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홋카이도에 남겨진 이방인 - 영화 "우리 학교" [영화]

글 입력 2019.10.0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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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교포’란, 재외 동포 중 일본에 영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재일 교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강제 징병으로 인하여 끌려갔거나, 혹은 어려운 처지에 생업을 찾아서 건너 간 조선인들에게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일본에는 상당한 숫자의 재일 교포가 살고 있는데 일본 정부에 의하면 현재로써는 약 70만 명 이상으로 추정 되고 있다.

 

흔히 민족주의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재일 교포들이 한국 국적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하면 그들이 민족 배반을 저질렀다고 치부하곤 한다. 나 또한 그들 존재에 대해 무지했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들을 폄하했을 때 그대로 수용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학창시절 대학교에서 역사 교양 수업을 들으며 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게 되었다. 바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소개해준 한 편의 영화, <우리 학교>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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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김명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학교>는 영화 제작팀이 직접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에 머물며 재일 교포 학생들의 생활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었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 타임 속에는 그들의 현실과 그들이 지닌 생각이 녹아들어 있었다.

 

영화는 일본에 조선 학교가 어떤 계기로 설립되었는지와 현황에 대한 정보가 간략히 소개되며 시작된다. 자막을 통해 설명이 끝나고 나면, 영상 속에 재일 교포들의 모습이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조선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일본어와 ‘일본어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일본어스러운 한국어’란, 가령, ‘우’ 소리를 ‘う [u]’소리로 낸다든지, 어휘는 한국의 것을 써도 어순은 일본의 문장처럼 쓰였다든지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온 일본인들, 그 중에서도 한국에서 꽤 오래 산 편인 이들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일 교포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때는 한국어를 배우지만 그 밖의 시간에는 일본어를 구사했고, 일본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문화를 익혀나가고 있었다. 비록 교실에서는 한국어 사용을 지향하는 학칙을 따라 우리말을 구사하려 애쓰는 모습들을 보이고 학칙을 떠나서 개인적 차원에서 한국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일본’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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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봤을 무렵 나는 전공과목으로 ‘음운론’을 공부 중에 있었다. 음운론 수업을 들을 때는 외국인 학생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공부하며 느낀 것은 ‘발음’과 ‘음운 체계’야말로 외국인들이 가장 익히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학습하여 머릿속에 자리 잡는 모국어의 언어 습관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과연 그들의 정체성에 한국이 껴들 자리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품게 되었다. 나는 만약 ‘민족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대부분 그들이 몸담고 지내는 ‘일본’의 것일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한국어를 배울까, 가족에 의해 학교에 보내져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의문들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부에 이르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본 내에서 그들이 차별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였다.

 

영화에서 “조선학교에 다닌다.”라는 말을 일본 국민에게 던지면, 돌아오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났느냐?’, ‘일본어를 할 줄 아느냐?’ 과 같은 대답이었다. 재일교포들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인식이 올바르게 잡혀 있지 않은 것이다.

 

무관심과 편견으로부터 이와 같은 인식이 형성되는 것은 적어도 머리로는 이해가 가능한 현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관심을 넘어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일본인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에는 조선학교 재학생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일본인의 음성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조국 방문 일정으로 북한에 갔다가 돌아오는 학생들의 입항을 반대하는 우익들의 시위 모습도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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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에 대한 이 같은 일본인들의 반감은 국수주의, 민족주의로부터 비롯된 일본의 반한(反韓) 감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자국민의 일부로써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이 반대 시위나 위협으로 표출되면 재일교포들은 회피하는 것 밖에는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등교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고, 학교의 이름을 내걸고 외부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고 영화에서 밝혔다.

 

정책적으로도 이들은 차별을 받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대외활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조선학교 내에는 유망한 역도 선수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전국 대회에 출전 자격이 아예 주어지지 않기도 하고, 신기록을 세워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90년대 이후가 돼서야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하여 겨우 이들의 성적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들은 졸업해도 일반 대학 입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들은 따로 입시 자격 취득을 위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모두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로부터 ‘각종 학교’로 분류되었기 때문인데, 각종 학교란 학교교육에 비견되는 교육을 행하는 학교로서 예비 학교, 자동차 학교 등을 취급하는 부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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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들은 일본에 들어섰을 때부터 영화가 제작된 시점까지 지속적인 차별적 대우를 받아왔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받는 차별에 대해 충분히 보상이 될 만큼 한국은 그들을 지원했었을까? 당장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로부터 시위와 반대로 인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답은 ‘아니다’였다. 90년대까지는 북한이 이들 학교 설립에도 도움을 주고 지원 정책을 많이 펼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터뷰에서 여러 학생들이 고향은 ‘남한’이어도 조국은 ‘북한’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가 어려워지며 지원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남한은 분단 직후에는 경제 여건이 북한보다 좋지 않아 지원이 불가능했다고 하여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일교포들을 향한 적극적인 지원은 이루어진 바가 없다.

 

재일교포들이 여전히 일본에 남아있게 된 것에 대해 한반도는 큰 책임이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전쟁에 있다. 한반도 내의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에 일본의 동포들도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남아있는 재일교포들은 현재 남북한 대립이 첨예해질 때마다 일본인들로부터 멸시 받는 고통을 겪는다. 특히 일본의 부풀린 언론 보도로 인해 북한에 큰 반감을 가진 일본인들이 재일교포들에게도 똑같은 반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한반도의 위기감이 고조될 때, 재일교포들도 한국 국민만큼이나 불안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의 차별, 그러한 차별로 인해 더욱 견고해진 재일교포들 간의 공동체의식. 비록 그 속에서도 분파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적어도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보여주는 그들 간의 동류 의식은 그것을 지켜보는 나로 하여금 “그들이 지닌 정체성이 일본의 것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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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학생들이 조국 방문 일정으로 북한에 다녀온 후 자신들의 정체성이 비롯된 고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와서 기뻐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위와 같은 나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배워온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인터뷰를 통해 조국 방문을 한 감회를 눈을 반짝이며 말하기도 하였다. 비록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 밟아본 땅이었지만, 평생 디뎌왔던 일본 땅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차별의 시선을 그곳에 당도하고 나서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길 원한다면 이 나라 또한 그들을 이방인이 아닌 동포로 품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국가 차원에서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안이 마련되어야겠지만, 그들과 한평생 같이 지낼 우리 개인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가 우호적인 관계로 진전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연예인들이 북한에서 공연을 하고 온 소회를 풀어내던 화기애애한 시기였다. 그 당시에 나는 <우리 학교>를 보며, 타국에서 남북 사이에 오가는 긍정적인 소식들에 함께 기뻐할 그들을 떠올리며 괜히 기분이 흐뭇해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남북은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고, 정체된 관계의 연장선은 끝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과 일본 간 국가 감정의 골도 깊어진 지금,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괴로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은 우리의 삶에서 잊혀져서는 안 된다. 정치와 외교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도, 그들을 잊지 않고 그들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정립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들이 어떤 국적을 택하였든, 어디서 살기를 원하든 그들의 정당한 선택임을 알고 차별의 시선을 거두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할 자세이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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