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같은 삶이 펼쳐진 하루 -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 [서로단막극장]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 보자, 더 넓은 세상을 보자.
글 입력 2019.10.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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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장 포스터.jpg

 

 

한 남자가 상자에 대고 말을 건다. 남자는 상자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상자가 어머니의 유품을 담은 함이라도 되는 걸까? 남자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한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데도 어머니의 팔다리가 되어 부양해야만 한다고. 남자는 '상자가 되어버린 어머니'라며 상자를 어머니와 동일시해 부른다. 정신마저 이상해진 걸까? 남자의 울분에 격양되던 분위기는 누군가의 하품소리에 한순간에 전환된다.

 

하품한 사람은 남자의 아내. 남자는 자신의 연습이 시끄러워서 깬 거냐며 사과한다. 도입부에서 보여준 연기는 극중극이었다. 무슨 연극인지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남자는 줄거리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아내는 줄거리가 진부하다는 비판을 한다. 부부는 연극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나가지만 어차피 결정되어 의미 없는 일. 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할지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아내는 거울을 보며 시각장애인 연기를 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연습하면 거울에 자신에게 초점이 맞으니 시각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한다. 아내는 마침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케이블 설치기사가 오기로 했으니, 케이블 설치기사 앞에서 시각장애인인 척 연기 해보라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남자의 연기.

 

케이블 설치기사에게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고 아내는 외출을 해버렸다며 양해를 구한다. TV는 아내가 볼 것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기사는 배려인지 무관심인지 어떠한 심경변화도 없는 안정된 톤으로 '아, 네….‘하며 응대한다. 그런데 안방에 있던 아내가 큰기침을 했고 남자는 자신의 병든 어머니가 기침을 한 것이라고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에게 가보겠다며 둘러댄 뒤 남자는 아내의 방으로 갔고, 무대에는 기사 혼자 남았다. 페이드아웃으로 부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기사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기사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왜 집에 오지 않느냐며 어린 떼쟁이 아들인가보다. 겨우 달래주고 통화가 끝나니 남자가 돌아온다.

 

기사가 멀티탭이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남자가 찾으려 하자 됐다며 자신의 남는 멀티탭을 설치해준다. 시각장애인이기에 배려해주는 걸까? 그 와중에 아내가 참지 못하고 또다시 재채기하고 남자는 다시 올라간다. 그때 아들에게 다시 전화가 오는데 기사는 아들에게 이모를 바꿔달라 하고, 아들은 점자책 말고 동물소리 오디오북을 좋아하니 그걸 들려주라고 조언한다. 기사의 아들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점자책이라는 단 한 단어로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 무심한 반응과 배려를 보여 줬나보다.

 

통화가 끝난 뒤 기사는 갑자기 상자를 향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생일 케이크의 글자 초콜릿을 만들던 어머니, 어머니는 만들다 남은 초콜릿을 가져왔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생일에도 먹어보지 못했던 서러웠던 과거를. 상자에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조차 못 먹었던 사람들도 있었다며 반박하는 어머니. 도입부에 보여줬던 극중극은 기사가 겪었던 현실이었나 보다. 서럽게 울다가 그칠 때쯤 남자가 내려온다.

 

다시금 남자와 기사는 대화하는데, 남자는 실수로 기사와 눈이 마주친다. 눈이 마주친 걸 본 기사는 매우 놀라는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며 연극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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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끝나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연극은 막을 내렸다. 이런 게 단막극이라는 것일까? 배우들의 열연에 조금 더 이야기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짧아서 아쉬운 여운마저도 단막극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감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며 서촌공간서로 극장을 떠났다.

 

연극 내의 연극. 극중극에는 “상자가 되어버린 어머니와 시각장애인 아들”의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빛이 발광하는 상자에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오고,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시나리오의 연극을 두고 실제 연극의 주인공 두 부부는 당황한다. ‘뭐 이런 연극이 다 있지?’ 하는 표정과 대사로 연극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그 공감할 수 없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연극의 이야기는 정말 가까이에 있던 이웃. 케이블 설치기사의 이야기였다. 케이블 설치기사는 주인공 부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부부가 연극 소품으로 남긴 상자에 대고 “어머니!” 하며 울분하다.

 

이런 왜곡과 아이러니의 서사는 비유를 통해 현실을 지적한다. 우리들의 눈동자가 하는 일은 고작 내 앞에 놓인 현실을 자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눈동자를 비롯한 오감은 너무나 주관적인 감각이기에 나의 현실 범위에서 움직인다. 그렇기에 나의 가치관에 벗어난 현실은 곧 가상세계로 변모한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브라운관 너머의 세계처럼 나와는 관계없는 삶이라 치부한다. 그리고 그 몰이해에서 비롯한 발화는 고스란히 그 삶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 이웃에게 전달된다.

 

그렇게 사람이란 늘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제 생각과 가치관이 보편의 동의를 얻고 주류에 편승하여 있기에 그것의 오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보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지만그것이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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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공간서로 바깥 배경

 

 

서촌공간서로는 정말 단막극과 어울리는 장소였다. 객석과 무대가 이토록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다 눈이 마주치면 정말, 나와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놀랍기도 했고 배우들의 주름 하나, 미세한 떨림들 까지 지켜볼 수 있어 굉장히 새로웠다. 더불어 배우들의 열연도 해당 연극을 빛낼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다. 특히나 케이블 기사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에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머니로 변한 상자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배우의 연기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몰입도가 강했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우리들 눈동자가 하는 일>은 단막극이란 무엇인가, 단막극의 진가를 보여준 연극이 아닌가 싶다. 연극은 실제 그 제목처럼 우리들 눈동자 하는 일은 다소 주관적이고 삶의 단편을 담아내지만, 세상엔 우리가 보는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의 편린들이 존재함을 나타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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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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