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늘은 늘 아름다웠다 [사람]

글 입력 2019.10.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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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9일.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스물셋 대학생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던 날. 아는 것이라고는 풍차와 튤립뿐인 낯선 나라에 교환학생으로 간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불안을 떨치려 애썼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에, 또 왠지 모를 서러움에 울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점점 교환학생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여섯 달 동안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또 유럽을 누비면서 가장 좋아했던 건 암스테르담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파리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딱 두 가지.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하늘 보기. 그리고 기숙사 테라스에 나가 노을 지는 하늘 바라보기였다. 한국에선 본 적 없는 새파란 하늘과 분홍빛 노을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유럽 하늘을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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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빼곤 교환학생 추억을 이야기할 수 없다. 기숙사 앞 잔디밭에 누워 말없이 푸른 하늘만 쳐다봤던 오후.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나갔더니, 먼저 나와 노을을 바라보던 옆 방 친구와 눈이 마주쳐 웃었던 날. 유럽여행 계획을 짤 때, 노을 지는 시간은 항상 비워두었다. 멍하니 앉아 일몰을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으니까.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귀국 날이 왔다. 행복과 여유를 만끽하며 유럽 생활을 즐기던 나도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귀국 후 시차에 적응하느라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저녁, 문득 유럽의 노을이 그리워졌다. 별 기대 없이 커튼을 걷었는데, 붉은 해가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 여긴 유럽이 아니고 한국인데, 해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하늘은 늘 아름다웠는데 내가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한국에선 이른 아침에 나갔다가 깜깜한 밤에 들어오는 게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도 못 먹은 채 뛰어나가 겨우 지하철을 탔고, 오후에는 정신없이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 듣기 바빴다. 과제와 시험에 시달리며 열람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곤 했다. 이런 일상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적, 멍하니 해지는 풍경을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그동안 하늘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고, 여유를 잊고 살았다.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 많은 목표를 세웠다. 영어 실력 키우기, 외국인 친구 사귀기, 여행 많이 다니기, 진로 고민하기 등. 이 목표를 전부 이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 “가끔은 하늘을 보자”는 상투적인 표현이 부질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로움이 얼마나 하루를 아름답게 하는지 깨달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채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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