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희주 수산, 상번 수산, 웰빙 푸드, 충남 수산

글 입력 2019.10.14 22: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 전 사진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데, 실례가 안된다면 선생님들 그림 좀 그려도 될까요? 똑같이 안 그려요! 물론 이쁘게도 아니지만.."

 

세 분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혹시 불편할까봐, 사진이 아닌 그림을 그린다고 미리 말씀 드렸다. 이전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이런 방식으로 그릴 예정이라고 하니 쿨하게 그러라고 하셨다.

 

"어떤 걸 보고 계세요?"

"그냥 앉아 있지 뭐."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친하신지 물어보니 어패류 팸이라고 했다. 아.. 여기는 물고기 별로 나누는구나. 나름 재미있는 구별법이었다. 팀별로, 혹은 단체로 많이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1년 내내 비울 수는 없으니 길게는 가지 못하더라도 각자 날짜를 맞춰서 봄이면 꽃보러 가고, 가을이면 단풍 보러 가고.

 

"여행 참 많이 다녔지. 그런데 요즘은 가지 못하니."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다 좋지. 옛날엔 사진도 하나 찍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폰으로 다 하니까."

 

"이 일이 다 끝나면 어디 가고 싶으세요?"

"단체로 축하하러 놀러 가야지."

"병원 가서 치료해야지."

"난 맞은 게 아니라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해. 소리만 나면 놀라니까."

 

나는 다시 질문하면서 좋았던 곳이나, 다시 가고 싶은 장소, 추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명의 대답이 다 달랐다. 그리고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어서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끝나면 치료 받으러 간다는 말이 가슴 아프면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인상 깊었다.

 

 

화모037_1.jpg

 

 

세명을 그리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 처음인 일 많이 하네.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사람을 즉석에서 섭외하는 것도 처음이고, 야외에서 그리는 것도 처음이고, 여러명을 그리는 것도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내가 그림 그리기를 기다려주고 그 이후에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는 대화 대로 진행하되 그림은 그림대로 따로 그려야했다. 속도를 가라가려니 죽을맛이었다. 정신 없이 그렸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눈도 뱌쁘고 귀도 바쁘고. 한 명만 느낌을 잡아 표현하기도 바쁜데 세 명을 하려니 내가 손에 끌려다녔다. 색과 선이 한데 뒤섞였지만, 엄연히 세 명의 느낌이 달랐다. 제일 왼쪽에 앉은 분은 붉은색 느낌이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분은 남색. 제일 오른쪽은 카키색과 보라색이었다. 색상의 이유는 모르겠다. 내게 주이진 색이니까 표현할 뿐이다. 바쁜 선은 그림을 보면 알겠지. 왜 그림은 오래 잡으면 자세해지면서 초반의 느낌이 사라지는 걸까. 그리고 바쁘게 순발력있게 그리면 디테일은 적어도 순간적인 느낌을 그렇게나 잘 잡을 수 있을까. 시간과 인상은 반비례하는 걸까?

 

"이쁘네.. 잘 그려."

"참.. 멋있다. 실제도 이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여러가지 기술이 있네. 요즘 사람들은 다 그래. 이뻐."

 

얘기를 하다가도 그림 그리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셨다. 남들이 그림 보는 건 이제 익숙해지고 개의치 않지만, 자꾸만 칭찬하니 부끄럽고 또 감사했다. 내가 어디서 또 이렇게 순수하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동시에 받을 수 있을까. 순수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 세 명이서 돌아가면서 감탄을 정말 많이 하셨다.

 

"색깔이 참 이쁘다."

"난 지금 감동이야."

 

내가 뭐라고 감동까지 되는 걸까.

 

"감사해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제 그림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말 감사해요."

 

내 그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워서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직관적으로 좋다고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미 힐링이고 자존감 오르는 시간이었다. 뿌듯했다.

 


화모038_1.jpg

 

 

한장 더 그려야지. 이번에는 세로로 여백의 공간을 살리려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데 다른 어머님이 구경하러 오셨다.

 

"여기와. 여기 와서 그려. 그림 그려준대."

"맞아요. 그릴 자리 있어요. 여기다 그려드릴게요. 와서 앉으셔요. 좋아하는 색 있으세요?"

"나는 화려한 색을 좋아해~"

"아 그래서 지금 셔츠도 화려하구나! 어쩐지~ 그럼 알록달록하게 그려드릴게요."

 

수줍게 한 분 더 추가되어서 뒤에 서계셨다. 이게 바로 즉석에서 그릴 수 있는 현장감인걸까. 내가 추억을 선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집중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충분히 몰입해서 하고 있지만. 그림은 내가 느끼는 그대로 나온다. 그래서 허투로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이목구비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휑한 공간 가운데 햇빛이 비치는 나른한, 그 묘한 상반된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앞에는 햇빛이, 뒷편에는 황량한 지붕이 있는 (옛) 시장 공터.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처음에 세 명을 구상한 상태에서 그리다가 한 명이 추가되어서 당황스러웠는데, 알록달록하게 넣으니 또 그것대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로 알록달록한 장화를 표현했다. 장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건 꼭 색칠을 해야해. 보라색 알록이, 주황색 달록이.

 

그리는데 보니 한 분은 졸고 계셨다. 약 때문에 잠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리고 한 명은 구경하고, 다른 분은 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아들은 뮤지컬 배우야. 이름 한 번 검색해봐"

"오 정말 검색하니까 나오네요! 우와"

"우리 아들이 그랬어. '엄마, 나 이제 중급은 돼. 자랑해도 좋아!'. 라고 말하더라고. 우리 아들 작품 많이 했어. 유도소년, 빨래, 오작교 형제들도 했었어. 뮤지컬은 비싸잖아. 장사하느라 바빠서 못갔지."

"배우 되는 거 반대하시지는 않았어요?"

"난 반대 안했어.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 돼. 그래서 원하는 대로 데리고 다녔어. 중 1때 mbc 공채 됐었어. 난 사기인 줄 알았어. 그 당시에는. 그래서 안했었는데, 숨은 재능이 었었던가봐. 있으면 그걸 키워주는 거야. 고등 학생 때 연기 학원다녔어. 그래서 졸업 후 대학교 연영과 나왔어. 불후의 명곡에도 데리고 갔어. 외모는 잘생긴 거 모르겠는데, 머리가 워낙 좋아서. 개그맨 하고 싶었는데 몇 번 떨어졌거든."

 

한 명은 옆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고, 한 명은 맞장구 치며 얘기를 듣고 있고, 한 명은 가족 이야기를 했다. 묘한 공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게, 인터뷰를 하는게 사실은 일 대 일이 편하지만 여러명을 동시에 하게되니 초반에는 좀 어려웠다. 하나일 때보다 다수가 되니 어떤 주제로 꺼낼지가 조금 막막했다. 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누구나 개인의 이야기는 다 다르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또 그룹만의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그렸어요. 어떠세요?"

"아까 보다는 이게 더 멋있다. 이게 더 낫고만. 그림으로 들어가디니, 영광이네."

 

상인들 누구나 마음 속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평생을 지낸 곳. 애정이 느껴졌다. 사회적인 의미와는 별개로, 다 떠나서 따스한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찍 마감한다고 해서 오늘은 오후 일찍 끝났지만,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공간이라니. 내가 감히 어떠한 얘기는 하지 못하지만, 그들에게 작은 추억거리 나마 내가 선물할 수 있기를.

 

 



[최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