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쟁의 이유, 투쟁의 주체 [공연예술]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리뷰
글 입력 2019.10.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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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들려오는 외침.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익숙하다. 어느새 거리에서 마주하는 시위, 농성, 집회가 익숙하다.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된 그 외침과 나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디까지는 나의 일이고, 어디까지는 남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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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이라는 약속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작 이연주, 연출 이양구, 기획 정소은)는 노동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1년간 고공농성을 했던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연극은 노동 문제와 우리 각자의 삶을 연결시킨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학습지 선생님도, 마트 점원도, 고공 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도 모두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 그 안에서 이런저런 모순과 부당한 상황들에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화에게 자꾸만 사람들이 찾아온다. 남편과 함께 고공 농성을 했던 명호, 아이들의 학습지 선생님 선영, 얼마 전까지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보람까지.

 

밀린 학습지 비용, 임금 체불 문제, 빌린 돈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은 서로 “이게 마지막”이라고 약속하지만, 그 말은 왜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마음, 더 이상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러나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의 약속은 어딘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만 같다.

 

 

 

노동은 사람의 일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토지, 화폐, 노동이 시장을 이루는 요소이긴 하지만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의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한 물건’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토지는 우리가 생산할 수 없는, 자연에서 주어진 것이고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에 해당하기 때문에 상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인간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며 매매에 목적이 있지 않다. 그런데 이윤 추구에만 초점을 맞춘 시장 경제 체제에서 거래되는 토지, 화폐, 노동은 '허구'의 힘을 얻어 상품이 된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삶은 시장 메커니즘에 종속되기에 이르렀고, 자꾸만 '상품'으로 전락하는 노동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권은 발전해왔다. 노동권을 수호하기 위한 모든 투쟁은 '노동이 사람의 일'이라는 주장, 노동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공동선의 추구를 내포한다.

 

 

 

투쟁의 이유, 투쟁의 주체


 

아르바이트를 세 개 이상 뛰면서 대학 등록금을 모으는 보람이 편의점 점장에게서 요구한 임금보다 더 큰 돈을 받고도 편히 발 뻗고 잘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동등한 계약 관계에 놓여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하는 점장의 행동에, 모든 것을 철저히 관리감독하면서 정작 노동자의 권리는 너무도 쉽게 짓밟는 그의 태도에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보람은 갑자기 찾아와 편의점 문을 모두 잠그고 임금 체불의 증거 자료와 “근로기준법은 지켜라!”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유리창에 붙인다. 보람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있었다. 정화는 보람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본다. 복직을 위한 협상이 타결되고, 고공농성을 ‘성공’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가 더 깊고 어두운 적막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정화의 남편과 함께 고공농성을 했던 해고 노동자 명호는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간다. 여러 노조들과 연대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언젠가 했었던 전광판 고공농성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거기서는 아침마다 팔을 굽혔다가 펴는 게 일이에요. 밤사이 팔이 굽어지지 않게 매일을 굽혔다 폈다 굽혔다 폈다…”


왜 이들은 편하게 몸을 누일 수조차 없는 그 높은 곳에 몇 번이고 올라가야 했을까.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연극은 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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