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익숙하면서 전혀 새로운 비트, 소음과 음악은 동일시된다 : 사운드 아트 [음악]

마음속에서는 유레카를 몇 번이고 외친다
글 입력 2019.10.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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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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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ji Ikeda <Transfinite>



내가 처음 ‘전위 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을 접했던 것은 어떤 영화 한 편을 통해서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전위 음악’ 또는 ‘소음 음악’이라고 불리는 것의 광팬으로 나왔다. CD를 모으고, 하루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가만히 헤드셋을 쓰고 음악 감상을 하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사실 그의 음악 취향은 영화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음악을 집적적으로 들려주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 도대체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내가 알던 ‘음악’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 걸까? 음을 다루는 건 맞는데, 이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묘하게 매력적이고, 마음이 이끌린다. 설명할 수 없어 어려우면서도, 그래서 더 알고 싶어진다. ‘료지 이케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렇게 알면서도 모르겠고,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은 새로운 음악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의 작업은 사운드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비주얼 또한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오토모 요시히데’의 음악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그만의 색으로 다가왔다.


전위음악은 전위, 그러니까 전방이라는 뜻에 걸맞게, 앞서 나가는 음악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앞장서서 나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길을 뚫고 나아가는 모습에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은 나에게 생각보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우연히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 티켓을 보았을 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덜컥 예매해버렸다.




사운드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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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Rauschenberg <Cathy Weis Projects>



시각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는 주로 소리로 구성되는 미술 작품. 시각이 아닌 청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예술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사운드 아트는 시각미술을 위한 장소 – 화랑, 미술관, 야외환경, 공공미술과 퍼포먼스 현장 등 -에서 전시되거나 카세트테이프 형식의 잡지로 발표된다.

시각미술의 영역에서 소리의 사용은 루솔로Luigi Russolo가 1913년 미래주의 선언문인 <소음의 미술The Art of Noise>에서 특이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통해 청중들에게 거리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애초에 시각예술가들이 소리를 끌어왔기 때문일까, 사운드 아트에는 비주얼도 함께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둘은 전혀 관계가 없는 듯 보이면서도, 서로 끈끈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비주얼은 패턴이 반복되거나 규칙성을 가진듯 해보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만히 눈에 담고 있자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단순히 비주얼만, 오디오만 있을 때보다, 둘이 함께 연결될 때 관객이 느끼는 체험의 감각은 더욱 높아진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이들은 관객을 공기 중에 띄워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이후 사운드 아트에 개념미술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되는데, 뒤샹의 레디메이트 작품 <비밀(숨겨진 소음과 함께)A Bruit Secret(With Hidden Noise)>이 그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등장한다. 그 또한 사운드와 개념미술적 요소가 결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존 케이지는 무려 4분 33초라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어떠한 연주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는데, 연주자가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지금은 그 새로움과 유머에 웃지만, 당시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다면 나도 불평을 하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이후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모리스Robert Morris 등 많은 작가들이 소리와 음을 적절히 사용한 작업들을 해나갔다. 그들은 작은 상자 안에 미술 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리를 채집한 3시간 분량의 오디오를 담아두기도 했고, 퍼포머의 몸에 일종의 센서를 달아 동작을 할 때마다 새로운 소리들이 창조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시각적 매체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개념, 사운드 자체가 미술의 범주에 들어오면서, 미술은 점점 다양한 감각을 융복합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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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RIAN <CIRCLERIAN23>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번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에서 내가 처음으로 사운드 아트를 접한 것은 아니다.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음악, 비주얼,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융합된 작품을 봤었다. 약 두 시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온몸의 감각들은 나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공연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는데,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 밤의 공기, 주변의 작은 소음들까지 합쳐져 전혀 새로운 청각의 감각들이 나를 여름의 습한 공기 속에 붕붕 띄웠었다.

