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창홍: 이름도 없는展 [시각예술]

경남도립미술관 - 지역작가조명전
글 입력 2019.10.0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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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이름도 없는展
Ahn Chang Hong: Sad Evaporation
2019-09-05 ~ 2019-12-04

경남도립미술관 1, 2층 전시실



평소 미술/디자인 전시회나 미술관, 박물관 방문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두뇌에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것을 즐기는 편인 나는 요즈음 들어 새롭고 멋진 작품들을 보지 못해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가까운 미술관을 검색해보던 중,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가 눈에 들어왔다. '안창홍: 이름도 없는 展'.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푸른 형체가 눈에 안대를 두른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안창홍 작가의 작품들을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둘러보던 중, 특히 나의 시선을 잡아끈 작품은 '화가의 심장2'였다.


'화가의 심장 2' 작품은 흡사 예수가 썼었던 가시면류관을 연상시키는 가시덤불에 꽁꽁 싸매여진채 피를 흘리고 있는 거대한 심장을 환조로 표현해낸 것이다. 화가의 심장이라, 화가가 느낄 수밖에 없는 고통과 희생을 뜻하는 걸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 작품을 보고 나는 '아, 이 전시회를 꼭 보러 가야겠구나. 안 보면 후회할만한 멋진 전시회일 것같다'고 생각하며 꼭 가보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나는 모친과 함께 경남 창원 의창구에 위치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안창홍: 이름도 없는'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왜 이 전시회 명을 '이름도 없는'으로 지었을까 하고 고민했는데, 전시장 내부에 부착된 작가노트를 읽으니 바로 해답이 나왔다. 안창홍은 '단지 이름만 없는 이들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묻혀버린 익명의 인물들'을 그리고 표현해내는 데에 집중했다. 과연 '눈먼 자들', '이름도 없는...', '맨드라미' 연작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호 참사, 제주 4.3사태와 더불어 5.18광주 민주화 운동 등, 희생된 수많은 이름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예술적 기록으로써 담아낸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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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1전시실에서는 화가의 손 1, 화가의 손 2, 화가의 심장 1, 눈먼 자들 연작이 전시되어있었다.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화가의 손 1, 2와 화가의 심장 1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작가들의 삶의 희비와 애환을 상징한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내가 생각하기에 작품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웠다. 붓을 든 뼈, 모조 꽃, 물감, 페인트 붓, 페인트 통, 얼굴이 지워진 마론인형, 종이 쓰레기 등 화려하고 밝은 색들로 조화를 이룬 화가의 손 1은 힘들어도 슬퍼도 기뻐도 끊임없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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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제목을 차용한 연작 '눈먼 자들'은 작가 본인이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 뜬 눈으로 이 참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감정(분노, 절망)을 담아내 제작한 것이다. 둥그런 눈은 똑바로 뜨고 있지만 눈동자가 없어 바로 볼 수 없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얼굴의 형상과 여기에 '눈물', '격투기', '투쟁' 등의 텍스트와 날짜 등을 새겨 넣어 우리 사회의 모순을 폭로함과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일깨워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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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2전시실에 입장하자 내가 보고 싶어 했던 '화가의 심장 2' 작품이 공중에 매달린 채 설치되어 있었다. 막연히 큰 사이즈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진짜로 피를 흘리는 듯한 거대한 심장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밝은 조명을 받으며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심장은 어떤 종교적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피가 솟구쳐 나와 바닥으로 뚝뚝 진하고 붉은 핏방울을 남길 것 같은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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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연작은 특징이 제거된 인물들의 얼굴에 제주 4.3사태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슬픈 현실을 투영시켰다고 한다. 이 연작을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마치 프랑스의 행위예술가, 올리비에르 드 사카잔(Olivier de Sagazan)의 퍼포먼스를 캔버스로 그대로 옮긴 듯했다. 캔버스 위에 가감 없이 드러낸 강렬한 고통과 절망적인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프랜시스 베이컨의 몇몇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거칠고 두텁게 칠한 물감의 입체적인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우울, 절망, 괴로움 등의 감정이 캔버스라는 한계를 뚫고 나와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 자연스레 이름도 없이 희생당한 이들을 생각하며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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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전시실에서는 안창홍 작가의 70'-00'년대의 작품들을 몇 점 전시하고 있었다. 부조로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평면 회화와 입체 조각의 경계에 있는 이 작품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봐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봄나들이 2'는 실제 직물과 틀니(인지 진짜 이빨인지는 확실치 않다)를 부착하여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용사' 작품 역시 혼합 매체를 이용하여 표현한 작품인데 금방이라도 아크릴 관을 부수고 나와 모조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미술관 안을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닐 것 같았다.


