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만의 향기를 만들어가는 것 [사람]

글 입력 2019.09.3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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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문 밖을 나설 때면 가을임을 실감한다. 살갗에 닿는 선뜻한 공기의 촉감 때문만은 아니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냄새가 달라진다. 여름의 열기가 지나가고 세상이 빠르게 식어가는 냄새. 친구들에게 가을이 오면 찬 공기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가 '공기에 냄새가 어디 있느냐'며 웃음거리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낭만 없는 사람들 같으니! 나는 지금까지 매 가을마다 맡아 왔는데 말이지.

냄새라는 건 참 신기하다. 어디선가 지나가듯 주워 들은 정보로는,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옛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단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픈 걸 잘 참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치과 냄새를 맡으면 5살 때의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가장 빨리 마비되는 감각이라는 사실도 신기하다. 음악은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고, 아름다운 것도 보면 볼수록 좋지만, 아무리 향긋한 냄새라도 그 속에 있다 보면 금방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아니면 지나친 자극에 지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좋은 건 많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 감질나는 찰나의 감각이 신비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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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향기가 난다. 엄마가 대학원 수업에 나가던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조금만 내 옆을 떠나도 안절부절 못하는 애였다. 나를 남겨 두고 나가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과 같았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줬던 건 엄마의 검은 색 가디건이었다. 가디건에는 온통 '엄마 냄새'가 났고, 나는 비로소 안정감에 휩싸여 곤히 잠들 수 있었다.

아직도 엄마는 나에게 검은 색 가디건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더 이상 엄마한테 아기처럼 안기는 일은 결코 없을 시니컬한 딸이지만, 여전히 옷가게에서 검은 색 가디건을 발견하면 어릴 적에 맡았던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검은 색 가디건은 사지 않는다. 그걸 사서 입으면 가디건에서 나의 냄새가 날 것이고, 그러면 그 때의 소중한 기억이 사라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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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대학 새내기 시절, 독일 영화와 문학을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였다. 영화 초반부에는 마치 썩어가는 듯한 비주얼의 생선들로 가득한 시장의 모습을 빠르게 편집해서 보여준다. 비록 독일 문학인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의 완성도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냄새를 훌륭하게 시각화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정말이지 스크린을 뚫고서 구역질나는 생선 비린내가 풍겨 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생선 비린내뿐 아니라, 영화에서는 제목에 걸맞게 러닝타임 내내 냄새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냄새가 없는 사람'이다. 흥미로운 건 그가 단지 체취가 없다는 말로는 부족한, 마치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렴 묘사된다는 점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못 알아채다가 부딪히고 나서야 깜짝 놀라 그의 존재를 의식한다는 표현이 그 중 하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들만의 향이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말이다.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사람은 없다. 향이 없는 그르누이는 자신만의 향을 갈망하고, 마침내는 엽기적인 살인을 저질러 가며 최상의 향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온통 향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 말하는 '향기'는 어쩌면 사람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향기는 무엇보다도 강한 아이덴티티가 된다. 항상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은 도통 미워할 수가 없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독특한 향이 나는 사람도 있다. 정의하기 어려운 애매하고 옅은 향이 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나는 내 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며 말하지만 그것 자체가 그의 고유한 향인 것이다.

*

나에게는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꿈 같은 건 없다. 돌잡이 하듯 장래희망을 골라 잡던 과거나, 열심히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버텨나가던 고3 시절과는 다르게 말이다. 내 일을 아끼고, 내 취미를 사랑하지만 그걸 이뤄내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할 순 없다. 꿈을 만들기 위해 항상 발버둥쳤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방황했다. 대단한 유명세를 얻거나 부자가 되는 걸 바란 적은 없다. 단지 남과 같지 않은 나만의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내 고유의 향기를 찾는 것.

그렇지만 그 꿈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중이다. 내 고유의 향기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스물다섯 명의 소녀를 죽여가며 최고의 향기를 찾아냈던 그르누이는 결국 그 향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정답만을 좇는 삶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르누이에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향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향기일 것이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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