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쇼팽의 왈츠에 몸을, 그리고 마음을 맡기며 [음악]

쇼팽왈츠가 내게 주는 메시지
글 입력 2019.10.0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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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세가지 영역에서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어디일까에 대한 물음을 종종 스스로에게 던진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확실성과 얼마든지 개척해 나갈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 아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론 늘 꼴찌였다. 과거와 현재가 내게 지닌 의미를 두고 생각을 하다보면 끝없는 갈등밭을 홀로 해맨채 현재를 고른곤 했다. 과거를 놓지못했던 이유는 나는 분명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고, 실패나 실수 같은 좋지 않은 기억이든,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원이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든지에 관계없이, 과거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현재를 과거보다 가치있게 여기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금같은 시간.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돌아보며 추억할 또하나의 과거이자 미래와의 연결점 같은 존재가 바로 현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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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사실 우울한 날이 많은 것 같다. 현재의 내가 슬픔을 마주하는 날이 많다는 것 썩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내게 힘이 돼주었고 정신 차리라고 뜨끔한 충고를 던졌던 것이 두가지나 있었다는 사실은 감사할 일이다. 그 중 하나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황홀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던 가을, 캠퍼스를 뒤덮은 단풍잎 하나를 주워 쓴 글귀였다. 친했던 동생 덕분에 읽게 된 여행 산문집의 멋진 글귀를 단풍잎에 적어 선물했던 적이 있는데 얼마전 아직까지도 그 단풍잎을 고스란히 다이어리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했다. 귀찮다고 미루기에는 이 도시는 아까울만큼이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낯선 언어의 지저귐은 우리의 마음을 늘 들뜨게 한다는 것을. 오늘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달과 별의 냄새는 딱 오늘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그 도시를 떠나 돌아온 지가 벌써 1년 반 무렵이 되는 지금, 그곳의 사람과 장소, 기억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요즘. 또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단풍잎 앞면에 썼던 이 글귀를 본 후 가슴이 절로 먹먹해졌고, 뒷면에 쓴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히, 즐겁게 보내자’라는 그 당시 친구에게 건넸던 내 마음을 다시 읽는 순간 우울해하는 나를 야단쳤다.


이 단풍잎이 내게 가르침을 주었던 한가지였고 요즘 내가 힘을 얻었던 다른 한가지는 바로 쇼팽의 왈츠 모음집을 듣는 것이었다. 쇼팽에게 푹 빠졌던 계기였던 야상곡 2번을 어설픈 실력으로나마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던 때도 바로 미국에 있는 시간들 중 하나였다. 그의 음악이 또다시 내 마음에 찾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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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왈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풍성한 감정들이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 언젠가 왈츠 전곡에 대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라 알려진 Waldteufel의 Skaters Waltz에서 느껴지는 왈츠 특유의 여유와 우아한 미. 아니면 차이코프스키 왈츠 스케르초 op.34가 주는 경쾌함이 평소 생각해왔던 왈츠의 이미지였는데, 쇼팽의 왈츠 전곡을 접했을 땐 그와는 달랐던 신선함에 특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쇼팽 왈츠 4번에 대한 첫인상으론 나비의 날갯짓이 떠올랐다. 보지 않아도 현란스러운 손놀림이 연상되는 멜로디는 애벌레였던 나비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노래한 듯 했다. 어둠을 깨고 처음 마주했던 봄의 따스함, 봄기운 가득 머금은 꽃의 마을을 누비며 호기심을 동반한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나비의 노래.


쇼팽 왈츠 6번은 4번과 같은 빠른 리듬이 느껴지지만 ‘추격’, ‘달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뭔가를 향해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 이면에 잡힐듯 말듯한 밀당(밀고 당기는)의 느낌이 그려진다. 이어 잠시 느려지는 리듬을 들을 땐 여유가 생각났고 이는 마치 인생에 대한 비유를 노래한 듯 했다.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가정했을때 쇼팽의 왈츠 6번은 저마다의 인생을 열심히, 바쁘게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 같았고, 쫒고 쫒기는 듯한 느낌은 치열한 경쟁을 내포한 듯 했다. 그러나 이 마라톤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쟁을 즐기는 듯한 여유, 속도만을 내세우지 않고 강약의 중요성을 잘 아는 성숙함이었다. 추격의 이미지가 경쾌하게 들리고 강약의 능숙한 조절이 매력이었던 이 곡이 내게 시사했던 바는 인생에서 속도에 끌려가는 사람보다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 좋은일과 그렇지 않은 일 모두를 숙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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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 9번에 들어서는 앞에서 느꼈던 빠른 속도감과 현란스러운 리듬보단 음표들이 차분한 멜로디를 그려냈다. 이 곡을 들으며 내가 메모해 둔 키워드는 ‘슬프지만 슬프지않은 고백’이었다. 내림 가장조의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와 그 뒤를 따르는 씩씩함이 느껴지는 건반들의 하모니 때문이었을까. 슬픔을 용기있게 고백하는, 그래서 슬프다고만 정의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긴 왈츠였다.


이어지는 10번 왈츠 또한 우울한 느낌이 들어 비오는 날 들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9번왈츠와는 다른 종류의 슬픔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는데, 나단조의 곡이라는 점을 감안하니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음악이 주는 이미지를 먼저 연상한 후 그 곡의 음악적 특징에 대해 좀 더 깊이 파헤쳐보는 것도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10번 왈츠에서 느꼈던 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였다. 물론 이 두가지가 긴밀히 연결돼 있을 수도 아닐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후자에 대한 이미지가 더 강력히 부각되었던 듯하다. 나의 성격, 나의 생각, 내가 꾸는 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한 듯한 쇼팽의 왈츠 10번.


12번 왈츠에 부여했던 글귀는 ‘고난의 극복, 괜찮아질거야, 다 지나가게 되어있으니깐’이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인식한 후 찾아오는 위안과 다독임의 선율이 모두 스며들어 있는 곡으로 특히 좋아했다. 14번 왈츠로 넘어왔을 땐 다시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으로는 정의할 수 없었던 이 곡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타오르는 화의 절제, 감정의 절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감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인 나는 가끔은 자신감과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우울함을 심장 깊숙히서 꺼내와 들춰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변화가 아주 심각하게 들쑥날쑥인 건 아니지만,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라고 묘사하면 적당한 단어가 될 듯싶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기에 좋은, 또는 축 쳐진 내 기분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을 때 쇼팽 왈츠 16번과 17번을 들어도 좋다. 무수히 끓어넘치는 긍정적 에너지와 주체할 틈이 없는 열정, 밝은 기운과 설렘이 인도할 무지갯빛 미래가 연상되는 곡들이다.


쇼팽 왈츠의 마지막 순서인 19번을 들었더니 웬걸, 분위기는 다시 숙연함에 젖어들었다. 이 곡에서 특히 강하게 느껴졌던 것은 있는 그 자체의 수용으로부터 얻어지는 성숙함의 열매였다. 이렇게 느꼈던 데는 앞 순서에 수록된 왈츠들이 노래한 여러 가지 감정들과 이야기들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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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래식 음악을, 그리고 왈츠의 우아함과 동심 가득한 호기심의 멜로디를 좋아했다.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이전에도 무수히 반복해서 들었던 쇼팽 왈츠를 듣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내가 좋아했던 왈츠, 현재의 내가 좋아하는 왈츠 둘 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과거와 현재, 기쁨과 슬픔, 용기와 두려움. 이들 모두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계속 노래하고 있는 쇼팽의 왈츠는 내겐 너무 매력있는 곡이다.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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