 


파티 속의 파티


어둑어둑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여름 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눈앞으로 펼쳐진 나무들과 그 속의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본다. 조그만 치즈 조각 같은 돌덩이에 사람들이 하나 둘 앉기 시작한다. 귀에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테크노 비트가 하나씩 꽂힌다. 스크린 속의 기하학적인 영상과 함께 듣고 있으니 신비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그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속에 관객은 스스로 또한 한 명의 예술로 스며든다.


서클리안의 공연에서 다양한 장르와 분야의 예술인들은 그들만의 원과 순환의 고리, 그리고 교차점을 만든다. 음악, 영상, 페인팅, 무용…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하나의 동그란 공간 안에서 어우러진다. 자유롭게 공간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소리, 빛 그리고 몸을 바라보며 신비로운 자유로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어떤 언어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들은 나를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끌어당긴다. 같은 사운드를 듣더라도 저마다 느끼는 감정과 좀 더 예민한 감각은 다르지 않을까. 이번에 다녀온 WESA는 올해로 6회차를 맞이했다. 사운드 아티스트들과 사운드 아트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위한 국내 유일의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이다.


 

W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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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Sound Artists의 줄임말인 WESA는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사운드 아트에 대한 교육과 멘토링, 네트워킹 또한 기획하고 있다. 이번 양일간 진행된 페스티벌에서 내가 만났던 아티스트는 4명이었다. 앞서 설명했던 사운드 아트의 역사의 흐름은 점점 개념적 요소로 음악을 사용한 것이었다면,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사운드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청각에 들어오는 소리들. 가만히 듣고 있자면 점점 어딘지 모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들어갔던 굴이 실제로 있다면 이런 곳일까? 도대체 소리란 무엇인지, 음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생각난 것이 맞기는 한 건지. 온갖 질문까지 내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튀어나온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아티스트 중에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이는 기술부Gisulbu다.



기술부의 음악은 그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한국을 표현하고 있으며 다소 무거운 사운드의 질감과 다운템포의 음악들로 앨범의 분위기를 채우고 있다. 오로지 녹음된 소리로 작업한 음원들, 그 중 전자레인지가 작동할 때 음식의 기름이 튀며 발생된 소리로 만든 그루브한 비트를 찾았다.


 

실제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언가 익숙한 소리 같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것들로 느껴지는 비트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정말 새로운걸 발견한 느낌이랄까. 마음속에서는 유레카를 몇 번이고 외친다. 부엌에서 식기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비닐을 뜯는 소리. 그런데 그 소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트’로 재탄생한다.


실제 그의 작업 규칙도 재밌다. ‘오직 녹음된 소리만 작업에 사용할 것.’ ‘공연 시 관객이 어떤 소리인지 전혀 모르게 조작하지 않되 또한 누구나 알 수 있는 소리를 난무하여 촌스럽지 않은 발란스를 찾을 것.’ 채집한 소리들을 마음대로 주물러보고 선보이는 것들은 너무 향기로운 것들이라, 온갖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든다. 팍하고 터지는 비트에 사람들 고개도 따라 각을 맞춘다. 공연이 끝난 후 터져 나오는 박수와 환호성 소리에 덩달아 내 심장도 비트를 맞춘다.


라소 폰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 또한 연상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한다. 시력을 점점 잃어가면서 청각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녀에게 공장 속 기계음들과 소음으로 인식되는 딱딱거리는 소리들은 어느새 감미로운 음악이 되고 그곳은 그녀에게 뮤지컬 무대가 된다. 소음과 음악이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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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수백만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잘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호기심. 탐구하고 싶고 파악하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마음. 비밀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 비밀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비밀 속에 감추어진 이는 신비스럽게 여겨진다. 상상이 덧대어질수록 그 비밀은 더욱 신비로운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


나에게 사운드 아트는 비밀의 옷을 입은 대상이다. 정확히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다가가고 싶다. 토끼 굴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 들어가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올해는 그 굴 속에서 새로운 물약을 먹어보고,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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