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화려한 업적, '인간의 흑역사' [도서]

우리 뇌는 바보야
글 입력 2019.10.09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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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필립스 (저) / 홍한결 (역)

윌북(willbook) 출판사

출간일: 2019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404g | 145*220*20mm

 

 

'인간의 흑역사'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오스트레일리아를 뒤덮은 토끼 군단과의 대전쟁)를 간단한 카툰 형식으로 표현해봤습니다. 본 카툰에 쓰인 문장은 모두 책에서 발췌했으나 부득이 일부 요약 및 편집했습니다. 서평은 카툰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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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toon by. Cho

 

 

우리 인간들의 위대한 생애와 업적을 다룬 책들은 무수히 많다. 서점과 도서관을 가보면 선반이 차고 넘칠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위인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이룩한 아름다운 문화, 건축양식, 저마다의 독특한 체계를 가진 언어 등 곳곳에서 자기애와 자부심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 인간들이 저지른 멍청하고 바보 같은 '업적'만을 다룬 책들은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온 우주를 통틀어 제일 현명하고 위대한 지구의 지배자이며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 저지른 치부와 결점을 꽁꽁 감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톰 필립스는 그 꼴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직접 펜을 들어 그 부끄러운 치부를 낱낱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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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자만과 그로 인한 파멸'이라고 밝힌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Missing Link인 루시부터, 미래에 우리가 저지를 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일들까지 넓고 방대하게, 하지만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다룬다. 저자의 시니컬한 유머가 굉장히 돋보이는데, 이는 옮긴이인 홍한결님이 우리말로 잘 옮긴 듯하다. 덕분에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층을 짧지만 신랄하게 꼬집은 대목이 있어 동양인 여성으로서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해졌다.

 

이 책을 통틀어서 인간이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특히 '생명은 살 길을 찾으리니' 부분은 한숨밖에 안 나왔다. 한낱 쓸데 없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왜 죄 없는 동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입안이 썼다. 단지 자신의 고향, 영국의 야생동물들이 있으면 사냥할 때 더 재밌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영국산 야생 토끼들을 들였다가 삽시간에 오스트레일리아 전국을 토끼로 뒤덮이게 만든 장본인, 토머스 오스틴. 그는 과연 이런 사태를 예상하기나 했을까?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펼쳐진 중국의 참새 소탕작전은 또 어떤가. 곡식을 먹는 해충/유해 동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메뚜기의 천적인 참새까지 다 죽이는 바람에 엄청난 메뚜기떼들이 창궐한 사례는 거의 B급 코미디 영화의 스토리 같기도 하다. 출애굽기에 나온 10가지 대재앙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인간 스스로 한 치 앞도 못 본 멍청함과 이상한 신념을 가진 무식함 때문에 벌받은 격은 아니었을까?

 

 

인간은 발길 닿는 곳마다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존재다.

 

/ p.42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래전, 황소개구리가 우리나라에 들여오게 된 것은 1973년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식용 목적으로 대량으로 황소개구리를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사가 잘 안되어 사람들은 이 황소개구리를 저수지 등에 방생하는 바람에 사달이 난 것이다. 본 서식지가 미국인 몸집이 큰 황소개구리들이 우리나라 토종 개구리들과 곤충, 물고기, 드물게는 박쥐나 작은 새들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바람에 생태계 파괴 위험이 있었다. 더구나 울음소리까지 커서 소음공해까지 있었다.

 

황소개구리가 들어온 첫 몇 년 동안은 왜가리와 메기, 가물치가 황소개구리를 내외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내 이것들을 먹어도 별로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한 모양인지 그 뒤로 이 황소개구리들을 잡아먹었다. 토종 생태계의 반격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황소개구리들의 개체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2018년 9월 경 국립생태원에서 조사한 결과 황소개구리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한 번, 생명은 제 나름대로 살 길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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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웠던 점은, 특이한 발상의 전환,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배워왔던 익숙한 역사학적/인류학적 관점과는 평이하게 다른 정반대의 관점의 학설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인류학 수업에서 Missing Link인 루시의 발견은 굉장히 의미 있고 놀라운 사건으로 배웠으나 이 책에서는 단지 '나무에서 떨어진 유인원'에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농경의 시작이 잘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실수로 치부하는 것. 농경과 함께 부의 불평등과 더불어 전염병이 퍼지기 쉬운 조건이 갖추어지고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 오히려 농경사회 이전 사람들이 더 잘 먹고 일도 덜하고 더 건강했음을 시사하는 근거도 존재한다고 한다. 바로 이 농경의 시작 때문에 여러 직접적이고 방대한 스케일의 참사를 빚어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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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의 역사가 변주곡처럼 일정한 주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조금씩 변화만 준 채 계속해서 반복되듯이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도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책에 기술된 것처럼 '우리 뇌는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트라이앵글(2009)'도 생각났다. 영화 트라이앵글은 신화 '시시포스의 형벌'에 모티프를 둔 타임 루프 영화로, 주인공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해결되겠지', 혹은 '이번에는 이런 선택을 하면 되겠지'하고 이런저런 변화를 줘보지만 이내 기억을 잃어버리고 처음과 똑같은 결과를 낳을 뿐, 결코 나아지는 법이 없었던 모습이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덧붙여 내가 제아무리 '더 이상의 멍청한 사례들은 듣기 싫다'며 몸부림을 치고 고개를 저어보아도 저자가 내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며 하나하나 친절하게 우리 인류가 저질렀던 어리석은 일들을 알려주는 느낌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있지 싶은데 뒷장을 넘기면 앞 사례보다 더 기가 막힌 사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책에 소개된 인간들이 저지른 갖가지 어리석은 일들의 연쇄작용을 보자니 같은 인간으로서 내 얼굴이 다 뜨거워져서 절로 '진짜 멍청한 사람들이네' 싶었지만, 나도 살면서 크고 작은 어리석은 일들을 많이 했었기에 결국 누워서 내 얼굴에 침 뱉기인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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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당신의 자만을 산산이 부숴줄 가볍고 유쾌한 역사 책으로써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그냥 카페에서 음료 하나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가볍게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간이나 지나있었던걸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령 당신이 바보짓을 한다 한들, 적어도 역사 책에 박제될 만한 스케일은 아니길 바란다. 어쨌거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기를! 세상은 넓고 여전히 바보들은 많으니까.

 

 


 

 

저자 / 톰 필립스

런던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작가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 「버즈피드」 영국판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중요한 이슈에 대한 기사들을 세상으로 보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고고학 및 인류학, 그리고 역사 및 과학철학을 공부했고, 뜻밖에도 공부한 것을 실제로 써먹는 책을 쓰게 되어 흐뭇해하고 있다.

 

옮긴이 / 홍한결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통번역사로 활동했고 현재 책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인듀어런스』, 『소금차 운전사』,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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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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