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디에나 있을 법한, 특별한 농구 이야기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

함께함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9.10.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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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기에 삶은 꽤 살 만한 것이 된다. 누군가는 마음으로 응원하며 그를 기다려주고, 누군가는 손을 잡아 이끌어주며, 누군가는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어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한다. 서로의 존재에 때로는 기대고 때로는 자신을 비춰보면서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연극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레몬사이다썸머클린샷_출연진.jpg

 

 

연극은 다섯 인물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 이야기는 농구라는 스포츠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어딘가 특별하고, 이들의 유일한 목표가 ‘시합에서 이기는 것’에 있기에 어딘가 명쾌하다. 연극의 초반부에 제시된 스포츠의 간단한 룰, 골을 최대한 많이 넣어서 이기는 것에 모든 지향점이 있다는 사실은 어떤 해방감을 가져다준다. 원대한 의미 없이 그냥 하는 것이 여가이고, 스포츠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즐겁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인 연정은 애초에 자발적으로 팀에 합류한 것이 아니었다. 연정은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팀으로 출전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농구팀 결성에 가장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던 재영은 그런 연정에게 대뜸 농구공을 건넨다. 골 넣는 자세를 간단히 설명해주면서 농구 별거 없다고, 그냥 한 번 던져보기만 하라고 말한다.


재영의 제안에 못 이겨 연정은 골대에 공을 던지고 그렇게, 그 한 번의 시도가 계기가 되어 연정은 농구팀의 일원이 된다. 연정은 자기 자신을 믿고, 그로써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다음으로 나아가는 일이 늘 어렵다. 하지만 재영에 의해, 그의 열정적인 권유에 ‘못 이겨’ 농구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2_c김희지.jpg

(C) 김희지


 

재영과 함께 농구를 해온 고등학생 혜준은 30대 직장인 연미가 못 미덥다. 농구공 호수도 모르는 ‘아줌마’가 패스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한 타임당 10분인 시합 시간 동안 끝까지 뛸 수는 있을지 의심스럽다. 농구를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마음만 앞서는 것 같은 연미를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팀이 결성되고 나서 연미의 전담 코치는 혜준이다. 혜준은 차갑게 이야기하면서도 기초부터 찬찬히 농구를 가르쳐준다.

 

연미는 혜준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절대 기죽거나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더 멋있는 걸 가르쳐달라고 보채고, 기초 다음은 기본이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혜준이 농구에 있어서 선배라면, 인생에서의 선배는 연미다. 어른이 되면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혜준에게 연미는 어른이 되어도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울 뿐이고, 어른의 모습은 네 앞에 있는 나와 다를 바 없다며 자신이 겪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절대 팀이 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던 이 둘은 어느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 팀’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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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김희지


 

훈련에 돌입한 이후 연정은 대학생인 환희가 왜 농구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환희가 고등학생 때까지 프로 농구 선수를 준비하다가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환희의 선택과 이후의 삶에 대해 묻는다. 환희는 이런 질문을 받고 상처받거나 고민에 빠지는 인물이 아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깊이 고민하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차분함으로 연정의 질문에 답한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온 길이었다는 것을,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선택의 순간, 뒤로 물러서기 바빴던 연정은 팀원들과 함께 훈련하고 농구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를 가로막던 벽을 넘어설 용기를 낸다. 슛을 쏘는 순간에도 포기하거나 피하지 않게 되었고, 어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까지 가보는 일을 경험해보게 되었으며, 이전까지 시나리오 안에서 더는 전개해나가지 못했던 부분을 극복하고 다음 장면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연정의 농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중대한 도전이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16_c김희지.jpg

(C) 김희지

 

 

연습의 과정에서 초등학교 농구팀에게 무득점패를 당하고, 혜준과 재영이 갈등을 겪는 등 농구팀은 해산될 위기를 맞지만 결국 무사히 시민 농구 리그에 참가하여 경기를 치른다. 연극은 농구 경기를 무대화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장치들을 활용했는데, 그러한 간접적인 표현방식 속에서도 역동성과 긴장감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무대에는 실제 농구 골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배우들이 직접 공을 던져 골을 넣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리고 골이 들어갈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레몬사이다 팀을 응원하는 관중처럼 그 어느 관객들보다도 열성적으로 호응했다. 웃긴 상황이 발생하면 큰 소리로 함께 웃고, 조마조마한 경기의 순간들에는 함께 열을 올리면서 관객들도 연극의 일부가 되어갔다.

 


레몬 사이다 썸머 클린샷_공연사진_12_c김희지.jpg

(C) 김희지


 

이 작품은 페미니즘 연극을 제작하는 '페미씨어터'와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극을 만드는 단체 '플레이어F'가 함께 만든 연극이다. '보통의 농구 연극'을 만든다는 이들의 기획은 여러 면에서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연극은 농구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저항이나 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스포츠로서의 농구, 상대 팀을 이기기 위한 게임으로서의 농구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연극은 여성이 향유하는 스포츠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실에 물음표를 단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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