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노량진

글 입력 2019.10.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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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왔을 때는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오니 바리게이트가 쳐져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지난주에 뵜던 분들은 그대로인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 돗자리 깔고 나와서 앉아 계셨다. 3일 전에 갑자기 쳐졌다고 한다. 여기서는 내가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 슬펐다.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 나는 여기서 이야기를 담고 그리고 기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하지만 차마 이런 상황에서 화구를 꺼낼 수는 없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상인분들과 같이 암울하게 있었다. 그런데 바리게이트 앞에 앉아 계신 분이 설명해주셨다. 언제 이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었고,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려운 점 등등. 그래서 잠시 말씀 들을 겸, 양해를 구하고 화구를 꺼냈다.

 

"실례지만 그림 그려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 난 여기 발 다쳐서 앉아 있어. 입원도 못하고 있어."

 

프로젝트 내용을 말씀 드렸다. 조원은 몇 명이고, 각자 어떤 작업들을 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됐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굳이 자신의 얘기를 왜 듣냐고, 별거 없다고 손사래 치셨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더 나을 테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나는 괜찮으니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듣고 싶다고 말씀 드리니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셨다.

 

 

노량진 _1.jpg

 

 

"나는 울산에서 HD에서 10년 넘게 일했어. 거기 배 만드는 걸로 유명하잖아. 내가 배를 만들었어. 거기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내가 한 거야."

"기술자셨네요."

"동생이 노량진에서 일하자고 해서 나이 40에 왔어. 1994년도 11월 30일에. 거의 23년 했지."

"제가 91년생입니다..."

 

덥고 소란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적막한 공간에서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그래도 처음은 아니라고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종이가 작았다. 계산을 잘못했다. 그래서 머리는 큰데 다리로 갈 수록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다리를 그리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수 없으니 상체에 힘을 줬다. 노란색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은 콩테로 칠하고 싶었다. 이목구비를 조금 그리고 콩테 선으로 다 채웠다. 색깔을 선명한듯 선명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무채색의 점퍼를 다양한 색으로 채웠다. 앉아있는 분은 무채색으로 보여도 사실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거든. 하지만 바래진 씁슬한 말투에 공감을 해서 그런걸까, 잔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흐린 콩테 선들로 덮지만 다 덮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쪽 발을 다쳐서 신발을 한쪽만 신고 다른 쪽은 신발 위에 올리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정말 그리고 싶었는데 그리는 공간을 잘못 계산하여... 밑자락에 겨우 발 하나를 욱여 넣었다. 콩테로 발 하나 그렸다. 이거 다 그리고 나서 다리만 따로 그려야지. 바지는 이상하게 올리브 색깔이었다.

 

*

 

"독일 미국 이런 데서 설계도 오면, 이게 몇층 짜리인데 그거 보고 잘못된 거 있으면 수정 요청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외국어로 되어있고. 배 만드는 거 얼마나 비싼데. 엘리베이터 만드는 거 정말 쉬운 일 아니야. 난 거기에 사직서를 두 번 냈어."

"와, 어떻게요?"

"사직서를 처음에 냈는데, 날 붙잡고 사정을 해서, 2년을 더 일하다가 왔어. 여기서 장사 1년 배우고 또 금세 익혀서 잘했지. 근데 이렇게 되서 고생 하고 있어. 장사하는데, 또 와달라고 연락이 온 거야. 심지어 아버지께도 전화하고. 직책도 올려주고, 월급을 더 준다고 했지. 그런데 난 안갔어."

 

예전에는 '라떼는 말이야-' 라는 어른들의 옛날 자랑 이야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은 남을 가르치거나 자신을 올리려고 하는 목적이 있지 않다면, 이런 얘기들도 괜찮다고 느낀다. 얼마나 좋고, 그리우면, 자랑스러우면 이렇게까지나 말씀을 하시는 걸까. 시장와서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지만 배 만드는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웠다. 그 시대였으면 얼마나 대단한 기술자였을지. 이게 바로 자긍심인가. 그리고 안정적인 회사를 두고, 심지어 지내던 지역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직장인들 모두 대단해. 내 가족들 중에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더 신기하다. 본인의 삶을, 책임을 온전히 다 한다는 것.

 

이번에는 다리를 그렸다. 녹색과 베이지색 바지를 표현했다. 이번에는 공간 안에 넣기 성공. 옷의 선이 좋다. 그리고 한 발은 신발 안에, 다른 발은 신발 밖에- 위에 놓여져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꼬물거리며 발을 그리니 모델이 보고 웃었다. '내 발을 이렇게 똑같이 그렸네.' 하며. 그림 그리는 걸 다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풀어진 기분, 그나마 암울한 기분 조금 보낼 수 있었다.

 

 

노량진_2.jpg

 

 

"잘 그리네.... 미술 전공이여?"

"네. 전공했어요. 지금은 취미지만요. 그냥 회사 다니는데, 그림은 취미로 그리고 있어요. 제가 글도 쓰고 있어서 모델분 하신 애기를 글로도 남길 거에요. 그림도 나중에는 전시하고 싶어요."

"음.... 4년제?"

"네."

"4년제 미대 나온 거면 성공했어."

 

에이, 돈만 쏟아 붓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미대가 무슨 성공이라고. 그래도 그림을 잘 그리니 뭐라도 할 거라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샐쭉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되라는 응원의 말과 믿고 있는 확신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내가 더 위안 받는 느낌이 드는 거지?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한 후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도 그림에 싸인을 하고 끝을 냈다. 침묵이 흘렀지만 굳이 더 이상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선에서, 딱 여기까지. 이 만큼만. 선생님,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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