3전시실에서는 거대한 사이즈의 가면 부조 49점이 전시 중이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감춤과 동시에 또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는 가면은 이미 오래전부터 안창홍 작가에게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고 한다. 개인을 단순화시켜 표현한 가면들의 나열은 폭력과 억압으로 인한 개인의 정체성의 상실이자 현대 사회의 집단 최면 현상과 군중심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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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3전시실 안쪽으로 걸어들어가자 각기 다른 패턴과 색을 가진 커다란 마스크들이 보였다. 인두로 지진 것 같은 눈과 입술을 가진 마스크도 있었고, 세로로 선이 죽죽 그려진 채 서로 약간씩 엇갈려 붙여진 바람에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마스크도 있었고, 화려한 화장을 한 팝스타의 얼굴이 연상되는 마스크도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지고 안대를 쓰고 입이 막힌 마스크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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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종이 위에 텍스트로만 남겨진 기록이 아니라, 안창홍 작가 본인이 살아오며 경험하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신만의 감성과 스타일로 녹여내여 예술작품을 만들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줌으로써 상호작용하기까지의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적 기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창홍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그러나 조금씩 우리의 기억 속에서 스러져가는) 서글픈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금 조명하고 있었다.


경남 근처에 거주하고 있거나 혹은 다른 연유로 경남에 오게 된다면 경남도립미술관에 들러 이 전시회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관람료는 25세 이상 ~ 65세 미만 어른은 1,000원, 13세 이상 ~ 25세 미만 (및 부사관 이하 군인)은 700원, 7세 이상 ~ 13세 미만 (초등학생 포함)은 500원으로 저렴하게 높은 퀄리티의 멋진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 많은 정보는 경남도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길 바라며 경남도립미술관 측의 전시 소개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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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경남도립미술관은 지역 출신 작가에 대한 집중적인 고찰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매년 ‘지역작가조명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2019년도에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1세대 민중미술 작가이자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특유의 표현력으로 한국화단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지니는 안창홍(1953- )의 최근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안창홍 : 이름도 없는>전을 진행한다.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이름도 없는’은 작가가 최근 발표한 회화 연작의 제목이자 지난 40여 년간 작품의 주제가 되어온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과 역사 속에 희생되고 사라진 이들을 의미한다.


안창홍은 제도적인 미술 교육을 거부해 대학을 다니지 않고 일찍부터 작품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역사 속 한 부분으로써 자신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은 <가족사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다룬 <위험한 놀이>, 민주화 운동과 군부독재의 실상을 그려낸 <새> 연작들을 발표한 안창홍은 당시 민중미술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때의 활동 이력은 많은 이들이 안창홍을 민중미술 작가로 인식하게 하였다. 하지만, 주로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표현방식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와 같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던 작가들과 달리 안창홍은 개인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특히, 약자 혹은 소수자인 사람들에 대하여 주목한 안창홍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인, 남자, 여장 남자, 청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연작들을 발표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냈다. 그리고, 2000년대 빛바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49인의 명상>과 <봄날은 간다>,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섭외해 그린 소시민들의 누드 <베드 카우치> 등 굵직한 회화 연작들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시대와 사회의 역사로 확장시켰다. (중략)


경남도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입체작품을 비롯하여 작가의 최근 작품세계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조명해 보고자 한다. 전시에는 본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대형 입체작품들과 부조, 회화작품 등 130여점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국공립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이자 작가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대규모 전시이다. 안창홍의 작품들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연작으로 발표되어왔지만, 그 근저에는 항상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과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이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오고 있는 안창홍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와 현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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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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