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물한 살, 103일간의 배낭여행 이야기(1) [여행]

휴학 프로젝트부터 150일간 1,400만 원을 모으기까지
글 입력 2019.10.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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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의 나는 세상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작은 반경 아래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학 생활이 삶의 전부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울타리 너머의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발로 땅을 걸어야만 호기심이 충족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이 세계를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치기 어린 생각으로 무작정 휴한을 한 뒤, 5개월 동안 1,400만 원을 모아서 103일간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타성에 젖어 흘러가는 요즘, 이따금씩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어딘가 엉성하고 서툴렀던 스물한 살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무모했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던 여행 이야기를 지금, 여기에서 꺼내어 보고자 한다.

 

 

 

휴학 프로젝트


 

1학년 2학기를 마쳤을 때의 일이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한 학기가 끝났지만,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종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조차 몰라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방황하는 스무 살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스로 납득하기 전까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부터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야만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갭이어(Gap Year)’

 

저 단어를 발견했던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는 기간’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무작정 달려갈 일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 방향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홀로 세상의 짐을 짊어질 게 아니라 가끔은 내려놓을 때도 필요하지 않은가. 휴학을 해야만 하는 명분을 발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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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주저없이 휴학을 신청했다. 이제 남은 관문은 단 하나였다.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가장 큰 숙제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도 않은 마당에, 1년 동안 놀고 먹겠다는 소리를 어떤 부모님이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골똘히 생각해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어떻게 해야 낭비하지 않는 1년을 보낼지.

 

당시에 학교 동기들은 “잃을 것도 없는데 못할 게 뭐가 있느냐.”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 말이 맞았다. 쌓아온 것도 없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 그리고 1년 휴학한다고 삶이 무너질 리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단순하게 일을 벌이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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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의 휴학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휴학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를 성취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실 피피티를 만들기 앞서 학교 동기와 런던행 비행기 표를 미리 끊어 놓았고, 허락을 구하기 전부터 여행을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두 발로 직접 걸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럽을 한 바퀴 돌아 미국을 거쳐 남미까지 가는 세계 여행이 나의 목표였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꿈꾸는 동안은 설레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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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일간 공장에서 일하다



다음으로는 여행 자금을 확보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한 푼도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때마침 동네 친구가 겨울 방학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장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곧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3월부터 8월까지 150일간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 여행에 대한 단상


 

108일이 지나면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 시작된다. 지난 3개월 동안 목표 금액 1,400만 원 중 절반을 모을 수 있었다. 일상을 조금이라도 지켜내려 했던 나에게 남은 건 돈과 너저분한 생각뿐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과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이렇게까지 해서 가야 할 이유에 관해서였다. 정확히 어떠한 이유로 멈추지 않는 건지 나도, 그들도 궁금해할 뿐이었다.

 

어떤 날은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17실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누군인지,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친구들과 방과 후에 모였다. 우리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각자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왔다. 미래를 꿈꾸고, 불안을 공유하고, 이 세계가 무엇인지 한참을 떠들었던 시간을 떠올리자 가슴이 뛰었다.

 

스물한 살의 나는 여전히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나의 어린아이는 잘 지켜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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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갈증을 우물 밖으로 꺼낼 때가 되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넓은 세상에 던져진 채 뛰어다닐 수 있다면, 그보다 새롭고 짜릿한 경험은 없을 것만 같았다. 또,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하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더욱 진실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사막 위에 펼쳐진 은하수를 바라보며 숨이 막힐 수만 있다면, 대자연 앞에서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느낄 수만 있다면, 세상에 흩뿌려진 사랑의 목격자가 될 수만 있다면,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떠날 것이다.

 

 

(2) 120일째 현재 진행형 공장 생활기

휴학 5개월 차, 지금은 노동자


 

주위 사람들은 가끔씩 나의 안부를 묻는다. 매번 그들은 응원과 격려의 말과 함께 공장 생활에 대한 염려를 잊지 않았다.


ㄱ. 내가 이곳에 들어온 목적은 여행 경비(단기간! 고수익! 자금조달!) 마련으로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시작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친구가 방학 동안 일했던 공장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ㄴ. 주/야 2교대로 얻은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왔고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었다. 덕분에 목표했던 금액을 초과 달성할 수 있었다.

 

ㄷ. 인도네시아에서 온 언니와 친해졌다. 부쩍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인도네시아의 날씨, 음식, 언어, 문화 등 궁금한 것을 묻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언니는 한국어도 꽤나 유창하지만 영어도 잘한다. 나는 회화 연습을 한다고 언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했다. 3년 뒤에 언니가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면 놀러 갈 계획이다.

 

ㄹ. 지금까지 꿋꿋하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내 힘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과 좋은 사람들로 인해 힘을 낼 수 있었다. 만남을 미루고 연락에 소홀한 점은 아주 미안하다. 앞으로 근무는 34일 남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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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ROUND: 150일간의 공장 생활 마무리

2017.03.11~2017.08.07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완주했다. 뙤약볕 아래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지 않고 달려왔던 시간들이 까마득해서 고개를 숙였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5개월간 1,400만 원을 모은 건 스물한 살인 나에게 꽤나 큰 사건이었다.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공장에 들어가 마치 메마른 호수에서 헤엄치는 사람처럼 살았다.

 

내 힘으로 벌었던 감격스러운 첫 월급으로 가족들과 먹을 치킨을 샀고,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와 삼십만 원을 함께 드렸을 때 말을 잇지 못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한다. 한 푼이 아쉬워서 지각하지 않았고,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은 날도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갖고 싶은 물건 등 내 욕구를 최대한 억제하며 먼 훗날의 무언가를 위해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이를 악물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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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강한 아이가 되었다. 불안한 길 위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가만히 주저앉았던 시간들, 끝 모르는 권태와 우울 그리고 외로움 그 경계에서 홀로 위태롭게 줄티가를 하는 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원하는 것을 위해 세상에 부딪히고 행동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스스로를 믿기 시작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여전히 떠나는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수천 가지의 걱정과 고민보다도 단 한 번의 행동이 확실하다는 것도, 어차피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불완전한 우리라면 비가 내린다 해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껏 보고, 듣고, 느낄 일만 남았다.

 

내내 받은 것이 많아서 부끄러웠다.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떠나자,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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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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