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명의 햄릿, 3개의 이야기 - 연극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글 입력 2019.10.02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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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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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을 읽은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바로 햄릿이라고 고백한다. 인간의 끝없는 고뇌 그리고 그 속에서 결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 햄릿이라고 표현한다. 단막극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세 등장인물 또한 자신들이 햄릿이라고 고백한다.

 

단막극이란 일반적으로 짧은 이야기 (short story)에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나 상황, 두 세 명 가량의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이러한 단막극의 정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연극은 <햄릿>의 전체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햄릿> 속 중요한 주제 의식과 소재만을 이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즉, <햄릿> 속 소재들이 단막극 속 세 명의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에 덧붙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극은 연극 속 연극의 구성을 띄고 있다. 배우들은 각자 연극 <햄릿>의 공연자 혹은 스태프다. <햄릿>의 ‘햄릿’ 역의 첫 번째 햄릿, ‘오펠리아’ 역의 두 번째 햄릿, 아무 역할이 아니며 배우들의 분장을 돕는 ‘분장사’. 모두 달라 보이는 역할들은 모두 <햄릿>을 이루는 요소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이 표현하는 햄릿이란 무엇일까?


 

 

햄릿들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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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햄릿은 <햄릿>의 가장 대표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햄릿> 속 햄릿은 숙부가 숨겨놓은 진실을 알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상황에 대해 빠삭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신이 정작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의 의심과 회의는 행동을 옭아매기만 한다. 그래서 햄릿은 ‘모르겠다’고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 또한 첫 번째 햄릿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상 이해를 못 했다. 배우는 여러 말을 내뱉고 읊조리고, 소리치기도 하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 말들의 정확한 맥락과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말이 ‘말(言)’이 아니라 그저 ‘소리’처럼 느껴졌다.


배우는 자본주의니, 마르크스주의니 어려운 말과 고민해야 하는 단어들을 외친다. 무엇이 그가 계속 고민하게 하는지, 망설이게 하는지 알 수 없다. 배우가 단어들을 외칠수록 점점 더 아득하게 느껴진다. 결국 관객 또한 햄릿이 된다. 고민하고 의심하지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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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햄릿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한다. 원작 속 오펠리아는 갑작스레 찾아온 복수자로서의 운명을 저주받은 것이라 외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햄릿은 자신에게 주어진 ‘오펠리아’라는 역할 또한 저주받은 것이며 벗어나고 싶어한다. 오펠리아는 극에서 등장하는 횟수나 비중은 매우 적다. 그와 달리 매 씬마다 입고 있는 의상은 달라지며 각각은 모두 아름답고 화려하다. 두번째 햄릿은 이 드레스가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명은 지난해의 연극계 미투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두 번째 햄릿은 첫 번째 햄릿으로부터 상하 관계로서의 성추행을 당한다. 그것은 매우 미묘했고 불쾌했다. 그러나 젊은 여성 배우가 자신보다 권력과 연차가 훨씬 높은 남성 선배 배우에게 그만해달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수많은 맨스플레인에 끌려 달리며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오펠리아 같다고 두 번째 햄릿은 말한다.


오펠리아가 주변의 맨스플레인 (아버지, 친오빠, 햄릿 등)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라지자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그러나 오펠리아의 인생에서 자살은 가장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마치 오펠리아의 죽음처럼 두 번째 햄릿 또한 가장 마지막에는 운명을 거부하는 행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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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햄릿은 첫 번째, 두 번째 햄릿의 분장을 돕는 분장사다. 무대조차 밟아볼 기회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햄릿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공들여서 해놓은 작업이 연극이 끝나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원작의 햄릿이 말하듯 ‘먼지’같이 허망함을 깨닫는 인물이다.


무대 위에 오른 연기 못하는 배우보다 그를 역할에 더 부합해 보이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분장이라고도 세 번째 햄릿은 말한다. 그러나 박수는 모두 배우에게 가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은 회식을 가지지만 분장사에게 남는 자리는 없다.

 

제대로 주어지는 것이 없고 그것마저 꼭꼭 숨기고 있던 세 번째 햄릿. 그는 점점 분노를 표현하며 흥분은 점점 그를 압도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던 그때, 세 번째 햄릿은 다시 그의 처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허망함을 느끼며 극은 끝을 맞이한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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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햄릿,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매우 실험적이었으며 강렬했다. 무대는 특정한 방향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관객석은 네면 모두 있었다. 관객들은 여러 각도에서 배우를 관찰했고 배우는 무대의 여러 방면에서 연기를 보였다. 이는 이 햄릿들 또한 한가지 의미만이 아니라 관객들 스스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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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강렬했다. 처음은 읊조리면서 시작하지만 자기 안의 강한 분노와 의견을 끝내 모두 분출한다. 세 햄릿 모두 격정적이었으며 각각이 표현하는 슬픈 분노가 모두 달랐다. 회의하며 울부짖는 첫 번째 햄릿,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고자 칼로 위협하는 듯한 두 번째 햄릿, 술에 취한 듯 이리저리 춤을 주체하지 못하는 세 번째 햄릿. 모두 평번한 사람들의 인생과 내면 같았다. 이들의 행동이 기이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할수록 모두 인간의 이야기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이번 극을 통해 다양한 햄릿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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