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 13회 여성인권영화제(FIWOM) 기록 ②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10.1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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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4일간 진행된 제 13회 여성인권영화제가 폐막을 맞았다. 나는 피움족으로서 여성인권영화제 폐막식에 참석했다. 폐막식은 지난 4일간의 인권영화제 스케치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스케치 영상을 보고 있자니, 여성인권영화제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의 기억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영화제에 관객이 아니라 스탭으로 참가하는 것은 마냥 즐겁거나 행복한 일은 아니였다. 한 행사를 진행해 나가는 입장에서, 신경써야 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제를 관객으로 참여했다면 느끼지 못할 것들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영화제에 구성원으로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일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관객으로 봤다면 시간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많이 보지 못했을 영화들을 영화제 스탭으로 참가하면서 최대한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는 주최 측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피움족들은 근무하는 일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려와 독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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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영화는 제 16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도 상영된 힐라메달리아 감독의 ‘잉여여성?’이었다. ‘영여여성?’은 중국여성의 결혼과 관련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중국에서는 27세 이상의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을 ‘성뉘’, 즉 ‘잉여여성’, ‘남은 여성들’이라는 뜻으로 부른다.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직업적 성취는 타인들에게 잊혀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 개인은 어떤 식으로 압박을 받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폐막식 때 상영된 세 개의 영화 역시 매우 인상깊었다. 상영은 피움상을 수상한 영화 <혜미를 찾아서>, 피움초이스 영화인 <비하인더 홀>, 심사위원특별상의 <운전연수> 순으로 상영이 진행됐다. <혜미를 찾아서>는 대학 성폭력 미투운동에 대한 내용으로, 간접적으로나마 피해 당사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내에서의 성폭력 사건에서 위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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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더 홀>은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대담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불법촬영을 취미로 삼고있는 박부장과, 불법촬영 노이로제에 걸린 임정희 인턴과의 대결구도로 사건이 유쾌하게 진행되는데, 유쾌함 뒤에 불법촬영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대한 실랄한 비판도 놓지 않은 것이 특징이자 큰 장점이다. 작품은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끝나지만, 그 충격으로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불법촬영문제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볼 수 있던 작품이었다. <운전연수>는 여성이 운전연수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편과 동행해야 한다는 이란의 법률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것으로, 역시 유쾌하면서도 이란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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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들과 관객과의 대화인 ‘피움톡톡’에 참여하게 된 것도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피움톡톡은 관객으로써도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평소의 나는 영화나 연극에서 내가 자발적으로 이런 대화에 참여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예술작품을 나 혼자 감상하는 것에서 얻는게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피움톡톡에 스탭으로 참가하면서 다른 사람의 감상을 듣는 것 역시 매우 값진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로써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피움톡톡은 가정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다큐인 ‘날아오르다’ 이후 진행된 피움톡톡이었다. 이 날 피움톡톡의 게스트로는 김홍미리 여성주의연구 활동가, 가정폭력 피해자 두 분,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저자 붉은노을님과 함께 진행됐다. 이 피움톡톡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경험은 매우 뜻 깊었다. 이는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느껴졌던 문제였지만, 가정폭력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는 절대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며, 실제로 내 주변에도 가정폭력은 만연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하기 싫다’는 핑계로 거리를 두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인권영화제 구성원으로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이와 같은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과 같은 작품을, 같은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여성인권영화제가 진행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영화제가 진행되는 4일동안 가장 바빴던, 지금도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분들과의 만남은 매우 값졌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살아가기 위해 늘 애써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자주 복잡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행동해왔다.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청원의 링크를 클릭하지 않고 넘어갔고, 주변인들이 성차별적인 발언을 할 때 웃으며 넘어갔고, 내가 건의를 해서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불합리한 제도나 관습들에 대해서 묵인했다. 내 조금의 시간이, 에너지가 아까웠다.
 
하지만 내 외면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계속 좋은 쪽으로 변했다. 이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목소리를 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심 그런 분들은 나와 매우 다른 분들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나보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나보다 더욱 결의가 넘치는. 하지만 함께 활동해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활동가 분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를 마치고 활동가 분들과 인사를 하며,  앞으로 나도 조금이나마 더 내 자리에서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던 여성영화제 활동이 끝이 났다. 앞으로 피움족으로 활동할 기회가 더 없어도, 꾸준히 여성인권과 여성인권영화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객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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