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 너머의 공상으로, 파편을 엿보다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글자의 아성을 마주하다
글 입력 2019.10.0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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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가 만들어낸 집합과 문학적 화성


 

작가가 본인의 서문에서도 밝혀 놓았듯 이 책은 한 문학가의 공상 세계를 여과 없이 펼쳐놓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두고 “한없이 넓은 하늘에 무수히 많은 만만이 의기투합해 날아다니는” 것이라 명명한다. 그만큼 각각의 글들에는 보통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유기성이 없다. 위화 본인의 공상들이 제각기의 파편으로 흘러 나와 비유기적인 소제목들로 분열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파편들 가운데에서도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작품의 제목이나 그가 서문을 비롯해 글의 전반에서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음악 속의 화성과 글 간의 의미관계일 것이다.

 

이것이 어떤 정식처럼 작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공상 세계를 독서 일기장의 형태로 흩뿌려놓은 이 책을 그가 “나만의 화성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말하길 음표와 글자의 연관성은 양자의 물리적인 형태에서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한 번에 연주되는 음표의 움직임들과 달리 글자는 소리 없이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배열된 글자들도 겉으로만 소리가 없어 보일 뿐 그 무엇보다도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이기에 음표들을 구성하는 화성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글자를 접하는 독자들은 자신만의 경험과 세계관으로 글을 읽으므로 각자가 집중하는 글자들의 집합은 다르다. 그래서 각자가 글자 집합에 부여하는 의미들도 다르기 마련이고 그것에서 발생하는 독자 자신만의 문학적인 연상들도 다채로운 방향으로 흩어진다.

 

위화가 주목한 문학의 화성이란 결국 글자의 집합과 개인이 공유하는 복잡하면서도 찬란한 의미관계를 암시하는 것일 테다. 그는 텍스트와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각각의 만만이라 주장하면서 그 둘이 만나 “텍스트의 만만이 독서의 만만을 찾고 독서의 만만 역시 텍스트의 만만을 찾아야만” 음표들의 구성으로 만들어지는 화성처럼 특별한 연관성이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마주한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내재하는 글자들로부터 자신이 만들어낸 문학적 화성에 대한 글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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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로잡힌 구절 – 카프카.


 

 

“카프카의 서술에서 비참한 상황은 일단 시작되면 거침없이 질주할 분이다. 아말리아 가족은 밤낮으로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면서 남아 있는 희망을 찾으려 한다. 그들의 논의는 여관 부부의 논의처럼 계속 되풀이되지만, 기억 속 영광을 음미라기 위한 여관 부부와 달리 그들은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논의를 계속한다.”

 

- <카프카와 K> 중에서.

 

 

카프카 문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님에도 여러 호흡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카프카와 K> 였다. 나는 『성』에 등장하는 K가 누군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자신이 받아들인 카프카를 묘사하기 위해 동원했던 수많은 문학가들과 그들이 집필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그가 펼쳐 놓은 글자들의 집합 여럿 중에 유독 눈에 띈 구절이 많았던 글이 <카프카와 K>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파악했던 카프카와 달리 위화가 묘사한 카프카라는 인물상이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파악한 카프카는 이방인과 고독의 향기를 내뿜는 그런 인간은 아니었기에. 위화는 카프카를 두고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사람이 아니라 기슭에서 물길을 거스르듯 등장한” 인물이라 말했지만 내가 바라본 카프카는 그저 문학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다소 연약한 사람이었다. 카프카 스스로가 자신을 문학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칭했던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당돌한 이방인”이기보단 “연약했고 그랬기 때문에 당돌하고 강인한 문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나에게는 프란츠 카프카였다.

 

사람을 파악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니, 그렇지만 위화가 서술한 카프카의 군상도 썩 고개를 끄덕일 만한 종류의 해석이었다고 생각한다. 카프카의 문학적 기법을 두고 물방울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바닷물 전체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든다고 표현했던 대목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 작가의 문체를 파악하는 방식이 실로 섬세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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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방문하고 싶은 셰익스피어 컴퍼니.

 

 

 

3. 글자에 대한 소회


 

문인의 힘은 위대하다. 한 마디로 충분한 설명을 세 마디나 네 마디 혹은 그 이상으로 불리면서도 원래의 한 마디에 담겼던 핵심은 그대로 담아내면서 수사적인 아름다움도 첨가한다. 자칫하면 쓸데없는 부연으로 보일 법한데도 “문학적인 것”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무수한 잉여를 쏟아낸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는 작가가 인상 깊게 읽었던 문인들의 작품들을 각각의 문인들에 대한 소회를 풀어내면서 언급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인의 공상이 어지럽게 흐트러진 글들로 구성된 만큼 각각의 장들은 어떤 서사적인 유기성을 형성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에서 손을 떼기가 어렵다. 분명 생소한 작가들이 등장하고 그들 작품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들만이 전개되는 와중에도 글쓴이의 유려한 서술로 인해서 책을 끝까지 붙들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히 대중성을 노리고 창작한 것은 아니다. 오롯이 작가를 위한 작품이다. 작가가 자신의 내면의 공상세계를 현실에 존재하는 글자들의 체계로 탈바꿈시킨 글이다. 문학이 아니라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의 “작가적인” 세계관을 소회의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뱉은 글자들은 우리 독자들에게 무한한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제시할 수 없다. 애초에 이유를 하나로 확정할 수도 없다. 읽는 이들을 사로잡는 구절들은 제각기 다를테니. 개연성이 없는 에세이 형식의 글자들이 응집되어 있음에도 독자들의 시선을 그 자신의 문학적 화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능력이 참 대단하고 부럽다.

 

그의 텍스트를 정독하면서 나는 평생 문인이 될 수 없겠다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문인들의 글은 나를 구원하는 동시에 나를 좌절과 원망의 구덩이로 밀어 넣기도 하는 애증을 선사했다. 그의 머릿속에 마음껏 펼쳐진 문학의 세계를 탐닉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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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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