 소중하기에, 누군가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당할까 염려되었다.

 

그런 내 글에 귀 기울여주는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은 문학 수업에서 처음 나의 사유 글을 접하셨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내게 먼저 글에 대해 질문하셨고, 나는 부끄러워하며 교수님께 재잘거렸다. 교수님께서는 사유의 과정에 집중하도록 유도하셨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개성 있고 멋지다’라는 칭찬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에 작은 용기를 얻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천천히 공포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계속되는 격려와 애정 어린 시선은 이내 작은 블로그를 열 힘까지 길러주었다. 그렇게 아직은 조금은 덜 나약한 상태로, 아트인사이트와 만났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였던 나


 

첫 기고 글,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워서, 주제를 백 번이고 생각했다. 재미가 없으니까, 너무 자극적이어서, 사람들이 안 읽을 것 같아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라서. 자잘한 이유로 주제를 바꾸고, 바꿨다.

 

그리고 두 번째 글, 예상치도 못하게 많은 카페와 커뮤니티에 글이 널리 퍼져 내 사유에 대한 많은 사람의 평가를 댓글로 볼 수 있었다. 처음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서워서 페이지를 두 눈으로 보기 어려웠다. 좋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개의 부정적 평가를 마주했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커뮤니티 게시물을 들락날락하며, 초조한 마음을 더 보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기고한 글들을 보면서 4개월 동안의 시간을 정리하는 지금, 글을 평가받는다는 것에 덜덜 떨던 내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아트인사이트를 만난 후, 성장한 나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통해 나는 과감히 판단 받을 기회를 얻었다. 작은 블로그, 아트인사이트 홈페이지를 넘어 대형 포털사이트까지 글이 등록되는 경험을 통하여 세상과 나는 글이라는 수단으로 수많은 시선, 사회와 연결되었다. 과거 내가 혼자서 글을 쓰며 미약한 존재로 세상을 방황하는 나로 하여금 지금 이곳에, 독립적으로 실존한다는 것을 더 강하게 느꼈다면 이 활동을 통해 세상 속 서로 거칠게 연결된 ‘사회 속에서’ 나만의 이음새를 가지고 실존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 기회를 통해 시선에 집착하지 않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글을 내놓는다, 보여준다는 것 자체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글로써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으로 기꺼이 죽음과 같은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의연해졌다. 더는 비굴하게 숨지 않는다. 지금껏 나는 내 글 속에 파묻혀 순수한 긍정성의 세계만을 탐했다. 너무 소중해서, 내 정체성이라서라는 말로 편협함과 연약함을 포장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를 꽤나 깊은 자아성찰에 에로틱(드러냄과 가림의 연출)이 아닌, 포르노그래피적으로 자신을 노출함으로써 깊은 심연에 잠식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 우물에서 온전한 나만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 마지막 기고 글, 마지막 문단을 채워나가는 지금, 시선에 두려워 떨었던 날들, 글에 대해 고민했던 길고 긴 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트인사이트에게 몇 되지 않는 내 글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 궁금하다. 늘 그랬듯, 아트인사이트만의 방식으로 때로는 감성, 때로는 이성, 때로는 그 중간을 부유하는 어떤 것들을 노래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노래의 악보에는 나와 함께 만들어낸 음표 하나쯤은 꼭 있길 바란다.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는 기록을 통해 강력한 치유와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단어들과 문장들을 하나하나 잇는 것은 제 취미이자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생각과 글을 아주 친한 지인들을 제외한 세상에 알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내 생각이 조금 논리적이지 못하면 어떡하지, 누가 봤을 때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고, 이에 대해 사유하며, 본인의 일상, 주관과 접목시켜 글로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격려로 용기를 내어 아주 이웃이 몇 없는, 작은 규모의 블로그를 개설하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

 

 

  

1311.jpg

 


 

 

[태예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