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의 목격자", 마거릿 히긴스가 치뤄낸 두 개의 전쟁 [도서]

글 입력 2019.10.1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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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히긴스(Marguerite Higgins)의 전기, <전쟁의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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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는, 한국전쟁의 실상을 서구 세계에 알린 미국의 '뉴욕헤럴드트리뷴'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의 전기이다. 이 책은 히긴스의 삶을 놀랍도록 낱낱이 파헤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가 가진 영웅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모두 다룸으로써 우리가 한 명의 인간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일 이 책이 히긴스를 오로지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 모두가 외면한 전쟁의 현실에 주목한 영웅으로만 그려냈다면 오히려 독서의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인 '앙투아네트 메이'는 히긴스가 가졌던 인간적인 단점까지 가감 없이 묘사하며 전기의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자, 인류가 발명한 정치 체제의 본원적 한계이기도 하다. 제 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된 국가를 초월한 폭력, 전쟁의 패자였던 독일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나치당의 제노사이드는 전세계를 충격과 회의로 몰아넣었다. 마거릿 히긴스는 그 중심에 있었다. 여성이 기자를 하는 것도 희귀했던 시절에 히긴스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전장으로 향했다. 한국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푹신한 침대도, 타자기를 놓을 마땅한 책상도 없는 공간에서 그녀는 지프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래서 여자는 데려오면 안돼' 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더 부지런히 제 몫을 해냈다. 히긴스의 열정은 그녀에게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인 삶을 꿈꾼다. 새롭고,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을 가슴 깊은 곳에서 갈망한다. 하지만 새로움이 늘 동반하는 '불편함'이라는 장벽 앞에서, 다수의 범인(凡人)들은 일상의 안온함에 안주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결코 의미 없는 삶, 혹은 부정적인 삶이라 평가될 수 없다. 오히려 히긴스의 개인사가 상당히 불행했음을 고려할 때 더 나은 인생의 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의 전기도, 히긴스의 전기만큼 다채롭고 흥미롭긴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남들을 멈추게 하는 장벽 앞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질주해서 불행했지만, 그럼에도 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마거릿 히긴스는 이렇게 역사에 길이 남겨졌다.


 

 

 

전쟁의 한복판에 선 여성 종군기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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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긴스는 왜 그토록 전쟁의 취재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유년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히긴스의 아버지인 래리는 아일랜드 사람 특유의 언변과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고, 어머니 마르게리트는 활달하면서도 성품이 불 같은 프랑스 출신 여성이었다. 이들은 비교적 사이 좋은 부부였지만, 싸움이 벌어질 때면 어린 아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을 집어던지고는 했다. 이러한 유년의 역사는 이후 히긴스 평생의 전쟁 같은 연애사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래리와 마르게리트는 히긴스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히긴스는 성취 지향적이었고, 달성하려는 목표를 위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히긴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어린 시절부터 한결 같았다. 정말 매혹적이고, 사교적이지만 동시에 외롭고 독선적인 여성이기도 했다고 많은 이들이 증언했다. 히긴스는 평생을 방랑자로 살았다. 물론 두 번째 남편인 빌과 아이를 가지며 안정적 삶을 추구하려 한 적도 있었지만, 인생의 대부분에서 그녀는 세계의 변화무쌍한 사건지들로 향하는 유랑자였다.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고 때로는 사랑을 나눴다. 사랑에 배신 당하기도 했고, 본인이 사랑을 배신하기도 했다. 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지만, 목표를 향한 추진력이 종종 독단성을 동반하는 바람에 팀플레이에는 재능이 없었다. 이는 히긴스가 본인의 직장 '트리뷴' 언론과 끊임 없이 갈등하게 되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어야 직성이 풀렸던 마거릿 히긴스에게,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인류의 중대사였다. 여성을 종군기자에서 배제시키던 당대 언론사들의 문화 역시 그녀의 오기를 자극했음이 분명하다. 한국 전쟁을 목도한 300명여 명의 취재 기자 중에서 여성은 히긴스가 유일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그녀에게 두꺼운 차별의 장벽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유명인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했다.

 


히긴스는 나치당이 몰락하던 독일에서, 분단이 현실화되던 한국에서, 냉전이 절정이던 시기의 러시아에서 국제정치적 현실을 글로 써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히긴스였다.



한국전쟁을 취재하던 히긴스는 여성 기자를 금지하는 워커 준장의 명령에 의해 쫓겨날 뻔 하기도 했다. 그 때 히긴스가 맥아더 장군과의 연락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은, 그녀가 얼마나 대담한 여성이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녀는 말했다. "전 서울에서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히긴스의 결의에 찬 모습은, 맥아더 장군이 여성 금령을 해제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책의 저자가 썼듯, 종군 기자로서 히긴스는 두 가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본인이 취재하는 전쟁 외에도, 업무 현장 속에서 여성 기자를 둘러싼 편견과 일상적으로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두 가지 전쟁 모두를 매우 훌륭하게 치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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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는 저널리즘 말고 아무 것도 없었다



"당신이 오늘날처럼 성공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히긴스의 대답은, 그녀의 인생 철학이 전부 담긴 것이었다. 히긴스는 "1944년부터 1952년의 내 삶에는 저널리즘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의 정보원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저널리즘 업계에서 정말 드문 사람이었고, 희귀한 존재로서 본인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해내고 싶다는 욕망이 히긴스를 계속해서 추동했다. 히긴스가 두 번째 남편인 빌과의 신혼 생활을 즐기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안정적 삶이 얼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고 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 그녀를 또 다른 외지로 밀어낼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목격자>에 묘사된 마거리트 히긴스는 참 외로운 인물이다. 전세계를 떠돌아 다녔기에 지속적 관계를 맺기 어려웠고, 취재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때로 주변 사람들의 피로도를 증가시켰다.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오직 그녀만 바라보는 순정파는 드물었으며, 그런 순정파가 있다 하더라도 히긴스의 갈망을 충족시키긴 어려웠다. 직장에서 히긴스의 편에 서 주는 동료도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한 사투 속에서, 그녀의 유수한 기사와 저술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참 역설적이다. 인간적 고통과 실패의 경험이 기실은 직업적 성공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모습의 강인함에 가려졌던 히긴스의 마음을 대변하듯, 그녀는 갑작스럽게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말았다. 그녀의 사인(死因)은 작디 작은 벌레의 공격이었다. 포탄 소리와 살육의 만행이 난무한 전장에서도 꼿꼿이 자신의 위치를 지켰던 마거릿 히긴스가, 베트남전에서 모래파리에게 물린 뒤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어가는 그녀의 옆에는 친구와 남편 빌, 딸인 린다가 함께 했다. 린다는 <전쟁의 목격자>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히긴스의 삶이 바로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방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히긴스는 딸의 존경과 사랑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래서 마지막 순간만에라도 외롭지 않았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마거릿 히긴스의 공을 기리기 위해 훈장을 수여했다. 그녀를 대신해서 딸 린다가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전쟁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린 책 'War in Korea'를 집필한 히긴스의 공로는 다시 한번 인정 받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녀는 그녀의 병사들과 함께 묻혔다"는 미국 언론의 말처럼, 히긴스는 본인이 글로써 구해냈던 많은 사람의 아픔과 함께 묻혔다. 이는 마거릿 히긴스가 사망한지 5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인들이 그녀를 회자하고 기억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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